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김충남의 시론]

2023. 8. 2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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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사회부장
신입 교사 사망 후 분노 폭발돼
교권보장, 교육환경 안전 촉구
정부도 교권회복 방안 마련해
교권침해 우선적으로 막기로
공교육 정상화·사교육 억제할
교육개혁이 진정한 변화 가능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정을 찾았다. 지난달 18일 1학년 6반 교실에서 극단 선택을 한 신입 교사를 위한 추모 공간이 건물 외벽에 조그맣게 마련돼 있었다. 학교 정문에는 ‘비밀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지켜보는 선배 교사’라는 글이 붙은 근조 화환이 놓여 있었다. 담장 옆 게시판에는 추모객들이 쓴 손 글씨가 붙어 있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악성 민원인 꼭 찾아내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우리 교사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을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이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 때문에 자살한 것인지는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사망 직전 학생들 간 이른바 ‘연필 사건’이 있었고, 학부모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를 받아 힘들어 했다는 것은 동료 교사들의 제보와 서울교사노조가 공개한 고인의 일기장 등을 통해 일부 드러났다.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이 사건은 이미 대한민국을 한 달 넘게 뒤흔들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 보신각에 수만 명의 교사가 모인 것을 시작으로 지난 19일까지 5차례에 걸쳐 주말마다 분노의 함성이 전국을 울렸다. 교사의 교육권 보장과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 억울한 교사 죽음 진상 규명 등이 주요 구호였다. 교권 추락에 대한 교사들의 억눌려온 감정이 응축돼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각종 대책이 쏟아졌다. 교육부는 23일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 방안’을 내놨다. 교권 침해 시 가해 학생과 피해 교사를 즉각 분리하는 법적 근거 마련, 교권보호위원회 운영의 신뢰성 제고, 학교 민원 창구 일원화 등이다. 오는 9월 2학기부터 시행할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 고시안도 윤곽이 드러났다. 서울 등 7개 시도교육청에서 시행되는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권리뿐 아니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추진된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 범죄와 구분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과 아동학대 수사 전 교육청 의견 청취를 의무화하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중대한 교권 침해 행위를 한 학생의 퇴학 등 조치 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교원지위법 개정 등도 추진된다.

이러한 노력이 실현된다면 추락한 교권 회복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교권 강화 조치만으로 교육 공동체의 복원이 가능할까. 사교육 선생을 더 신뢰하고, 교사는 자기 자식의 보호자로 만만하게 여기는 학부모들의 ‘내 자식 지상주의’로 야기된 공교육 붕괴 현상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수업 시간에 문제집을 풀거나 학원 숙제로 못 잔 잠을 자는 풍경이 일상화한 교실에서 교사들의 권한이 커진다고 해서 공교육의 왜곡 문제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벌 사회에서 고소득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이를 돈벌이로 이용하는 사교육 광풍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교권 회복 조치는 사상누각이다. 각자의 소질을 계발하고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 읽고 토론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민주시민 교육이 이뤄져야 교육 공동체의 복원이 가능하다.

이는 사교육 카르텔 혁파와 공교육 정상화, 과열된 입시 경쟁 완화, 대학의 자율성 등을 목표로 한 현 정부의 교육개혁과 맞물려 있다. 전국 초중고교 학교장 803명의 모임인 ‘교권 보장과 교육공동체 회복을 바라는 교장들’은 지난 19일 첫 성명을 내 “교사가 학생을 온전히 교육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하고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 정원도 충분히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교육이 정상화할 수 있는 물적 토대 마련이 공동체 복원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서이초 교정은 초기 조화와 추모글, 추모객으로 뒤덮였던 분위기와 달리 차분했다. 그렇지만 교사들이 남긴 방명록을 보면 교육개혁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선생님 오늘은 국회 집회에 갔습니다. 이제 우리가 서로를 지킬 수 있게 바꿔볼게요. 지켜봐 주세요’ ‘교사들이 힘을 합쳐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교육이 이뤄질 수 있게 하겠습니다’ ‘법과 제도, 인식이 바뀌어 선생님의 교실 벽에 붙여져 있던 ‘배운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노랫말이 아름답게 실현될 수 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많은 선생님과 함께 힘을 모으겠습니다.’

김충남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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