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예술과 기록을 거닐다 [MZ 공간 트렌드]
아카이브(archive) : 소장품이나 자료 등을 관리·보존하고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모아 둔 곳.
역사적 기록물의 컬렉션 혹은 그것들이 보관되는 장소를 일컬어 ‘아카이브’라고 한다.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주제·기법·오브제 등에서 범위가 크게 확장된 현대 미술을 우리는 어떻게 ‘아카이빙(archiving)’해야 할까. 그 답을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제시한다.
기록과 예술이 함께하는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이 신규 분관인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이하 아카이브)가 지난 4월 4일 종로구 평창동에 개관됐다. 현대 미술 자료를 수집·보존·연구·전시하는 국공립 최초의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이다. 미공개 작가노트·드로잉·일기·메모·사진·필름·소장 도서 등을 포함해 총 22개 컬렉션, 5만7000여 건의 아카이브를 수집했다.
대지 면적 7300㎡, 총면적 5590㎡에 달하는 미술아카이브는 기능에 따라 모음동·배움동·나눔동으로 구성됐다. 보존·연구·전시를 위한 모음동의 1층과 2층에는 전시실과 레퍼런스 라이브러리가 자리했다. 레퍼런스 라이브러리는 국내외에서 출판된 미술 도서 4500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도록·아트북·어린이 도서 같이 일반 도서관에서 접하기 어려운 서적을 누구나 자유롭게 들여다보며 쉬어 갈 수 있다. 대출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분류 체계 역시 미술아카이브만의 독자적인 분류법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다소 헤맬 수 있지만 색깔·알파벳 등에 따라 직관적으로 구분돼 금세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3층의 리서치랩은 미술아카이브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5만 7000여 건의 소장 자료 원본 열람 서비스를 제공한다. 운영일 기준 5일 전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을 신청하면 하루 최대 10건까지 원본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배움동에서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다목적홀이 들어선 나눔동에서는 각종 학술 행사와 공연 등 공공 프로그램이 열린다.
홈페이지 내 상세 검색 기능을 이용하면 미술아카이브의 다양한 자료를 손쉽게 열람할 수 있다. 디지털화된 파일을 보기 위해 직접 아카이브에 방문해야 하는 타 기관과 달리 미술아카이브는 스마트폰 하나로도 자료 열람이 가능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원 가입도 필요 없고 열람 건수 제한도 없다. 기록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것은 일반 관람객에게 굉장한 메리트로 다가온다.
탈중심화, 열린 미술관의 시작
미술아카이브를 관통하는 개념은 탈중심화(decentering)다. 건축물이 들어선 공간에서부터 탈중심화가 시작된다. 보통 미술관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하나의 부지에 연속성 있게 들어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술아카이브의 세 개 동은 각각 다른 부지에 자리해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다. 택지를 확보한 후 미술관이 들어선 것이 아니라 자투리땅에 건축물을 세우다 보니 자연스레 생긴 특성이다. 언덕이 가파르고 지하에 암반층이 형성돼 공사가 쉽지 않았지만 건축 설계를 맡은 건축사사무소 아크바디는 평창동 부지가 가진 매력을 그대로 살리는 쪽을 택했다.
모음동 건물을 멀리에서 바라보면 컨테이너 네 개가 언덕 위에 얹혀 있는 듯한 모양새가 눈에 띈다. 인근 주거지의 미관을 해치지 않고 암반층도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고 소박한 형태로 건축물은 웅크리고 있다. 주변 지형과 어우러지는 유기적인 공간은 탈중심적으로 구성돼 공간과 공간, 안과 밖을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층마다 조성된 옥상 정원에서도 탈중심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2·3·4층에 각각 외부 출입문이 있어 동네를 산책하다가도 언제든 미술아카이브에 접근할 수 있는 열린 미술관 구조를 갖췄다. 2층 옥상 정원에서는 개관에 맞춰 제작된 정소영 작가의 작품 ‘항해자’를 만날 수 있다. ‘정보의 바다’와 같은 ‘아카이브의 바다’에서 자료를 탐색하는 행위가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작가의 깊은 뜻이 담겼다.
미술아카이브는 전문 강사와 함께 미술관을 산책하며 건축 공간, 아카이브 활용법 등을 소개하는 ‘아카이브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7월 29일 자로 종료했지만 반응이 좋아 정비 후 재운영을 검토 중이다. 이 밖에 미술아카이브의 특색을 반영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소윤 기자 sos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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