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포집저장 기술 긍정 '호주 르포' 보도 뜬금없이 쏟아진 이유

박재령 기자 2023. 8. 2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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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이상 매체들 호주 오트웨이, LNG 터미널 다니며 CCS '안전성' 강조
알고 보니 SK E&S가 여행사와 공동기획
CCS에 대한 환경단체 비판, 바로사 가스전 사업 우려 목소리 전무
전문가 "'평범한 초원이 사실 탄소 저장고였다'는 스토리라인마저 똑같아"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최근 1주동안 10개 이상 매체에서 뜬금없는 '호주 르포'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호주 오트웨이, 다윈 LNG 터미널 등을 다니며 CCS(Carbone Capture & Storage, 탄소포집저장) 기술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주된 내용이다. 별다른 설명이 없었지만 해당 르포 기사들은 CCS 기술로 호주 바로사 가스전 사업을 추진 중인 SK E&S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CCS 기술에 대한 우려와 가스전 사업에 대한 비판 내용이 전무한 기사들에 “기업이 짠 각본 아래 언론이 비슷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는 지적이 나왔다.

▲ 16일 연합뉴스,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일보, 국민일보, 조선비즈 등 10개 이상의 매체가 호주 오트웨이 CCS 실증센터를 방문해 르포 기사를 작성했다. 네이버 갈무리.

지난 16일 연합뉴스,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일보, 국민일보, 조선비즈 등 10개 이상의 매체가 호주 오트웨이 CCS 실증센터를 방문해 르포 기사를 작성했다. 제목부터가 CCS에 호의적이다. <“발 밑에 탄소 있어요!”…호주 초원 '탄소중립 열쇠' 오트웨이 CCS 실증센터> (데일리안), <호주 땅속으로 사라진 이산화탄소…SK도 달려간 '탄소중립 성지'> (아시아경제) <초원 아래 CO2 10만톤 묻어온 호주…“19년간 유출 0”> (서울경제) 등이다.

내용도 마찬가지다. 해당 르포 기사들은 대체로 비슷한 구성을 가졌다. 초원 밑에 9만5000톤의 이산화탄소(CO2)가 묻혀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탄소를 저장하는 CCS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식이다. CCS 기술을 홍보하는 전문가들의 멘트도 이어진다. 데일리안은 “CCS 기술의 안정성에 대한 의심을 단숨에 풀어버리는 순간”이라고 했고, 조선비즈는 “수백만 년 동안 쌓인 두꺼운 암석층이 코르크 마개처럼 버티고 있어 탄소 유출 가능성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 호주 노던테리토리에 위치한 다윈 LNG(액화천연가스) 터미널 르포 기사가 20일에도 쏟아졌다. 네이버 갈무리

지난 20일에도 호주 르포 기사가 이어졌다. 이번엔 호주 노던테리토리에 위치한 다윈 LNG(액화천연가스) 터미널이다. 호주 에너지 기업 산토스 관계자는 이들 보도에 공통적으로 등장해 CCS를 적용한 LNG 프로젝트를 설명한다. 조선비즈는 관계자를 인용해 “다윈 LNG 터미널 프로젝트는 CCS의 미래가 될 것”이라며 “터미널 내부에 설비를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른 CCS 프로젝트들보다 빠르게 상업화가 가능할 전망”이라고 했다.

기사엔 별다른 설명이 없지만 이들 보도는 CCS를 적용해 바로사 가스전 사업을 추진 중인 SK E&S가 여행사와 공동기획한 것이다.

▲ 20일 기사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SK E&S 제공 사진들. 조선비즈 갈무리.

실제 르포 기사들 안엔 SK E&S에 우호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다윈 LNG 터미널은 바로사 가스전이 포함된 프로젝트의 일부다. 호주 북서부 해상의 바로사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다윈 LNG 터미널에서 포집한 뒤, 이 이산화탄소를 동티모르 바유운단 가스전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SK E&S는 2021년부터 CCS 사업을 진행했고, 지난 2012년 바로사 가스전 지분 37.5%, 지난 2020년에 바유운단 가스전 및 다윈 LNG 터미널 지분 25%를 확보했다.

▲ 지난 21일자 서울경제 13면 기사.

<LNG 생산하고 연 200만톤 탄소 포집…SK E&S '에너지 혁명'> 제목의 기사에서 서울경제는 “통상 자원 개발 사업 과정에서는 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는 게 기본 상식에 가깝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사정이 다르다”며 “다윈 북서부 해상에서 개발되고 있는 바로사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해 이를 다윈 LNG 터미널로 이송한 뒤 이곳에서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약 500㎞ 떨어진 바유운단 가스전에 저장하는 모델이 이 사업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스 채취 초기 단계부터 탄소 배출을 최소화는 셈”이라고 했다.

환경단체나 전문가들의 반대 목소리는 기사에 담기지 않았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솔루션 등 144개 국내 기후환경단체들은 지난 2021년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에 서한을 발송해 SK E&S의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투자하지 말 것을 요구한 바 있다. CCS로 온실가스를 흡수하겠다는 SK E&S의 계획이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지난해 9월 '처치 곤란의 탄소포집, 우리가 얻은 교훈(The carbon capture crux: Lessons learned)' 보고서를 내고 “현재 상태에서 CCS 기술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멈출 제대로 된 솔루션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보고서를 집필한 IEEFA 브루스 로버트슨 에너지금융분석가는 “CCS 기술이 지난 50년간 시도되고 있지만 많이 실패했고, 지금도 실패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인 출신의 한 에너지 전문가는 22일 미디어오늘에 “현재 CCS는 기술성숙도가 낮아 불확실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는 당장 7년 뒤 달성해야 할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짜면서 산업계가 줄여야 할 몫을 CCS에 넘겼고, SK E&S 같은 기업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자꾸 지우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 바로사 가스전을 향해 쏟아진 언론들의 비판. 네이버 갈무리.

CCS 기술에 대한 찬반과 별개로 SK E&S의 호주 바로사 가스전 사업은 최근까지도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공적 자금이 투입되지만 지난 3월 호주 의회에서 새로운 내용의 법안이 통과돼 사업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주 법원에서 인허가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 가스전 시추가 중단된 바 있고, 'C02 프리 LNG'라는 광고가 환경부 지적 후 수정돼 '그린워싱' 논란도 빚었다.

한상희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22일 통화에서 “친환경이라면서 나오는 CCS 기술 등의 기술적인 부분을 일반인들은 잘 알 수가 없다. 이것에 대해 인식을 갖게 되는 통로가 언론이니 기술을 다룰 때는 언론이 연구 결과 등 많은 근거를 가지고 기술해야 한다”며 “CCS처럼 다른 의견이 분명히 있을 때조차 일방적으로 기사를 쓴다는 건 '오히려 뭘 받은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이것이 수반할 수 있는 문제들, 그리고 우려하는 시각을 동시에 다뤄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언론인 출신의 에너지 전문가는 22일 미디어오늘에 “언론을 잘 아는 '선수'들은 취재 지원 표시가 없어도 어디 지원을 받은 기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이번 르포 기사만 봐도 친기업 성향의 경제지가 대부분이고, 기존에 바로사 가스전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던 매체는 빠진 걸 알 수 있다”며 “통상 기사는 형식 요건을 갖추기 위해 그에 반대되는 주장이나 전문가를 일부 인용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기사는 그런 최소한의 형식마저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가 풀 뜯는 평범한 초원이 알고 보니 탄소 저장고였다'는 스토리라인마저 똑같다”며 “바로사 가스전은 현지에서도 원주민 반발로 소송이 이어질 만큼 환경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사업이다. 이런 사업을 기업이 짠 각본 아래 이렇게 많은 언론사가 비슷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는 건 언론 스스로의 신뢰와 자존심을 허무는 일”이라고 했다.

▲ 지난 7월18일 SK E&S 출입기자들에게 온 안내 메일은 SK E&S가 아닌 일반 여행사(엠에이치비포인트투어) 이름의 '호주의 넷제로 현장 탐방 행사 신청 안내' 메일이었다.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SK E&S가 기자를 '선별'했다는 의혹도 인다. 미디어오늘 취재에 따르면, 지난 7월18일 SK E&S 출입기자들에게 온 안내 메일은 SK E&S가 아닌 일반 여행사(엠에이치비포인트투어) 이름의 '호주의 넷제로 현장 탐방 행사 신청 안내' 메일이었다. SK E&S가 명시되지 않아 대부분의 기자가 '팸투어'(기업 등에서 홍보를 위해 미디어나 인플루언서 등을 초청해 진행하는 여행)인 것을 인지하지 못해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SK E&S 측은 소수 기자들에게 여행사와 공동기획한 '팸투어'라는 걸 알렸고, 그 결과 10명 이상 기자들만 지난 13일 출국했다.

SK E&S를 출입하고 있는 산업부 기자 A씨는 “비판적으로 쓴 적이 있어서 그런가. 전혀 못 들었다. 보통은 미리 공개적으로 알려 준다. 오히려 놓칠 수 있으니까 안내해 주는 문자나 전화도 온다”고 말했다. 다른 SK E&S 출입기자 B씨도 “처음 듣는 내용이다. 일부 매체에만 언질을 주고 몇 매체를 제외하는 건 이전에 논란이 되던 방식”이라고 했다. C기자도 “어이가 없다. 국내도 아니고 해외에 가는데 저렇게 준비한 거면 의도가 분명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기업 팸투어는 취재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회사 공식 메일로 기자들을 공개 모집한다. 올해 있었던 포스코, 두산에너빌리티, HD현대 등의 팸투어 모집 과정을 확인한 결과, SK E&S처럼 회사가 드러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포스코는 회사 공식 메일로 매체당 1인, 최대 50명을 공개모집했으며, 두산에너지빌리티 역시 마찬가지다. 비행기 티켓 구입 등 여행사가 끼어 있었던 HD현대 역시 30개 매체 선착순을 공개 모집으로 진행했다.

▲ SK E&S 로고.

SK E&S 측은 오히려 공정한 선발을 위해 여행사와의 공동 기획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SK E&S 관계자는 지난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여행사에 다 일임을 했다. 그곳에서 취재 취지와 목적에 맞게 선발을 한 것”이라며 “저희가 사전에 (공동기획 사실을) 공지 드리면 선발 과정에 개입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행사 메일을 보고 저희에게 문의를 주신 분들에게 팸투어 사실을 전달 드렸다”고 말했다.

SK E&S 측은 회사가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없어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일부 기자들만 팸투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팸투어 현장에서 나온 기사 방향이 SK E&S에 호의적으로 나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SK E&S 측은 “그러면 팸투어는 하면 안 되는 건가. 저희가 계속 CCS 사업을 하고 LNG 사업을 한다. 많은 기자분들이 그곳에 직접 가서 너희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며 “그런 부분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보자는 것인데 팸투어에 갔다고 해서 반드시 좋게 써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기자들의 기사를 컨트롤할 수 없다. 그것은 기자를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SK E&S 측은 "출장 매체 중 경제지는 6개에 불과하고 당사 사업 관련 비판적으로 기사를 쓴 매체 두 곳도 프레스투어에 포함됐다"며 "당사를 포함해 많은 대기업들이 해외출장시 출장스케쥴 및 선발 등에 대한 권한을 여행사에 위임하고 있다. 당사도 그 절차대로 프레스투어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기사 수정 : 본지 보도 이후 SK E&S 측은 프레스투어 형식에 대해 추가 반론을 전달해와 반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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