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야오밍, 깨지기 힘든 아시아의 전설
스포츠계에서 아시아는 약자의 위치에 서있다. 일부 강세 종목도 존재하지만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인기 스포츠 쪽에서는 양과 질 모두에서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이른바 국제대회에서 승점자판기 혹은 제물로 여겨질 때가 적지않다. 여기에는 신체조건, 인프라, 체계적 전략 전술 등 이런저런 요인이 이유로 지목되고 있지만 당장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진입장벽이 높은 종목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선구자적인 인물들의 행보도 빠질 수 없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메이저리그는 아시아인들에게는 꿈의 무대같은 곳이었다. 이는 아시아에서 야구 강국으로 꼽히던 한국,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박찬호, 일본의 노모 히데오가 해당 무대에서 살아남으며 유의미한 성적을 올렸고 이는 ’아시아 선수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다‘는 불씨를 만들어주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아시아인 최다승(124승)의 주인공이며 노모는 메이저리그 신인왕, 양대리그 탈삼진왕, 노히트노런, 통산 123승(아시아 역대 2위)의 성적을 올렸다.
박찬호 이후로 한국에서는 서재응, 김병현, 김선우, 봉중근, 최희섭, 추신수 등의 러시가 이어졌다. 일본 또한 이라부 히데키, 사사키 가즈히로, 이시이 가즈히사, 마쓰자카 다이스케, 다르빗슈 유 등 자국내에서 잘하는 선수들은 당연스레 메이저리그를 거치게 됐다. 한술 더 떠 스즈키 이치로는 단일시즌 최다 안타 기록에 더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500도루‧골드 글러브 10회 수상의 업적을 쌓았다.
이치로 이후 그 이상의 업적을 남길 아시아인 야구선수는 나오지 않을듯 했다. 하지만 최근 투타겸업의 괴물 '이도류(二刀流)‘ 오타니 쇼헤이가 나오면서 말그대로 메이저리그를 폭격하고 있다. 단순히 잘하는 수준을 넘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향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안 파워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축구 역시 갈수록 아시안 파워가 거세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월드컵에서도 분전을 거듭하고있는 가운데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라 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A, 독일의 분데스리가, 프랑스의 리그 앙 등에서 활약하는 해외파가 갈수록 늘고있는 모습이다. 단순히 숫자만 올라가는 것이 아닌 선수의 질 또한 같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만 보더라도 과거 차범근, 박지성 시절을 거쳐 현재는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역대급 선수들이 한시대에서 활약하며 팬들을 즐겁게하는 중이다. 그 외 야구, 축구에 비하기는 아직 멀었지만 피겨의 김연아, 여자 배구의 김연경, UFC 여성부 스트로급 챔피언 장웨일리 등이 해당 종목의 아시안 파워를 조금씩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구같은 경우 해당 장벽이 가장 높은 종목으로 꼽힌다. NBA에 대한 동경과 관심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성공적 안착은 커녕 진출 조차 쉽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현재까지 하승진(221cm)이 처음이자 마지막 NBA리거로 남아있다. 2004년 2라운드 46번으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된 바 있는데, 아쉽게도 통산 46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6.9분을 소화하며 평균 1.5득점, 1.5리바운드에 그쳤다.
당시 하승진은 기량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미국 현지에서도 보기 드문 압도적 신체조건이 영향을 끼쳐 입단한 경우였던지라 적응에 한계가 있었다. 이후 호주 일라와라 호크스의 이현중(23‧202cm)과 곤자가 대학교의 여준석(21‧203cm) 등이 경쟁력 있는 사이즈를 앞세워 NBA에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껑은 열어봐야하는 상태다.
일본같은 경우 와타나베 유타, 하치무라 루이가 롤 플레이어로 뛰고 있는데 그 정도만으로도 국가대표 경쟁력이 엄청나게 올라간 것을 비롯 많은 아시아 국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만큼 NBA의 벽은 아시아 농구인들에게 높아도 너무 높은 모습인데 역대로 따져도 해당 무대에서 뛰어본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NBA물만 먹어도 해당 선수는 급이 다르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걸어다니는 만리장성'으로 불렸던 야오밍(43‧227.3cm)은 아시아 농구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고 볼수있다. FIBA(국제농구연맹)는 지난 21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야오밍의 2023년 FIBA 명예의 전당 입성을 발표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시아농구와 NBA간의 격차를 감안했을 때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야오밍이 걸어온 길은 여러 가지 면에서 향후 아시아인들이 따라잡기 힘들만큼 굵고 크다. 만약 그와 비슷한 커리어를 남기는 선수들이 다수가 생기고, 거기에 도전할만한 유망주들이 늘어간다면 그때야말로 아시아 농구의 진정한 전성기가 시작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그만큼 야오밍은 탈 아시안 파워를 NBA무대서 과시했다.
이전까지 아시아 출신 대형 센터는 사이즈만 클뿐 느리고 운동신경이 떨어지던가 아님 깡말라서 골밑 몸싸움을 버티지 못하는 존재 정도로만 인식됐다. 야오밍은 달랐다. 빅맨의 사이즈로 스윙맨처럼 뛰고 달리는 운동능력좋은 흑인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신체 밸런스가 좋았다. 주전으로 활약하는데 있어 무리가 없을만큼 몸놀림을 가져갈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였다.
특히 손끝 감각이 워낙 좋아 훅슛, 덩크슛, 핑거롤, 미드레인지 등 다양한 슛을 자유롭게 구사했다. 키가 클뿐 기름손에 슛 적중률이 형편없던 상당수 장신 센터들과는 격이 달랐다. 얼핏보면 호리호리해보이는 몸이었지만 하체가 탄탄해 힘좋은 야수형 빅맨들을 상대로도 몸싸움에서 곧잘 버티어냈다.
나중에 연차가 쌓이면서부터는 그들과 힘으로 경쟁한 후 높이를 이용해 쉽게 쉽게 득점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단순한 한팀의 주전 센터를 넘어 해당 시대 최고 센터중 한명으로 명성을 떨쳤다. 체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 등에 수시로 불려나가며 몸상태가 빨리 무너진 바람에 다소 일찍 은퇴하고 말았던 부분이 아쉬울 뿐이다. 적절히 관리를 받으면서 뛰었다면 아시아 선수로서 좀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는 평가다.
앞서 언급한데로 야오밍은 FIBA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된 상태이며 2016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2001년 아시아컵에서 중국의 8전 전승 우승을 이끈 것을 비롯 아시아컵에서만 금메달을 4번이나 목에 걸었다. 무엇보다 2002년 NBA 신인드래프트에서 아시아 최초(유일) 1순위에 지명된 경력은 당분간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많은 농구 팬들은 제2, 제3의 야오밍이 아시아권에서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FIBA 제공, 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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