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냉전보다 더 위험한 '열전' 될 수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미국 현지시각으로 18일에 열린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우선 이미 확연해지고 있던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정신, 그리고 한미일간 협의에 관한 공약을 내놓은 3자 정상회의는 한미일이 공식적인 동맹 조약은 아니더라도 사실상의 3각 동맹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이들 세 나라가 명시적·잠재적인 적으로 삼고 있는 북중러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신냉전의 한복판으로 몰아넣고 있다.
핵심은 한미일이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가 3자 차원에서 서로 신속하게 협의하도록 할 것을 공약한다. 이러한 협의를 통해, 우리는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동조화하며, 대응조치를 조율하고자 한다"는 '공약'이다.
이는 한미일이 북핵 문제는 물론이고, 남중국해-대만 해협-동중국해 등 동아시아의 '약한 고리'로 불려온 사안들에 대해 공동의 위협 인식에 기초해 공동의 대응 수준을 높이겠다는 의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일 3자 인도태평양 대화 출범"키로 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신냉전은 냉전보다 위험하다?
기존에 있었던 미국·일본·호주·인도의 협의체인 '쿼드(QUAD)'와 미국·영국·호주의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에 더해 한미일 협의체까지 가동키로 함으로써 대중 봉쇄·포위에 한걸음 더 내딛게 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러한 아시아 동맹 및 협의체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연결하는 데에 있다.
작년과 올해 나토 확대 정상회의에선 이를 위한 토대를 이미 닦아놓기도 했다. 인도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거대한 군사 네트워크가 부상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냉전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냉전 시대와 구별되는 점은 또 있다. 서로를 절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소련은 '전략적 안정'을 매우 중시했었다. 양국이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을 자제키로 한 것은 그 중심에 있었다. MD가 군비경쟁을 격화시키고 위기관리를 어렵게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신냉전이 냉전과 구별되는, 그래서 더욱 위험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신냉전 시대에 미국 주도의 MD는 '뉴노멀'이 되고 있는데, 캠프 데이비드에선 이 점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3국간 방위협력을 인도-태평양까지 갈 수 있도록 확대하고 있다"면서 "MD 협력"을 대표적인 성과로 꼽았다. '북한위협론'을 발판으로 삼아 가속 페달을 밟아온 MD가 본질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것임을 이제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있는 셈이다.
캠프 데이비드 공동성명은 "한미일 관계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음으로 선언한다"고 했다. 하지만 위의 내용을 종합해볼 때,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훗날 역사가들은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신냉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장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반응을 보면 이러한 진단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재무장관 등을 중국에 잇따라 보내 "미국은 신냉전을 원하지 않는다"며 '관계의 안정화'를 강조했었다. 하지만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대중 포위와 봉쇄 수위를 높임으로써 미중관계의 가드레일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는 "아시아‧태평양에서 신냉전을 일으키려는 모든 시도는 국가와 인민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강력한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자칫 작용과 반작용이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열전의 위험을 품은 신냉전이 가시화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앞날이 더욱 불투명·불안해질 공산도 커졌다. 당장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유엔사 회원국의 연합훈련과 북한의 반발이 맞물리면서 한반도 위기 지수가 또다시 높아지고 있다. 또 윤석열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이나 '전략적 자율성'을 내팽개치고 미일동맹에 다걸기를 하는 '전략적 명확성'을 선택하면서 한국이 한반도 밖의 무력 충돌에 휘말릴 위험도 커졌다.
지정학적 위기 고조와 지경학적 기회의 유실이 맞물리면서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에 내몰릴 가능성도 걱정거리이다. 윤석열 정부가 밖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안에서는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를 운운하면서 민주주의의 기초를 허물고 공안 정국을 조성하려는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뭣이 중한가?
한미일 정상들이 미국 대통령의 휴양지에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을 때, 한미일을 포함한 지구촌의 사람들은 기후위기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특히 세계인의 휴양지인 하와이에선 최악의 산불이 발생해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 산불 발생 13일 만에 하와이를 방문한 바이든을 기다린 것은 분노한 하와이 일부 주민들의 가운뎃손가락이었다.
바이든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 지도자들은 그 손가락에 담긴 메시지를 잘 새겨들어야 한다.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냉전 시대보다 더 격렬한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는 세상을 향해 '뭣이 중한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명 "회기 중 구속영장? 말이 되는 소리냐"
- '묻지마 범죄'에 의경 부활? 한덕수 "범죄 대책으로 의경 재도입 검토"
- 통일부, '식물 부처' 만들기? 법 명시된 대화‧교류‧협력 사실상 방기
- 신냉전, 냉전보다 더 위험한 '열전' 될 수 있다
- 해병대 수사단장 측, 법무관리관·국방부 검찰단장도 고발
- 이재명 "오염수 방류는 제2의 태평양전쟁…尹정부 말장난"
- 유승민 "100% 윤석열당…공천 협박 시작됐다"
- '상저하고' 물건너가나 …8월 제조업 체감경기 근래 최저
- '제도 밖의 스승' 리영희를 만나다
- 정부, 오염수 방류 현실화에 "사과할 사안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