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훗날 어떤 걸 포기할까? 6억2400만달러의 허와 실[스조산책 MLB]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가 고교 시절 작성했다는 인생 계획표를 보면 무척 구체적이고 예언가적 기질도 엿보인다.
18세에 미국에 진출해 이듬해 영어를 마스터하고 트리플A에 오른 뒤 20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 22세에 사이영상을 받는다는 원대한 꿈은 고교 졸업 후 일본프로야구(NPB)에 입단했기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으나, 나이 별로 목표를 정해놓는 치밀함과 이후 실천에 옮기려는 성실함은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예로 27세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해 우승과 MVP에 오른다는 계획은 소름돋을 정도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오타니가 이끈 일본 대표팀은 지난 3월 제5회 WBC에서 마이크 트라웃의 미국을 결승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대회는 원래 오타니가 27세이던 2021년 개최 예정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2년이 연기됐을 뿐, 오타니는 이미 고교 시절 제5회 WBC 참가를 목표로 세우면서 MVP가 될 것임을 호기롭게 예감했던 것이다.
또 눈에 들어온 계획은 40세에 은퇴하되 마지막 경기에서 노히터를 달성하겠다는 것. 오타니가 40세가 되는 시즌은 2034년이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투타 겸업을 하겠다는 포부가 놀랍다. 물론 그 나이에 타자를 포기하고 투수로만 활약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성격상 투수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오타니는 은퇴할 때까지 투타 겸업을 유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타자 혹은 투수, 하나만 하는 여느 선수들보다 두 배의 노력과 체력이 필요할텐데, 40세까지 투타 겸업이 가능할까. 의학과 트레이닝 이론을 굳이 따르지 않더라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오타니의 '대선배'격인 베이브 루스는 투타 겸업을 사실상 두 시즌만 하고 투수를 포기했다. 엄격히 보면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투수로도 에이스였던 루스가 타자로 전향한 건 순전히 개인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투타 겸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첫 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루스는 1915년 풀타임 선발로 18승을 올린 뒤 1916년과 1917년 각각 23승, 24승을 따내며 최정상급 투수로 자리잡았다. 1916년엔 당대 최고의 투수 월터 존슨과의 맞대결서 5전4승을 거두기도 했다. 1916년과 1918년 월드시리즈에서는 29⅔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벌이며 두 차례 우승에 기여했다.
그가 타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18년 즈음이다. 4~5일에 한 번 선발등판하고 대타로 가끔 타석에 서는 게 연봉 측면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하던 터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빅리거들이 대거 군입대하면서 선수 부족 사태가 생기자 주전 타자로의 전향을 꿈꾸게 된다.
당시 에드 배로우 보스턴 감독은 루스의 타자 전향을 망설이다가 외야수 해리 후퍼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투수로 나서지 않는 날 루스를 외야수 또는 1루수로 기용했다. 주전 야수로도 활동폭을 넓힌 루스는 그해 투수로 13승7패, 타자로는 11홈런을 치며 생애 첫 홈런왕에 올랐다.
타격 재미에 푹 빠진 루스는 1919년 투수로는 9승5패에 그쳤지만 타자로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어 29홈런을 터뜨리며 전국구 홈런타자로 이름을 알렸다.
거포 변신에 성공한 루스는 1920년 10만달러의 현금 트레이드로 뉴욕 양키스로 옮기면서 날개를 달았다. "타자에 전념하라"는 밀러 허긴스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라이브볼 시대의 개막과 함께 54홈런을 날리며 전설의 행보를 시작했다.
루스는 오타니처럼 체력 걱정을 해야 할 만큼 투타 양쪽에서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명타자가 없던 시절 투타 겸업은 특별하지도 않았고 2배의 연봉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타니는 투타에서 항상 극한의 노력을 다한다. 출전 기회를 모두 채우려 하는 그에게 수비 때 지명타자로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건 따분한 일이다. 때로는 치어리더를 자처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해 규정타석, 규정이닝을 모두 넘긴 건 오타니의 성과 중 가장 빛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는 생애 첫 홈런왕을 포함해 50홈런-200탈삼진에 도전하고 있다.
오타니가 훗날 투타 둘 중 하나를 포기한다면, 그건 체력적인 문제 때문일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올해 말 FA 시장에서 오타니를 영입하고 싶어하는 구단들이 투타 가치를 따로 매겨 몸값을 계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상 계약기간은 최소 10년이다. 그가 은퇴할 때까지 투타 겸업을 유지할 것이라는 낙관론인데, 하나를 포기할 '사태'에 대비해 관련 조항을 따로 작성할 지는 모를 일이다.
ESPN은 최근 오타니의 FA 계약 규모를 전망하면서 11년 6억2400만달러가 적정치라고 주장했다. 오타니가 타자로는 트레이 터너(11년 3억달러), 투수로는 게릿 콜(9년 3억2400만달러)과 각각 활약상이 비슷하다는 걸 근거로 들었다. 이게 과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더욱 흥미롭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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