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률 올리자는 정부, 정작 “건보 2만원 더 내 난임 지원 못 받아”
난임 시술 횟수 제한 등 문제 제기
“소득 기준에 따라 지역 차별 맞나?”
“난임 지원기준보다 건강보험료 납입액이 2만원 높아 지원 불가 통보를 받고 보니 우리나라는 왜 아직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민원인 A씨)
“아이를 낳고 싶어서 열심히 시험관을 (시술)하는데 애는 낳으라면서 건강보험 혜택에 횟수를 정하는 제한을 두는 게 맞는지요.”(민원인 B씨)
국민권익위원회는 2020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3년4개월 간 국민신문고와 지방자치단체 민원창구 등에 접수된 ‘예비 부모의 건강권’ 민원 1493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이 난임 시술비 지원 확대를 요구(480건)하고 난임 시술 휴가에 대해 문의(338건)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23일 밝혔다.
접수된 민원 내용을 보면 정부와 지자체의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의 소득 기준을 폐지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맞벌이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이 시대에 터무니없는 소득 기준 때문에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가 난임 지원을 꿈도 꾸지 못한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출산율이 최저인 상황에서 어느 지역은 (소득 기준에 따른 지원이) 가능하고 어느 지역은 불가능하다고 차별을 두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등이 대표적이다.
“내 인생에 아이는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절망적인데 첫째 아이만이라도 지원을 확대해 횟수 제한을 없애주세요” 등과 같이 난임 지원 관련 건강보험 급여 적용 횟수를 늘려달라는 민원들도 제기됐다. “난임 1차 시도에서 공난포가 나와 중도 종료하고 몸도 마음도 힘든 상황에서 지원받았던 비용을 다시 반납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더 상처가 됐다”며 난임 시술을 중단 또는 실패했을 때 지원을 강화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직장인의 난임 치료 휴가를 제대로 보장해달라는 민원도 다수였다. “일반 사기업은 1년에 난임 휴가 3일을 제외하면 치료를 위한 휴가나 휴직제도가 없어 임신 준비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난임 휴가는 취업규칙에도 있는 항목인데 (회사가) 연차를 다 쓰고 나서 난임 휴가를 쓰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등이다. 사실혼 부부에 대한 난임 시술 지원 강화, 보건소의 산전 검사 운영 확대, 출산 준비 부부에 대한 의료기관의 불친절한 응대 개선 요구도 접수됐다.
정부는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며 저출생 개선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정책 수요자들은 정부 지원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부족하다고 여기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생률(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0.78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았다. 매년 감소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권익위는 민원 분석을 토대로 보건복지부 등 관계 기관에 저출생 해소를 위한 17건의 정책을 제안했다. 난임 시술비 지원을 지자체 사업에서 국가사업으로 재전환하고, 난임 시술비 지원 소득 기준을 폐지하며, 공난포 발생 등 시술 중단·실패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이 담겼다.
이와 더불어 난임 시술 관련 건강보험 급여 횟수 확대, 남성 난임 지원 강화, 난임 치료 휴가 확대 등이 포함됐다. 산전 검사 바우처(이용권) 지급, 임신 전 건강 관리를 위한 엽산·철 등 영양제 바우처 지급, 국가건강검진에 가임력 검사항목 추가,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 교육 시행 등도 제안했다.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은 “저출산(저출생)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관계 기관의 저출산 정책 수립에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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