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이 봤다면 '고향'이라고 할 땅
테이블처럼 정상이 평평한 산 메사와 태양광 증발 광산
미국 서부의 유타주州는 5개 국립공원을 아우르고 있다. 브라이스와 아치스 공원은 섬세한 조각품을 진열해 놓은 것처럼 여성적이다. 자이언캐니언, 캐피톨 리프, 그리고 지금 가고 있는 캐니언랜드국립공원은 거친 야생의 남성상이다.
거침없는 시공간에 군더더기 없는 장엄한 자연경관을 보여 주는 곳. 놀라운 자연의 속살을 보여 주는 5곳의 국립공원을 5총사, '더 마이티 파이브The Mighty 5'라고 부른다. 이제 일주일이라는 짧은 그랜드서클 탐방도 끝나간다.
마지막 캐니언랜드로 가기 위해 우리는 풍경도로로 지정된 UT-128번 도로를 달렸다. 붉은 콜로라도고원을 뚫고 침식시키는 콜로라도강이 만들어 낸 협곡 도로. 콜로라도강의 위대함은, 그 강이 만든 그랜드캐니언을 생각한다면 설명은 군더더기가 된다. 콜로라도강이 UT-128번 도로도 만들었다.
강물이 붉다. 며칠 전 비가 왔다더니 붉은 강이 세차게 흐른다. 바위도 붉다. 강이 파낸 것을 알려 주듯 크게 커브를 돌 때마다 붉은 사암이 절벽을 이룬다. 땅도 붉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찬 물길이 깎아 낸 바위도, 흙도 붉은색이었으니까. 그랜드서클 탐방 일주일이 지났으나 우리는 아직 콜로라도강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UT-128번 도로를 소개하는 글은 허풍이 아니었다. 단애의 붉은 절벽이 접고 있는 병풍처럼, 급커브로 이어지는 기막힌 풍경도로. 그러니 수많은 TV 광고와 함께 서부영화의 단골 촬영장소일 수밖에. 이 협곡에서 가장 유명한 피셔 타워Fisher Towers도 붉은 바위 첨탑이었다. 이곳엔 콜로라도강이 깎아 낸 본류와 함께 수많은 지류들 탐방에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50km를 달려 오래된 다리 듀이 브리지Dewey Bridge에서 돌아섰다.
캐니언랜드를 가기 위해 돌아 나오는 콜로라도강 도로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급한 물살임에도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든 유타의 산간도시 모압Moab을 방문할 때 UT-128번 풍경도로를 놓치면 후회할 것이다.
하늘의 섬Island in the Sky
설악동 같은 모압은 아치스와 캐니언랜드국립공원이 있어 존재하는 곳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양 국립공원이 지척에 있다. 캐니언랜드국립공원 가는 길 역시 사방이 붉다. 캐니언랜드는 유타 오총사 '더 마이티 파이브' 중에 가장 큰 넓이를 가지고 있는 공원. 이 공원에는 정상이 테이블처럼 평평한 산이라는, 거대한 메사와 황무지가 특징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는 불모의 땅.
국립공원 방문자센터는 방문객을 위해 존재한다. 지금까지 많은 방문자센터를 다녔지만, 한 번도 불쾌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레인저들이 진심으로 싹싹하다. 공원 입구에 있어, 첫 방문이라면 무조건 그곳에서 정보와 안내를 받는 게 옳다.
캐니언랜드 방문자센터는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Island in the Sky로도 불린다. 뜬금없는 '하늘의 섬'이라는 이름이지만, 그럴듯하다. 탐방을 진행할수록 그걸 실감한다. 이곳에는 정상이 테이블처럼 평평한 산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런 산을 스페인어로 '탁자'란 뜻의 '메사'로 부른다. 바닥에서 1,000피트(300m) 위에 있는 메사 정상에 방문자센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
그랜드 뷰 포인트 로드Grand View Point Road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탐방도로였다. 방문자센터에서 필요한 자료를 받고 차를 달렸다. 그랜드 뷰라는 말처럼 탁 트인 도로 양쪽의 메사와 절벽이 시야를 압도한다. 도로 역시 평평한 메사 정상을 달리고 있으나 시야가 거칠 게 없다. 입구에서 10분쯤 가니 '메사 뷰 아치Mesa View Arch' 안내판과 주차장이 보인다. 인기 많은 곳이라 이미 주차장이 꽉 차있다. 잠시 대기하니 빈자리가 생겼다.
아치로 이어지는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메사 뷰 아치는 캐니언랜드 공원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상징물. 1km를 걷다 보면 만나는 돌다리 아치는, 아치스공원의 델리키트 아치를 닮았다. 불가사의하게 산 정상에 우뚝 선 것도 그렇지만 규모도 크다. 다만 델리키트 아치가 수직형으로 솟았다면 메사 뷰 아치는 수평형 돌다리였다.
아치 밑에 앉아 위를 바라보니 돌다리 몸집이 튼실하다. 내 돌머리로는 이 아치의 생성과정을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여기는 메사 정상, 산꼭대기 아닌가. 계곡이나 산 중턱에 있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산 정상에 웬 돌다리?
방문자센터에서 받은 설명은 이렇다. 바다였고, 침전된 흙의 종류가 달랐고, 바다가 융기해 고원이 되었고, 물과 바람의 침식으로 약한 부분이 날아가 구멍이 생기고, 그래서 돌다리가 된 거라고. 그렇게 자연이 조각을 다듬는 데 걸린 시간이 수천만 년이다.
미국의 두물머리 그랜드 뷰 포인트
메사 뷰 아치의 반대쪽은 단애의 절벽. 아찔한 그 절벽을 보니 아치가 메사 정상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알 것 같지만, 정말 믿을 수 없는 자연의 현상을 마주한다. 아치스의 델리키트 아치는 한쪽 기둥의 균열이 보였다. 그렇다면 튼실한 돌다리, 메사 뷰 아치의 생존이 좀 더 오래 갈 것이다.
그곳을 떠난 우리는 그랜드 뷰 포인트Grand View Point로 냅다 달렸다. 그곳이 종점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차는 평평한 산 정상을 달리는 중이었고, 그 끝은 낭떠러지라는 말이다. 시선이 놀라는 이유는 끝없이 넓고 방대한 대지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지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산정에서 보는 것이기에 당연한 일이겠으나,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는 원초적인 침식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실시간 보여 주는 지질학의 풍경 속에 말을 잊었다. 이래서 공원 이름을 캐니언랜드라 했던가? 지질학적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도로가 끝나는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이론보다는 보는 게 더 이해가 빠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그래서 옳다. 우리는 높은 절벽 끝에 서있고, 깊은 바닥은 한참 아래에 보인다. 그렇다고 그 바닥이 계곡이라는 말은 또 아니다.
그 바닥 역시, 평평한 또 하나의 메사였다. 툭 터진 풍경을 조망하며 양평 양수리, 즉 두물머리를 떠올렸다. 두물머리는 두 강물이 머리를 맞대듯이 만나,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걸 말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온전한 한강이 되는 것처럼. 여기가 그랬다.
절벽 끝으로 돌출된 뷰포인트에서 내려다보이는 두물머리. 왼쪽으로 흐르는 그린강Green River과 오른쪽에서 흘러오는 콜로라도강. 내 눈앞에서 완벽하게 합수되고 있다. 그리하여 한강처럼 이제 콜로라도 강으로 통수, 통일을 이룬다. 양수리에는 수목이 울창하고 사람 사는 동네도 있지만 이곳은 불모의 땅이다. 시공이 광활해, 붉은 화성을 동영상으로 보는 것처럼 낯선 풍경.
아득하게 가라앉은 바닥에 유일한 사람 흔적이 보였다. 비포장도로였다. 그 도로가 원근법처럼 가물거리며 메사 사이로 사라지고 있다. 캐니언랜드의 대표적인 모험도로 오프로드 코스였다. 메사 사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화이트 림White Rim 비포장도로는, 위험한 드라이브 코스로 소문난 길. 우리가 있는 정상에서 한없이 내려가야 하는 절벽에서, 누구라도 공포감에 떤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무서움을 찾는 여행자들도 있다. 당연하게 4륜구동의 차이어야 하고 또 허가증과 함께 입장료를 내야 한다. 하긴 귀신 나오는 영화도 돈 내고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이해는 간다. 하지만 단애의 절벽을 구불구불 내려가는 비포장도로를 바로 눈앞에서 보며 나는 가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폭력적인 햇볕의 힘, 태양광 광산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Dead Horse Point State Park은 캐니언랜드 바로 곁에 있었다. 데드 호스 공원에서 캐니언랜드는 바로 눈앞에 보인다. 우리가 사방을 관찰했던 그랜드 뷰 포인트도 보였다. 그곳은 과연 스카이 아일랜드, 하늘에 떠있는 섬이 맞았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메사 그리고 그 절벽 끝의 뷰포인트. 붉은 절벽 너머 아직 흰 눈을 쓰고 있는 라 살 산맥La Sal Mountains이 몽환처럼 하늘에 걸려 있다. 그러니 더 섬처럼 보일 수밖에.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에서는 그린강은 보이지 않고 그 대신 콜로라도강이 가까이 다가섰다. 전망대에 올라 막막한 경치를 감상하다가 신기루처럼 파란 호수를 발견했다. 깜짝 놀랐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이곳엔 절대 호수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있었다. 그리고 더 황당한 말을 들었다. 태양광 전기는 들어봤어도, 태양광 증발 광산은 처음 듣고, 처음 본다. 알고 보니 태양열 증발 광산이 맞았다. 그것도 자연친화적인 광산. 물을 증발시켜 칼륨과 소금을 생산하는 광산이다. 그게 가장 안전하고 싼 방법이란다. 유타주 남서부 지역의 건조한 기후와 폭력적인 햇빛 때문에 최적지라는 것.
듣다 보니 우리나라 남해안 천일염 생산 원리와 같다. 이 협곡 아래는 칼륨과 소금 퇴적물이 켜켜이 쌓여 있다. 대략 3억 년 전에 콜로라도강이 염분과 기타 광물을 날라 이곳에 퇴적시켰다. 소금과 칼륨이 침전되어 땅 속에 막대한 양의 광맥을 형성했단다.
양이 엄청나다. 가공 공장이 건설되고 주정부는 공장을 잇는 도로와 보너스로 철도까지 만들었다. 3억 년 전 퇴적물을 이제 수확하고 있는 것이다. 공짜 햇볕으로 말려가며 100년은 너끈히 챙긴다는 노다지 태양광 증발 광산. 호수가 과장되게 파란 이유는 태양광을 좀 더 받아들이는 약품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 유한한 노다지 캐기는 언젠가 끝날 일이다. 그때가 되면 모였던 사람들은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기가 막힌 풍경을 자랑하는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은 영원하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더 찾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유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립공원이라는 말을 듣는 게 그 배경이다.
전망대에서는 눈 아래로 가까이 다가 선 콜로라도강이 보였다. 이곳 역시 메사였다. 강 위로 600m 이상 솟아 있는 탁자 산정. 여기서 보는 캐니언랜드의 메사와 붉은 첨탑이 숨 막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붉은 땅, 붉은 바위, 붉은 산을 파노라마로 제공하는 데드 호스 포인트 공원. 거칠 것 없이 붉은 사막을 마주한 전망대에서 해넘이를 만났다. 붉은 노을이 하루를 접어 가듯 우리 여정도 그렇게 끝났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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