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권한인데···학생인권조례 고치라며 ‘예시’까지 마련하는 교육부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를 대체할 ‘교육공동체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마련한다.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한 데 이어 새 조례 예시안까지 만들어 개정을 유도하기로 했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권한인 조례 개정을 주도하고 나선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23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서 교육부는 “학생인권과 교권이 균형 잡힌 학생인권조례가 마련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의 자율적인 개정을 지원한다”며 “교육 3주체의 권리·책임을 담은 ‘교육공동체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례 예시안(가칭)’을 마련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확산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예시안에는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을 존중하고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를 따라야 한다는 내용 등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간 교권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해왔다. 학생인권조례의 ‘사생활의 자유’ 조항 때문에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을 막을 수 없었고, ‘차별받지 않을 자유’ 조항으로 인해 칭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을 추진하라”고 말했다. 반면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인권조례보다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휴대전화 사용 제지 등의 생활지도나 칭찬·질책 등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를 대체할 새 조례 예시안까지 마련하겠고 나서면서 지자체의 권한인 조례 제·개정에 중앙행정기관이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서울시교육청이 기존 학생인권조례에 학생 책무성 조항을 넣겠다고 한 것처럼 조례를 보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며 “하지만 교육부가 조례 예시안까지 마련하는 것은 지자체와 시도교육청, 지방의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이며 지방분권 시대와도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도 “조례 개정은 교육자치를 존중하며 이뤄져야 하며 행·재정 조치 등으로 시도교육청과 충돌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꼭 택하라고 하는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수평적 파트너십 관계에 비춰봤을 때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과 조례가 충돌한 부분에 대해 (개정을) 권고하는 차원에서 예시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례 제·개정 여부에 따라 교육청에 인센티브나 불이익을 줄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까지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국회 공청회에서 시안으로 공개했던 학교 민원 응대체계도 더 구체적으로 마련했다. 학교장 책임하에 교감과 행정실장, 교육공무직 등 5명 내외의 민원대응팀을 구성해 학교에 제기되는 민원을 통합접수하고 유형을 분류한다. 개별 학교에서 다루기 어려운 민원을 처리하도록 교육지원청에도 변호사 등 전문인력이 포함된 교육장 직속 통합민원팀을 설치한다. 단순·반복 민원을 처리할 인공지능(AI) 챗봇, 지각·결석 등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지능형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도 개발한다.
이번 방안으로 학교와 학부모의 소통 창구가 지나치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소통창구 단일화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식이 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교무실무사 등 교육공무직들이 악성 민원을 떠맡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정부는 유초중등 교사와 별개로 어린이집 보육교사에 대한 보호조치도 강화하기로 했다. 보육교사가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아동학대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건복지부 주도로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추진한다. ‘보육교사 권리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유보통합 과정에서 보육교사 보호 체계도 새로 마련한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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