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사랑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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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시인은 당신 주변의 문우들이 작품집을 발간하거나 잡지에 글이 실리면, 발췌한 시행을 화선지에 친필로 담아 보내주신다.
나는 처음 일반우편으로 받아 든 글자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나에게 온 글자를 '사랑체'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글씨들이 가득 찬 세상에서 오직 하나로 남아있는 사랑체는 나이 들어서도 결코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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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시인은 당신 주변의 문우들이 작품집을 발간하거나 잡지에 글이 실리면, 발췌한 시행을 화선지에 친필로 담아 보내주신다. 나는 처음 일반우편으로 받아 든 글자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나에게만 주신 특별한 선물인 듯 달뜬 기분에 취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선생의 글자를 만남으로써 내 착각이 민망했으니, 마음 품이 너른 선생의 심미안(審美眼)과 따뜻한 손길이 빚어낸 미더운 솜씨를 더욱 귀하게 간직하며 기억한다.
새 책을 출간하는 동료 작가들이 우편으로 자신의 저서를 보내올 때가 있다. 서적을 받아 두 손에 펼쳐 들면 부러움에 이어 존경심이 뒤를 잇는다. 챙겨주신 뜻이 고맙고 각별하다. 가까이에 두고 꼼꼼하게 읽어보리라 책장을 연다. 내지에 적힌 저자 서명을 찬찬히 살피며 글자체에 담긴 글쓴이의 마음자리를 기웃거린다. 창작혼이 깃든 정신의 단면을 만나는 것 같다. 가끔은 저자 친필이 없는 우편물 도서를 받기도 한다. 어쩌면 바투 다가온 일정 때문인지, 이러저러한 정황을 어림잡아 헤아리며 석연찮은 마음을 눙친다.
겉봉에 친필로 주소와 이름이 적힌 책을 받으면 반가움은 물론이거니와 자못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손수 쓴 글씨를 오래 바라본다. 개별적인 영성이 담긴 글자체를 마주하는 순간의 눈맛이야말로 그윽하고 충만하다. 부려놓은 주소 주위를 가위로 오려내고 잔조롬하게 배열한다. 이어 앞뒤로 맞대어 도톰히 풀칠하면 마침맞은 서표(書標)가 되어 책갈피로 제 자리를 찾는 호듯한 쓰임새가 기특하고 정겹다.
만년필이나 붓펜 등 필기구가 부려낸 필체의 굵기와 흐름을 살펴보면, 얼굴빛을 감싸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에게 온 글자를 '사랑체'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고요한 시간에 물끄러미 바라보기로 음색의 하모니가 아늑하게 귓전을 맴돌기도 한다. 자형에 따른 서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친필은 세상에 하나뿐이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글씨들이 가득 찬 세상에서 오직 하나로 남아있는 사랑체는 나이 들어서도 결코 늙지 않는다. 그대에게 닿은 내 글자도 기어이 그러하기를! 하인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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