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팩 합병사 중 잘 나가는 종목 없을까?” 애초에 직상장 어려운 기업만 찾는다

이인아 기자 2023. 8. 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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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팩 합병 기업 10개 중 8개 주가, 기준가 대비 하락
상장 절차 비교적 단순...직상장 못하는 기업들 노크
스팩 합병 시 기업가치 산정 ‘깜깜이’...정보 비대칭 발생

“거래소 심사는 통과하기 어려우니까 직상장하기 애매한 기업들이 스팩 합병으로 상장한다. 증권사와 합병 대상(피합병법인) 간 (기업가치에 대한) 의견만 맞으면 거의 끝난다. 스팩 합병 상장이 오히려 특례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으로 증시에 입성하는 기업 수가 늘어나고 있다. 시중 유동성이 공모주 시장으로 몰리자, 이 흐름에 편승하고자 하는 기업이 증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합병 대상의 기업 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개인투자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팩 합병 절차가 비교적 단순하다 보니, 직상장하기 어려운 기업만 스팩을 통해 합병하려고 한다는 분석도 있다.

스팩은 상장사지만, 기업가치는 없는 페이퍼컴퍼니다. 일반 공모주와 똑같이 공모 절차를 밟아 상장하는데, 상장 이후 3년간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면 원금을 돌려주고 해산하는 방식이다. 비상장기업이 스팩과 합병하면 우회상장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상장 스팩은 82개에 달한다.

그래픽=정서희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스팩 합병으로 증시에 입성한 상장사는 총 10개로 집계됐다. 4개 회사가 스팩 존속합병 방식으로, 나머지 6개가 스팩 소멸합병 방식으로 상장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총 9개 기업이 합병 상장한 것과 비교하면, 기업 수는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스팩 합병을 시도하려는 기업 수는 배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 합병 결의가 취소된 스팩은 총 7개였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2개)과 비교하면 3배 넘게 늘어났다. 스팩 합병으로 증시에 상장하지 못했더라도 스팩 합병 문을 두드린 기업 수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기업들이 스팩 합병을 선호하는 이유는 쉽고 빠르게 증시에 입성할 수 있어서다. 일반적인 기업공개 절차는 까다롭고 복잡하다. 예를 들어 직상장은 여러 사전 준비를 거쳐 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다. 이후 분산 요건·재무 요건·안정성 요건·질적 심사 등을 거쳐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통과 시 증권신고서, 투자설명서를 제출하고 수요예측과 청약 과정을 거쳐 상장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으로부터 퇴짜를 맞거나 정정 요구를 받는 일도 빈번하다.

스팩은 이미 상장된 주식이어서 복잡한 심사 과정이 생략된다. 페이퍼컴퍼니인 스팩에 알맹이인 합병 대상을 맞추는 개념이다. 스팩 합병 절차는 이렇다. 이사회 결의 후 합병 내용을 공시한다. 합병상장 예비심사청구서, 관련 서류 제출하고, 상장 심사를 받는다. 결과가 나오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주주총회를 개최하면 합병 절차가 마무리된다.

기업가치 산정에서도 합병 법인의 의사가 유리하게 반영된다. 직상장과 달리 스팩 합병에는 몸값을 따질 비교 기업군을 제시하지 않는다. 절대 평가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산정하기에 발기인, 합병 법인 간 의사만 맞으면 된다. 다만 거래소 예비심사 통과 여부, 예비심사 승인 후 개최되는 주주총회에서 합병 반대표가 나올 수 있어 시장 관계자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만 제시하면 된다.

상장할 수 있는 기업의 기준도 한참 낮다. 일반 기업이 스팩 합병 상장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경우, 계속사업이익 20억원(벤처 10억원)을 내거나 계속사업이익이 있는 상태에서 매출 100억원(벤처 50억원)을 내면 된다. 여기에 최근 감사의견 ‘적정’만 맞추면 나머지는 정성적 요소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코스닥 시장의 직상장 요건은 훨씬 높고 까다롭다.

합병 문턱이 낮다 보니 기업가치가 부풀려지는 부작용도 뒤따른다. 올해 합병 상장한 10개 기업 중 기준가보다 주가가 오른 곳은 슈어소프트테크, 라온텍 등 두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8개사(팸텍, 벨로크, 셀바이오휴먼텍, 코스텍시스, 엑스게이트, 메쎄이상, 화인써키트, 라이콤 등) 주가는 상장 후 주가가 하락해 기준가보다 낮은 상태다. 직상장한 기업도 상장 후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지만, 스팩합병 상장한 기업의 낙폭이 더 심하다.

상장 후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건 합병 당시 기업가치가 고평가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시를 살펴봐도 스팩의 합병가치 산정 방식에 대해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발기인과 합병 대상이 깜깜이 방식으로 적정 기업가치를 산정한다. 너무 고평가되면 금융당국이 지적하고, 약간 낮추는 게 관례”라고 전했다. 이어 “스팩 합병 상장에서 합병 법인의 기업가치가 뻥튀기되는 게 빈번하다. 스팩은 발기인과 합병 대상 기업, 일반 주주 간 정보 비대칭성이 너무 심해 개인 주주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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