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여왕’ 바이올리니스트 물로바 “다양한 음악 오가는 연주 즐거워”

임석규 2023. 8. 23. 14:2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틀림없이 똑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힐러리 한이 '얼음 공주'라면 그는 '얼음 여왕'으로 불렸다.

물로바는 "베토벤 시대엔 그랜드 피아노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베토벤은 포르테 피아노와 거트현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음악과 낭만시대 음악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해요. 거트현을 달아서 연주할 땐 과다니니를 사용하죠"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사운드가 좀 더 강력하다"고 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6일 리사이틀…바로크와 현대, 재즈와 퓨전까지
현역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히는 빅토리아 물로바는 바로크와 현대, 퓨전과 재즈를 넘나드는 폭넓은 음악세계를 풀어낸다. 8월26일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 공연을 펼친다. 누리집 갈무리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틀림없이 똑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힐러리 한이 ‘얼음 공주’라면 그는 ‘얼음 여왕’으로 불렸다. 날카로운 눈매, 단호한 표정, 꼿꼿한 자세가 비범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러시아 태생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물로바(64)다. 1983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망명에 관해 묻자 “자유로운 삶을 위해 선택했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는 26일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에서 공연하는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1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탈출 과정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 분신과도 같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도 호텔 방에 놓고 나왔다. 그 값비싼 악기를 두고 설마 도망칠 리 있겠느냐고 소련 케이지비(KGB)를 방심하게 하려는 일종의 ‘담보물’이었다. 훗날 대구시향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던 연인 박탕 조르다니아(2005년 작고)와 함께였다. 핀란드에서 스웨덴을 거쳐 미국 워싱턴에 도착하기까지 추격전까지 벌이는 곡절을 겪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물로바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낳은 아들 미샤 물로바(재즈 베이시스트)와 음반도 냈다. 누리집 갈무리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물로바는 1980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와 1982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했다. 20대 초반부터 완벽한 테크닉과 깨끗한 음색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냉전이 한창이라 너무 힘들고 암울했어요. 예술가들의 삶도 팍팍했거든요. 중요한 콩쿠르에서 연거푸 우승했는데 제대로 공연조차 할 수 없었어요.” 그는 “그런 삶이 싫었고, 소비에트 체제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고 망명 당시를 떠올렸다.

잠시 미국에 머물다 유럽으로 건너간 물로바는 26년 연상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와 사랑에 빠졌다. 이때 낳은 아들 미샤 물로바 아바도(32)는 재즈 베이스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 “아들과 연주하는 게 즐거워요. 다양한 연주법도 배우고 여러 가지 즉흥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는 점도 좋더군요.” 2020년엔 이 아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Music We Love)’이란 음반도 발표했다.

그는 연주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바로크와 현대음악을 오가고, 재즈와 보사노바, 퓨전과 민속음악도 가리지 않는다. “다양한 음악을 오가는 걸 즐기는 편이죠. 그게 어렵지는 않아요. 아들과 함께 브라질 음악과 퓨전, 재즈에 바흐와 슈만도 연주합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낭만과 현대음악을 오간다. 브람스의 소나타 1, 3번과 슈베르트의 ‘화려한 론도’ 그리고 현대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형제들’과 타케미츠 토루의 ‘요정의 거리’를 들려준다. “제가 좋아하는 작곡가들에 좋아하는 곡들로 골랐어요. 하나의 리사이틀에서 다른 시대,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섞어 연주하는 게 좋아요.” 그는 “브람스의 소나타는 1995년 음반을 녹음한 이후 지금껏 연주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다시 연주하게 돼서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물로바는 현역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힌다. 특히, 그의 바흐 연주는 ‘천의무봉’이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과 변신을 거듭해 왔다. 2000년대 들어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과 ‘바로크 활로 연주하면서 ‘완전히 다른 연주자’로 변모했다.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등 시대악기 연주단체들과도 꾸준히 협업했다. “이분들 연주 방식은 내가 모스크바에서 배운 것들과 너무 달랐어요. 거트 현과 바로크 활로 연주하면서 서서히 그들의 ‘연주 언어’와 스타일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분들 연주를 감탄하면서 듣곤 했는데, 함께 연주하고 음반까지 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물로바는 “베토벤 시대엔 그랜드 피아노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베토벤은 포르테 피아노와 거트현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베토벤 소나타 전곡(9곡)을 포르테 피아노 연주자 알라스데어 비트손과 녹음하고 있는 이유다.

스트라디바리우스(1723년산)와 과다니니(1750년산) 바이올린을 번갈아 연주한다. “현대음악과 낭만시대 음악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해요. 거트현을 달아서 연주할 땐 과다니니를 사용하죠”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사운드가 좀 더 강력하다”고 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러시아 태생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물로바는 1983년 서방으로 망명했다. 누리집 갈무리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