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없다[편집실에서]
삼성을 비롯한 4대 그룹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재가입이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 복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합니다. 미국 정·재계에 두루 발이 넓어 ‘미국통’으로 알려진 류진 풍산 회장의 수장 취임과 함께 그간 은인자중하던 전경련이 ‘화려하게’ 활동을 재개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름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는 각오입니다. 6개월여 동안 전경련을 사실상 이끌어온 김병준 직무대행은 상근고문으로 물러나지만, 여전히 정치권과 재계를 오가는 소통 창구로서 ‘막후 실세’ 역할을 이어가리란 전망이 나옵니다.
1961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탄생한 전경련은 이병철, 정주영, 구자경, 최종현, 김우중 등 대기업 오너들이 잇달아 회장을 맡으면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회원사들은 정부의 저리 대출과 자금 할당 등으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수출을 늘려 국익 증대에 기여하면서 ‘한강의 기적’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심각한 부작용도 낳았습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재벌 중심으로 짜이는 밑거름이 됐고, 정경유착의 온상으로 자리 잡는 핵심 고리 역할을 전경련이 수행했습니다.
IMF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뒤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기존의 정부 의존 방식 대신 내부 유보금을 쌓고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만일의 위기에 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첨단제품 개발, 경영 혁신 등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중소기업들과의 격차를 벌렸습니다. 정부 수준을 능가할 정도로 발전한 기술 수준과 정보량, 상황분석 능력 등을 앞세워 정부 정책에 깊숙이 개입했고, 입법부와 정부 관료를 움직여 사업 인·허가, 대형 인수합병, 소유구조 개편, 상속·증여 관련 각종 이권을 챙겼습니다. 합법과 불법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교묘한 방법으로 정권의 요구에 응하면서도 받을 건 받아내는 ‘은밀한’ 거래를 이어왔습니다. 그게 선을 넘어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고, 정권이 초토화됐습니다. 이재용 삼성 회장을 비롯한 재계의 당사자들도 줄줄이 사법처리를 받으면서 정치권과 재계의 밀고 당기기 창구로 지목받아온 전경련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습니다.
지금까지 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해외 순방, 부산엑스포 유치전, 잼버리 참사 뒷수습 등 과정에서 보이는 재계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면 정권과 재계의 손발이 겉으로는 착착 맞는 듯싶습니다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겠지요. 4대 기업의 재가입으로 ‘완전체’를 이룬다면 그 전경련을 매개로 주고받을 이권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사회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그에 따른 상실과 좌절은 각종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누가 누가 못하나 경쟁하듯 으르렁대는 정치권은 도통 갈등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못하는 상황에서, 그 틈을 비집고 ‘그들만의 제국’이 더 커져버리면 훗날 우리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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