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에 만루 홈런 맞고 직접 찾아가서 심술 부리다니… “김하성은 좋은 선수” 쿨한 인정

김태우 기자 2023. 8. 2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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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만루 홈런으로 팀 승리를 이끈 김하성
▲ 22일 김하성의 초반 대활약은 팀의 분위기를 바꿔놓는 결정적인 촉매제가 됐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샌디에이고 지역 유력 매체인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23일(한국시간) 전날 있었던 재밌는 상황 하나를 소개했다. 샌디에이고는 22일 홈구장인 펫코파크에서 열린 마이애미와 경기에서 6-2로 이겼다. 김하성(28)의 대활약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날도 선발 리드오프로 나선 김하성은 1회 첫 타석부터 2루타를 쳤다. 20일 정말 중요했던 애리조나와 더블헤더를 모두 내주며 극도로 처진 팀 분위기를 다시 살리는 소중한 2루타였다. 이어 도루를 해 3루로 가더니 마차도의 희생플라이 때 득점을 올렸다. 펫코파크의 분위기를 달구는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였다. 샌디에이고의 흐름도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2회 두 번째 타석에서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경력 첫 만루 홈런을 작렬하며 기선 제압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자신의 바블헤드 증정 시리즈에 걸맞은 대폭발이었다. 한편으로 샌디에이고 구단 역사상 한 경기에 만루 홈런, 2루타, 도루를 모두 기록한 첫 선수로 역사에 기록되기도 했다.

샌디에이고는 이러한 경기 초반 김하성의 대활약, 그리고 선발 마이클 와카의 호투에 힘입어 연패를 끊고 한숨을 돌렸다.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자신들보다 앞서 있는 마이애미를 잡았다는 것도 의미가 컸다.

그런데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경기가 끝나고 한 시간 뒤, 한 마이애미 선수가 샌디에이고 클럽하우스로 이어지는 복도에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경기장들은 규모가 큰 만큼 보통 홈과 원정 클럽하우스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 더그아웃 위치처럼 끝에서 끝이다. 원정 선수가 홈쪽 복도에 등장할 일은 특별한 행사가 있지 않는 이상 별로 없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 선수는 이날 대활약한 김하성을 찾아가더니 소리를 질렀다.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펫코파크 복도에서 큰 소리로, 그리고 가짜 분노로 김하성을 맞이했다’고 묘사했다. 이 상황의 마이애미 선수는 바로 라이언 웨더스(24)였다. 그런데 김하성도 이 ‘가짜 분노’가 싫지 않을 이유가 있을 법했다. 사연이 있었다. 웨더스의 친정팀 방문, 옛 동료들과 재회였기 때문이다.

▲ 김하성의 만루 홈런으로 샌디에이고는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났다 ⓒ연합뉴스/AP통신
▲ 펫코파크를 뜨겁게 달군 김하성의 그랜드슬램
▲ 라이언 웨더스는 김하성을 막지 못하고 조기 강판 수모를 당했다

웨더스는 한때 샌디에이고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특급 유망주였다. 고교 시절 전미 최고의 투수 중 하나로 유명세를 탔다. 건장한 체구에 좌완으로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었고, 손의 감각도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웨더스는 2018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의 1라운드(전체 7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시즌 성적이 최하위권으로 처지는 굴욕 속에 얻은 소중한 상위 픽이었고, 그 픽으로 뽑은 웨더스를 샌디에이고는 애지중지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차분하게 과정을 거친 웨더스는 ‘즉시 전력감’이라는 호평 속에 2021년 꿈에 그렸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22세였다. 또래보다 데뷔가 빨랐다.

샌디에이고는 웨더스가 팀 선발진의 미래로 클 것이라 기대했다. 완성형 선발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평균 94마일 수준의 묵직한 구위에 짝을 이루는 슬라이더의 구위는 분명 플러스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2021년 30경기(선발 18경기)에서 94⅔이닝을 뛰었다. 데뷔 시즌치고는 출전 기회는 충분했다. 4승7패 평균자책점 5.32의 수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세금이라고 위안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상 뻗어나가지 못했다. 2022년에는 딱 1경기 출전에 머물렀다. 특별히 큰 부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만한 공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커맨드가 너무 흔들렸다. 지구 우승을 위해 달려야 하는 샌디에이고는 웨더스가 제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릴 만큼 한가한 팀이 아니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조정 과정을 거치며 1년이 지났지만 이 문제는 올해도 해결되지 않았다.

기대를 걸고 한 자리를 줬지만 낭패였다. 끝내 트레이드 대상이 됐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판매자’가 되지 않고 시즌을 끝까지 달려보기로 결심한 샌디에이고는 마감일 직전 마이애미와 트레이드로 웨더스를 넘겼다. 아꼈던 유망주지만, 당장 공격 생산력이 바닥인 1루 포지션을 책임질 게릿 쿠퍼가 더 급했던 것이다. 마이애미는 웨더스를 얻어 이미 호평을 받는 그들의 젊은 선발진을 보강했다.

이적 후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웨더스는 이날 친정팀과 옛 동료들을 상대했다. 그것도 옛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펫코파크에서였다. 많은 팬들이 격려의 박수로 웨더스를 환영한 가운데, 성적은 좋지 않았다. 3⅓이닝 동안 5피안타(1피홈런) 5볼넷 4탈삼진 5실점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역시 2회 연속 3볼넷을 허용한 뒤 김하성에게 만루 홈런을 얻어 맞은 게 결정적이었다.

▲ 샌디에이고 소속 당시의 라이언 웨더스
▲ 웨더스의 2021년 모습. 김하성(왼쪽)이 옆에 보인다
▲ 옛 동료인 웨더스를 상대로 홈런포를 터뜨린 김하성 ⓒ연합뉴스/AP통신

웨더스는 경기 후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많이 긴장되기도 했고, 많은 생소함이 있기도 했다. 내가 트레이드된 지 20일, 3주 정도가 지났다. 오늘은 감정이 격한 날이었다. 이상한 등판이었다. 나는 18살 때 드래프트됐고, 여기서 2년 반 동안 뛰었으며 6년간 조직에 있었다. 오늘 감정을 숨기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결국 긴장한 탓인지 볼넷 남발에 무너졌고 김하성에게 일격을 허용했다. 사실 홈런을 맞은 건 실투는 아니었다. 2S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96.6마일(155.4㎞)짜리 패스트볼을 몸쪽 바짝 붙였다. 오히려 칭찬할 만한 코스였다. 그런데 김하성의 스윙이 날카롭게 돌았고, 자신의 몸쪽을 더 파고 들기 전 공을 끄집어 내 좌측 담장을 넘겼다.

웨더스도 “조금 더 공격적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3명에게 볼넷을 주지 않았다면 4실점이 아닌 솔로홈런이었을 것”이라고 후회하면서도 “나는 내 자리에 던졌다. 그(김하성)가 좋은 선수다. 그가 좋은 스윙을 했다”고 깔끔하게 인정했다.

웨더스와 김하성은 나이는 다르지만 팀 데뷔는 2021년으로 같다. 그래서 친분이 있다.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 또한 ‘웨더스가 김하성을 샌디에이고 동료 중 가장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로 언급했다’고 했다. 그런 친분이 있었기에 직접 복도까지 찾아가 싫지 않은 ‘심술’을 부린 것이다. 김하성도 웨더스에게 격려의 이야기를 해줬을 법하다. 승부는 치열하지만, 그 승부가 끝난 뒤 우정도 진하다.

▲ 22일 펫코파크의 영웅으로 등극한 김하성 ⓒ연합뉴스/AP통신
▲ 김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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