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식물 부처' 만들기? 법 명시된 대화‧교류‧협력 사실상 방기

2023. 8. 2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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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교류 관련 4개 부처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합…정부조직법 위반 소지도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통일부가 조직개편을 통해 사실상 북한과 대화 및 교류할 의지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통일부의 핵심 기능을 없애면서 실질적으로 부처의 활동을 마비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통일부는 「통일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개정안을 28일까지 입법예고 과정을 거쳐 31일 차관회의 및 9월 5일 국무회의 절차를 거쳐 공포·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대화와 교류 관련한 부서를 대폭 축소하는 데 있다.

통일부는 교류협력국,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회담본부, 남북출입사무소를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합해서 운영하겠다며 "△남북대화 전략 개발 △교류협력 제도 개선 및 현안 관리 등 남북대화 및 교류협력의 핵심기능 위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남북회담본부는 고위공무원 가급이, 교류협력국과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출입사무소의 경우 고위공무원 나급이 부서장을 맡았는데, 통합되는 남북관계관리단은 고위공무원 나급이 단장을 맡으면서 위상도 축소됐다.

통일부는 관리단을 △남북대화전략과(남북대화 및 교류 총괄) △당국사업운영과(경제교류 담당) △민간교류관리과(사회문화교류 담당) △시설관리과(회담·출입·전방사무소 등 관리) △상황관리팀(남북간 연락채널 운용·관리) 등으로 운영하겠다며 "대화·교류 국면으로 전환시 '추진단' 등 형태로 신속히 전환하여, 대화·교류 기능의 공백이 없도록 유연하게 운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화나 교류 국면이 찾아오더라도 하나의 과 수준에서 대비하다가 이에 대응한다는 것이 가능할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 2007년 이후 입부한 통일부 구성원들의 경우 북한에 대한 경험이나 남북 대화의 경험도 많지 않은데, 준비마저 소홀히 할 경우 적절한 대응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들 조직 축소에 대해 "현 남북관계 수요"를 감안했다며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모든 부처에 이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를 들어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들어온 뒤 입소하게 되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의 경우 2019년 이후 이탈주민의 수가 계속 줄어 집행되는 예산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조직 자체를 통폐합되거나 없애지는 않았다. 현재 정착사무소는 안성과 화천 분소로 나뉘어져 운영되고 있다.

이에 정부가 북한과 대화 및 교류보다는 북한을 압박하고 굴복시키기 위해 통일부를 대북 적대의 선봉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이번 조직개편에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장관 직속으로 '납북자대책팀'을 신설한 것도 이같은 의도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납북자·국군포로·억류자 문제 해결의 시급성·중요성을 고려, 창의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국내외 공감대 확산을 위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장관보좌관의 지휘 아래 4, 5급 팀장 등 5명으로 구성·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납북자와 국군포로·억류자 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북한에 이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 미국도 자국민을 북한에서 데려올 때 북한과 대화 채널을 활용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북한과 어떻게 협상할지에 달려있다.

이런 와중에 대화에 대한 기능을 대폭 축소한 상황에서 납북자 해결을 위해 장관 직속의 팀을 꾸리는 것을 두고, 실제 문제 해결보다는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이번 조직개편은 정부조직법에 대한 위반 소지도 있다. 정부조직법 제31조에 따르면 "통일부장관은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돼 있는데 통일부가 이번 개편을 통해 사실상 대화와 교류‧협력을 방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통일부의 역할을 축소하면서 부처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없애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가 각각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통일부의 핵심인 대화‧교류‧협력 기능을 축소해 '식물 부처'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 2007년 뉴라이트에서 펴낸 <2008 뉴라이트 한국보고서>의 필진으로 참여했는데, 여기서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외교통일부의 신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같은 안이 이듬해 집권한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원회 정부조직 개편안에 포함된 바 있다.

▲ 정부서울청사 본관 통일부. ⓒ프레시안 자료사진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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