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처럼 거북처럼 왔어도 모두 모였다…저 솟구치는 '천왕일출'을 보라
2인자 설움 끄떡없는 중봉…비탈길 따라 걷고 걸으니 유평 하>
[편집자주] 여름휴가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많은 사람이 바다와 계곡, 호텔과 펜션에서 좀 더 안락한 시간을 원하지만 ‘거꾸로 휴가’를 보내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편하기보다는 고생하더라도 도전하며 성취하는 ‘쉼표’, 일종의 극한 휴가다. 폭염 속 등산, 쉽지 않지만 할 수 있다. 기왕 한다면 지리산 화대 종주(화엄사~대원사 46.2㎞)는 어떨까. ‘3박 3일’ 종주기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서울=뉴스1) 서영도 기자 = 새벽 3시 20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장터목에서 잠을 자는 이유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배낭을 챙기고 랜턴을 켜며 대피소를 나선다. 장터목(1653m)과 천왕봉(1916m)의 고도 차이는 263m지만 거리는 1.7㎞ 정도다. 그만큼 가파르다. 오르막이라도 보통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일출 기대감으로 다른 구간보다 걸음이 빨라진다.
제석봉(帝釋峯·1808m)까지 600m는 바위 같은 돌길이 이어져 특히 힘들다. 숨 쉴 틈 없이 도착하니 왼쪽에 고사목(故死木)으로 유명한 제석봉이 보인다. 제석봉은 하늘에 제를 지내며 국가와 백성의 태평성대를 기원했던 곳이다.
이곳은 1950년대에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연료난이 심하던 때라 도벌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도벌꾼들은 도벌의 흔적을 없애려 불을 질러 그 불이 제석봉을 태워 지금처럼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이제 하얀 고사목의 헐벗은 외침도 곧 끝날 것 같다. 20년 전부터 심은 구상나무가 차츰 덩치를 키우고 있어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을 앞두고 있다.
통천문까지 다시 600m는 평범하게 걷는 길이다. 오른쪽 멀리 잠에서 깨기 시작한 도심의 불빛이 안개를 뚫고 뿌옇게 들어온다. 산청이거나 함양, 하동, 아니면 진주일지도 모르겠다.
통천문은 바위 사이에 큰 바위가 얹혀 있는 모양이라 보기에도 아찔하다. 바위 밑을 통과해야 하는데 지금은 데크를 설치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다시 20분 정도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천왕봉에 닿은 마지막 구간이다. 앞으로 올려다보니 벌써 도착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설렘으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손에 잡힐 듯한 거리다. 멀리 붉은 빛이 감도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대한민국 최고봉에 발을 내디뎠다.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 되다’ ‘智異山 天王峰 1915’ 문구가 양쪽에 새겨진 표지석이 반갑다.
도착한 순서대로 기념사진 찍느라 정상은 쉼 없이 움직인다. 거북이처럼 늦게 왔어도 토끼처럼 빨리 왔어도 일출 앞에 모두 한날한시에 섰다.
오전 5시 43분. 동쪽을 붉게 물들인 태양이 육중한 모습으로 힘차게 솟아오른다. 손뼉을 치며 감격의 환호가 이어진다.
한여름의 태양은 땡볕이지만 달이 바뀌면 따사롭게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 따뜻하게 다가온다.
사실 2주 전 대피소를 예약할 때 3박 4일간 날씨는 모두 비 올 확률 80~90%로 일출을 볼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태풍 ‘카눈’이 비구름을 정체시켜 운이 좋게 지리 10경 중 맨 처음으로 꼽는 ‘천왕일출’을 보게 된 것이다.
지리산 날씨는 워낙 변화무쌍해서 일출 구경은 덤이다. 천왕봉을 10번쯤 올랐으나 온전한 일출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라고 했지만, 부덕한 기자는 혼자 본 적이 없다. 함께 오른 후덕한 사람들 덕분이다.
동쪽엔 태양이 꿈틀거리지만 서쪽엔 수묵화 같은 운무가 밀려간다. 또 다른 그림이다. 천왕봉에서 왼쪽으로 바로 내려가면 칠선계곡이다. 여기는 봄·가을 4개월만 개방한다. 계곡이 험해 국립공원 직원이 동행해서 오른 적이 있다.
태양과 구름바다를 동시에 눈에 넣으며 하산한다. 정면엔 길고 깊은 능선이 실루엣처럼 펼쳐진다.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시구를 새기며 천천히 걷기로 한다.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고 가파르다. 천왕봉에서 900m를 내려오자 중봉(1874m)이 앞을 막는다. 지리산의 두 번째 봉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만년 2인자 신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서 있다.
몇 개의 데크와 바위를 건너며 1.5㎞를 걸으니 써리봉(1685m)이다. 써리봉은 바위 봉우리들이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는데, 마치 그 모양이 농기구 써레를 닮아 붙여졌다. 싸리봉으로 잘못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 주변에 싸리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편한 길이 계속된다. 곧 치밭목 대피소가 나타난다. '치밭'은 원래는 곰취, 참취 등 '취나물밭'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천왕봉으로 가자면 비탈길로 치받아 올라가는 고개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대피소는 침상이 36개일 정도로 작고 한적하다. 아침을 못 먹고 와서 간단히 햇반으로 때웠다. 요즘은 대피소에서 햇반을 데워서 판다. 직원한테 ‘유평마을까지 3시간 걸리나요’ 물으니 ‘컨디션이 좋으면요’ 답한다. 쉽지 않다는 의미다.
거의 8㎞를 더 걸어야 대원사에 닿는다. 중간에 대피소 없이 꽤 긴 거리다. 40~50분 왔을까. 무제치기교 다리가 나온다. 포말을 날리며 더위를 식혀줄 3단 무제치기 폭포를 지나쳐버린 것이다. 공중에 걸려 있는 무지개를 친다고도 하고 재채기를 멈출 정도 맑은 공기가 있는 곳이라 하는 무제치기 폭포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려나?
새재삼거리(용수삼거리)까지 경사가 심한 내리막의 연속이다. 2005년 종주 땐 이 내리막길이 참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곳곳에 데크가 설치돼 그때보다 수월하다. 휴대폰 통화가 안 될 정도로 깊고 외로운 계곡 길이다.
새재삼거리에서 유평마을까지는 비탈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듯한 힘든 길이 계속된다. 지루하지만 ‘하늘 아래 첫 동네’ 유평(柳坪)이 어떻게 변했는지 빨리 보고 싶다. 마을이 가까워졌는지 약초채취 금지라는 푯말이 곳곳에 보인다. ‘지금도 약초를 재배해 생활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려왔더니 펜션과 민박집이 즐비하다. 곳곳에 전원주택도 보인다. 예전에 화전민이 살았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대원사까지 1.5㎞는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를 감내해야 하지만 왼편에 흐르는 대원사 계곡(유평계곡)의 유장하고 유연한 물살이 위안이다. 곳곳에 피서객들이 계곡에서 이 여름을 이겨낸다. 우람한 바위에 몸을 뉘고 있는가 하면 흐르는 물을 몸에 붓고 있기도 하다. 대원사 계곡과 관련해 나온 가슴 아픈 표현이 있다. 흔히 죽었을 때 쓰는 '골로 갔다'는 말은 빨치산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골짜기에 들어가면 살아서 못 나왔기에 유래됐다고 한다. 그럴듯한 민간 어원설이지만, 현대사의 비극이 만든 비극어가 여기서 나온 셈이다.
오후 3시가 넘은 대원사는 한적하다. 땡볕이라 거니는 사람도 없고 비구니 스님도 보이지 않는다. 대원사는 여름과 겨울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수행하는 선원으로 유명한 곳이라 이 적막한 풍경이 어울릴 수도 있다. 절간 같이 조용한 대원사를 뒤로하고 다시 속세로 나선다.
syd00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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