‘스마일 점퍼’ 우상혁, 항저우에선 금빛 함박웃음을
스마일 점퍼.
우상혁(27·용인시청)을 따라다니는 말이다. 중압감도, 아쉬움도 환한 웃음으로 털어내는 그에게 붙은 별명이다. 23일(한국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23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6 2차 시기에 실패한 뒤에도 그는 활짝 웃었다. 발을 동동 굴렀지만, 미소만은 잃지 않았다. 최종 순위 6위. 한국 육상 역사상 첫 세계선수권 2연속 메달(작년 대회 은메달)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우상혁의 꿈은 이어지고 있었다.
우상혁은 타고난 ‘긍정왕’이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택시 바퀴에 오른발을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오른 발바닥을 50바늘 꿰맸다.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당한 사고. 오른발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결국 우상혁은 짝발이 됐다. 오른발은 270㎜, 왼발은 285㎜로 15㎜ 정도 차이가 난다. 왼발을 디딤발로 쓰는 덕에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지만, 균형이 중요한 육상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다른 신체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다. 우상혁의 키는 188㎝. 높이뛰기 선수치고는 아쉬운 키다. 우상혁과 세계 정상을 두고 다투는 장마르코 탬베리(192㎝·이탈리아), 주본 해리슨(193㎝·미국), 무타즈 에사 바르심(190㎝·카타르) 등 경쟁자들은 대부분 190㎝가 넘는다. 우상혁은 실제 국내 육상 선배들에게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된다”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고 한다.
우상혁은 이 모든 어려움을 “할 수 있다”는 의지로 넘었다. 짝발 극복을 위해 균형감을 키우는 훈련에 매진했다. 키를 넘어서기 위해 몸무게를 줄였다. 우상혁이 가장 존경하는 스테판 홀름(스웨덴)이 썼던 방식이다. 홀름은 키가 181cm에 불과했지만,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 등을 목에 걸었다. 최근 우상혁은 몸무게 65㎏, 체지방률 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힘들 때면 “안된다고 했던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2021년 열렸던 도쿄올림픽에서 자기 이름을 만방에 알렸다. 비록 아쉽게 4위에 머물며 시상대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전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서 카메라를 향해 “이제 시작”이라고 외치던 그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도쿄올림픽 뒤 성장을 거듭했다. 엔데믹 시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저는 무대 체질”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관중이 가득 찬 경기장을 휘어잡으며 맹활약했다. 지난해 7월에는 한때 세계랭킹 1위도 차지했다.
다만 최근 들어 우상혁은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7월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다이아몬드리그 부진(2m16, 1∼3차 시도 모두 실패)은 충격이었다. 다만 우상혁은 오히려 실패를 약으로 삼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블로그에 “저는 이번 실패가 고맙습니다”라며 “다가올 세계선수권이나 아시안게임, 그리고 내년 파리올림픽 때도 비는 올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겁니다. 스톡홀름에서 ‘실패한 경험’이 없었다면, 저는 그대로 자만심을 갖고 경기에 임했을 수 있고, 중요한 메달을 놓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라고 썼다.
이제 우상혁은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바라본다. 만약 우상혁이 1위를 차지하면, 한국은 21년 만에 아시안게임 남자 높이뛰기 금메달을 손에 넣는다. 최대 적수로 꼽히는 바르심만 넘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우상혁 역시 국내에서 높이뛰기 저변을 넓힐 기회인 아시안게임 선전을 벼르고 있다. 특히 대부분 국제대회에 한국 선수로서 홀로 참가했던 그는 선수단과 함께 치르는 대회가 더욱 반갑기도 하다. 특히 2024 파리올림픽 비상을 위해서도 항저우 대회가 중요하다.
일단 우상혁은 9월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다이아몬드리그에 출전한다. 만약 여기서 리그 포인트 5점을 추가하면,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 자력 진출할 수 있다. 파이널은 아시안게임 개막 약 1주일 전 미국 유진에서 열린다. 몸 상태를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다.
우상혁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에는 아시안게임에서 높이뛰기 2연패(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를 한 바르심이 발목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았다. “한국 육상의 새 역사를 계속 쓰고 싶다”라던 우상혁이 항저우에서는 바르심을 넘어 은빛을 금빛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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