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육류 알레르기가 드문 이유
드라마에서 종종 써먹는 설정이 갑각류 알레르기 반응이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30년 만에 만난 옛 애인과 그동안 존재를 몰랐던 딸과 함께 한 여행에서 갑각류 알레르기 해프닝이 벌어진다.
식당 직원에게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다고 알려 안심하고 매운탕을 먹는데 딸이 국자로 덜다가 새우를 발견하고 아버지를 쳐다본 뒤 장면은 병원 응급실로 바뀐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아버지에게 딸이 서서히 마음을 여는 매개로 이용한 것 같다.
드라마에서처럼 음식물 알레르기로 얼굴이 퉁퉁 붓거나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하지만 드물게는 기도가 부어 호흡곤란으로 죽을 수도 있다. 먹어도 생존에 위협은커녕 대다수 사람에게 별문제가 없는 음식에 왜 어떤 사람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걸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비율이 왜 점점 늘어나는 걸까. 이에 대해 알레르기는 면역계의 과잉 반응이 낳은 오류이고 현대 환경이 점점 더 민감하게 만든 결과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 알레르기 유발 8대 식품군의 공통점
음식물 알레르기는 음식물의 항원(알레르겐)이 장벽을 침투해 비만세포 표면의 면역글로불린E(IgE) 항체에 달라붙으면서 신호가 발생해 나타나는 생리 반응이다. 이때 항원은 음식물에 들어있는 특정 단백질이다.
알레르기 유발하는 대표적인 식품은 8개 군으로 나뉘는데 대체로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다. 달걀, 우유 및 유제품, 땅콩, 견과류, 콩, 어류, 갑각류 및 조개류, 밀이다. 그런데 단백질이 풍부한 대표적인 음식인 육류는 왜 여기 포함되지 않을까.
지난 2021년 학술지 ‘셀’에는 ‘생물적 음식물 품질관리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음식물 알레르기를 다룬 논문이 실렸는데, 위의 여러 의문에 대해 꽤 그럴듯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동물은 영양분을 섭취하려고 먹이를 먹지만 독소나 병원체가 함께 들어올 위험성이 늘 있다.
따라서 이를 피하려는 다양한 품질관리시스템이 진화했고 알레르기 반응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알레르기 자체는 정상 반응이고 다만 증상이 지나쳐 득보다 실이 클 때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품질관리시스템은 단계별로 배치돼 있는데 먼저 눈과 코로 살펴 먹을지를 결정하는 게 첫 번째 단계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거나 냄새가 고약하면 탈락이다. 여기를 통과해 입 안으로 들어가면 맛과 냄새(이 경우 날숨을 통해 구강에서 비강으로 넘어간 분자)로 삼킬지 뱉을지를 판단한다. 참외나 오이를 먹다가 꼭지 쪽에서 엄청 쓴맛이 느껴져 뱉은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단계를 통과해 음식물을 삼킨 뒤에도 탈이 날 수 있다. 많은 독소와 병원체가 감각 정보를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문제가 생겨 복통, 구토, 설사 등으로 고생을 하면 세 번째 품질관리시스템인 ‘조건화된 맛 혐오’가 작동한다.
어떤 음식을 먹고 혼이 나면 그 맛과 냄새가 각인돼 다음에 접했을 때 회피 행동을 보인다. 어릴 때 곶감을 잔뜩 먹고 되게 체해 고생하면 곶감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린다. 이 경우 맛과 냄새는 영양 정보가 아니라 관련된 부정적 경험을 연상시키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음식물 알레르기 역시 조건화된 맛 혐오와 같은 구조의 반응이다. 먹었을 때 탈이 나게 하는 원인을 감지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같은 음식물에 들어있는 특정 단백질을 면역계가 항원으로 인식해 훗날 다시 섭취하더라도 이를 빨리 배출하게 하는 구토, 설사 등의 생리 반응을 유발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많은 경우 해당 단백질만 있을 때는 면역 반응이 유발되지 않는다.
육류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건 단백질이 소화되기 쉬운 형태라 항원으로 작용하기 어려운데다 몸에 독이 될 성분이 들어있지 않아서다. 반면 8대 알레르기 유발 식품군은 독소로 작용할 수 있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면역계를 자극하고 마침 소화가 잘 안 되는 단백질이 많아 알레르겐으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땅콩과 콩류 같은 질소고정 식물은 질소원자가 포함된 독성물질인 알칼로이드를 만들어 병해충의 공격을 막는다. 작물화 과정에서 알칼로이드 함량이 크게 떨어졌지만 많이 먹으면 속이 불편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면역계가 자극돼 미처 소화하지 못한 단백질을 항원으로 삼으면 알레르기로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땅콩의 저장 단백질인 Ara h 1과 2는 열에 강하고 단백질분해효소가 제대로 공략하지 못해 상당량이 장에서도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갑각류의 경우 자체는 동물이지만 해조류나 플랑크톤에서 생산된 독소에 오염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런 상태의 갑각류를 먹다 탈이 생기면 면역계가 미처 소화가 안 된 트로포미오신 같은 갑각류의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해 알레르기 반응이 유발된다. 어릴 때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나타났다면 그 사이 물이 안 좋은 해산물을 먹은 적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 알레르기 반응이 기피 행동 유발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음식물 알레르기가 구토나 설사 같은 생리 반응뿐 아니라 해당 음식물을 피하게 하는 행동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인 연구 결과가 실렸다.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갑각류를 안 먹으려고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이는 동물실험의 결과로 지식에 기반한 행동은 아니다.
미국 예일대 연구자들은 생쥐에게 피하주사로 달걀흰자 단백질인 오발부민과 명반을 주사해 알레르기가 생기게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발부민 역시 그 자체로는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독소 역할을 하는 명반을 함께 넣어준 것이다.
그 뒤 행동 실험으로 물병 선호도를 조사했다. 물통 두 개 가운데 한쪽은 맹물, 다른 쪽은 오발부민 용액이 담겨 있고 생쥐는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오발부민 알레르기가 없는 생쥐는 맛이 구수한 오발부민 용액이 든 통의 꼭지를 핥는 빈도가 훨씬 높았다. 반면 피하주사로 오발부민 알레르기가 생긴 생쥐는 오히려 맹물을 약간 더 많이 찾았다. 영양분이 들어있음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오발부민 용액을 기피한 결과다. 한편 물을 더 마시면 몸에 들어온 오발부민을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
연구자들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이런 기피 반응이 나타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섭취한 오발부민이 장벽을 통과해 비만세포 표면의, 오발부민을 인식하는 IgE에 붙으면 히스타민과 류코트리엔 같은 신호분자를 분비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류코트리엔이 혈액을 타고 뇌의 특정 영역에 작용해 오발부민 용액을 기피하는 행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조건화된 맛 혐오뿐 아니라 알레르기 반응도 기피 행동으로 이어져 독소가 추가로 몸에 들어오는 걸 막는다.
이처럼 정상적인 알레르기 반응의 기능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지만, 왜 득보다 실이 큰 과도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고 그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는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다만 인류의 오랜 진화조차 미처 대비하지 못했을 정도로 낯선 오늘날 환경이 한몫을 한 건 분명해 보인다.
식품첨가물을 비롯해 다양한 인공 화합물이 옛날 같으면 면역계가 그냥 넘어갔을 음식물의 단백질을 알레르겐으로 인식할 수 있게 자극하는 독소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무더위가 물러서면 사찰을 찾아 며칠 머물며 천연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심신을 디톡스해야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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