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초월하는 이해와 공포[이주영의 연뮤덕질기](9)
막이 열리기 전, 현악기 연주자들이 튜닝하는 기대의 시간. 슬며시 연주자들 사이로 누군가 움직인다. 모던하고 세련됐으나 자세히 보면 실밥이 너덜너덜한 의상이다. 한 손에 감은 붕대는 늘어지다 못해 질질 끌린다.
맨발로 무대 위와 아래, 무대 뒤와 앞을 어슬렁거리는 이 등장인물은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이른바 ‘잔혹연극(theater of cruelty)’ 개념을 널리 알린 20세기 초 극작가다. 그는 강렬한 리듬과 음향을 동반한 신체 움직임으로 관객들이 공포와 광란을 경험케 해 인간 본연의 특별함을 끄집어내는 방식을 제안했다. 각자의 경험치가 더해져 새로운 진실, 혹은 깨달음에 다가서도록 함축되고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앙토냉 아르토와 빈센트 반 고흐의 시공 초월 만남을 담은 한국 창작 뮤지컬 <아르토, 고흐>는 ‘잔혹연극’ 개념을 작품화했다. 아르토의 고흐에 대한 에세이가 기반이다. 실제 연출과 연기도 겸했던 아르토는 극중 “인생은 질문을 불태우기 위함”이라며 고흐를 이해하고자 폴 고갱이 되고, 테오 반 고흐가 되기도 한다.
퍼커션(타악기)이 포함된 현악 4중주 라이브 연주는 배우들의 절규 같은 노래와 달리기, 점프, 액션 페인팅에 다채로운 음향과 리듬을 더해 분위기를 북돋운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온몸으로 표현해 아르토가 내린 결론은 “고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은 뒤 한참 후 태어난 아르토에게 고흐는 화답한다. “너는 나를 극복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덧칠이 최초가 됐듯이 너는 그 자체로 최초다.” <아르토, 고흐> 출연진들이 무대 가운데 자리한 커다란 캔버스에 덧칠을 거듭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연극 <2시 22분: 고스트 스토리>(이하 ‘2시 22분’)는 시공을 초월한 존재를 인정하는 쪽과 부정하는 쪽의 ‘티키타카(빠른 대화)’로 구성된 작품이다.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여우 비명과 기괴한 사운드가 여러 공간(주 무대인 거실과 2층 아기방·베란다·베란다 밖 여우굴 등)에서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객석을 도시 외곽 여우굴 옆에 옮겨놓는다.
오래된 집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 제인과 샘 부부는 친구 커플을 초대해 식사 중이다. 제인은 집에 깃든 혼령이 2시 22분이면 아기방에서 울고 걸어다닌다고 토로한다. 서로 다른 욕망의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생각을 쏟아내는 동안 어느새 새벽 2시 22분이 된다. 제인의 불안에 공감하지 못하고 혼령은 없다고 주장한 샘이 사라지고 무대 위는 갑자기 아수라장이 된다.
결정적 순간 서사가 뒤집히는 반전극 <2시 22분>의 진정한 공포는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환경문제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낙후된 지역이 개발되며 원주민이 배척되는 현상)이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체험하고 느끼게 하는 이 두 작품은 예상 못 한 결말에 대한 토론을 관객 리뷰로 이어가며 새로운 막을 연다. <아르토, 고흐>는 8월 27일까지, <2시 22분>은 9월 2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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