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 ‘똘똘한 한편’ 골라 봤다
예상보다 쪼그라든 박스 오피스
빅4 합쳐 926만… 시너지 없어
밀수 482만·콘유 290만 관객
1000만 배우·감독 이름값 못해
밀수가 기선제압 성공하며 흥행
더문 신파적 스토리 거부감 참패
지난 7월 26일 영화 ‘밀수’가 개봉되며 시작된 한국 영화 ‘빅4’의 여름 대전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다. 22일 기준, ‘밀수’(482만), ‘콘크리트 유토피아’(290만·콘유)와 ‘비공식작전’(104만), ‘더 문’(50만)이 희비쌍곡선을 그린 가운데 성장 임계점에 도달한 박스오피스와 ‘똘똘한 한편’을 골라 보려는 관객의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외화들의 역량은 돋보였다. 안진용(이하 안), 이정우(이하 이) 기자가 빅4의 성적표를 꼼꼼히 분석했다.
◇시너지 효과는 없었다
안: 네 편 합쳐 ‘범죄도시3’(1068만 명) 정도의 스코어를 낼 것이라 예상했는데 어느 정도 적중했다. 엔데믹 상황인데도 관객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 관객들이 비싼 티켓값, 가성비 등을 고려해 합리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 특히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같은 날 개봉돼 관객을 나눠 갖는 결과를 초래했다. 파이가 작아져 더 이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 여름 대작이라고 모두 챙겨보는 건 옛날 얘기다. 한국 영화는 특히 입소문에 민감하고 대세를 따라가는 경향이 강했다. ‘밀수’가 초반 흥행을 주도하면서 그다음 주 개봉한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묻혔다. 특히 ‘비공식작전’은 CGV 골든에그지수가 빅4 중 가장 높았지만 흥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선택 단계에서 이미 차순위로 밀린 탓이다. 상대적으로 늦게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작품성을 정당하게 평가받았다.
◇‘똘똘한 한 편’만 본다
안: 박스오피스가 예상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한국 영화 4편의 흥행 총합이 1340만 명 정도였는데 올해는 현재까지 926만 명 수준이다. 200만 명쯤 더하는 데 그칠 것 같다. ‘밀수’의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더 문’의 실패는 의외다. 충분히 극장에서 볼만한 재미를 갖춘 작품인데 철저히 외면받았다. 신파적 스토리를 거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반면 ‘어둡다’고 느꼈던 ‘콘유’는 탄탄한 만듦새가 호평받으며 흥행 순항 중이다. 똘똘한 한 편을 찾는 관객의 선구안은 더 매서워졌다.
이: 대중은 ‘나쁜’ 콘텐츠를 걸러내는 힘이 있다. 신파, 조폭 클리셰, 불성실한 코미디처럼 관객을 기만하는 영화는 걸러낸다는 나름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그동안 역량보다 많은 관객을 모았던 특정 한국 영화에 대한 반감이 쌓인 결과이기도 하다. ‘왜 이제 300만, 500만 명을 모으기 어렵지’가 아니라 그간 300만, 500만 영화가 너무 많았던 건 아닐까. 지금은 극장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극장은 선택 사항이다. 좋은 영화라고 반드시 흥행하는 건 아니지만, 대중이 거른 영화라면 분명 이유가 있다.
◇한국 영화 ‘기선제압’, 외화 ‘롱런’
이: 한국 영화는 개봉 주말에 운명이 결정됐다. 가장 먼저 개봉한 ‘밀수’가 기선 제압에 성공하면서 사실상 여름 빅4 대전은 끝이 났다. 반면 외화는 여론보다는 관객 개개인의 기준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미션 임파서블:데드 레코닝 파트1’은 영화 자체가 투박했고, 파트1이란 한계도 컸다. 그리고 관람 행태가 달라졌다. 남녀 데이트족보다 가족 단위 관객이 힘을 낸 것 같다. 전 연령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인 ‘엘리멘탈’이 ‘롱런’한 이유다.
안: 지난해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엘리멘탈’은 ‘탑건:매버릭’, ‘미션 임파서블’은 ‘토르:러브 앤 썬더’, ‘미니언즈2’는 ‘오펜하이머’로 치환됐다. 특히 ‘엘리멘탈’과 ‘탑건:매버릭’은 두 달간 장기 상영하며 극장가를 사실상 지배했다. ‘오펜하이머’는 초반 화력이 대단하지만 장르적 특성을 고려할 때 대박은 힘들 것 같다. 다만 한국 영화의 흥행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긴 충분했다. 이제 ‘제로섬 게임’이 확고해졌다. 이제는 경쟁이 덜한 틈새시장에 공개 후 장기 상영을 노려야 한다.
◇사라진 ‘티켓파워’ 효과
이: 1000만 영화 중 그에 걸맞은 만듦새를 보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평가가 쌓여서 반발 심리가 생긴 것 같다. 관객들은 약점이 없는 영화보다 ‘확실한 강점’을 가진 영화를 선호한다. 극장에 가서 봐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줘야 한다. 몇몇 허점이 있더라도 관객을 끌 수 있는 뚜렷한 매력을 갖춰야 흥행 영화가 될 수 있다.
안: 동감한다. 사실 ‘범죄도시’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단점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관객은 본다. 마동석이라는 캐릭터의 압도적 파워와 유머 그리고 결국 통쾌한 권선징악 때문이다. ‘1000만 감독·배우’는 한 줄 홍보 수단일 뿐이다. 지난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다고 다음번에도 딴다는 보장이 없다.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는 입소문 앞에 맥없이 무너진다. ‘한국 영화니까 보자’는 ‘국뽕’ 역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추석 격돌하는 한국 영화 세 편
안: 강제규 감독·하정우의 ‘1947 보스톤’, 김지운 감독·송강호의 ‘거미집’, 강동원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설경의 비밀’ 등 라인업이 화려하다. 하지만 이번 여름 극장가를 보고 뜨끔했을 것이다. ‘흥행 보장’이란 건 없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봉일 잡기부터 홍보 전략 구축 경쟁도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흥행과 별개로 ‘비공식작전’으로 연기력을 재입증한 하정우의 절치부심, 1년 만에 돌아오는 송강호와 강동원의 자존심 대결이라 할 만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시사회 뒤로 미루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 ‘누가 먼저 개봉하느냐’가 제일 중요할 거 같다. 먼저 공개된 영화에서 ‘걸러낼 요소’가 없다면 1위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천박사 = 밀수’, ‘1947 보스톤 = 더 문’, ‘거미집 = 콘유’ 구도와 비슷하다. 박스오피스가 작아져 결국 혈전일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3무승부도 가능하다.
안진용·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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