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안전! 처벌이 아닌 문화로의 정착이 우선이다

최길학 대한건설협회 충남·세종시회 회장 2023. 8.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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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학 대한건설협회 충남·세종시회 회장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지 40년이 지났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에서 발생한 故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와 2020년 경기도 이천의 물류창고 화재 사고 같은 몇 가지 초점 사건들은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과 같은 경영주 또는 기업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이런 목소리에 힘입어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경영책임자의 책임 및 경제적 제재를 담보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지난해 1월부터 시행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산업현장 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24년 1월 27일부터는 중대재해 적용에서 유예됐던 50인 미만 사업장의 유예기간이 종료된다. 이에 5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지역 산업현장에 큰 변화가 불어 닥칠 전망이다. 다만 일부 사업장은 아직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 방법을 모르고 있거나 "사고만 나지 않으면 괜찮다"는 다소 안일한 반응을 보인다.

경영주는 안전과 보건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영주는 안전한 일터 조성이 국민적 심사가 된 현시점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둬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한 법원의 모든 판결이 유죄로 결론이 난 것으로 미뤄 알 수 있듯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또 지역 내 대다수 산업현장이 3D 업종에 속하는 등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역시 우리 지역이 직면한 현실이다. 이는 신규 인력 수급을 위해 외국인 근로자 감소로 인한 생산품질 저하와 함께 근로자의 안전보건에까지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산업현장은 위험하고 힘든 곳이라는 기피 현상으로 이어져 인력 수급을 지속해 힘들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영주의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관심은 앞서 언급한 악순환의 반복을 끊어낼 수 있는 중요한 해결책 중 하나일 것이다.

추락, 끼임 등 기본적인 안전설비만 갖추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막을 수 있는 사고들도 끊이지 않는다. 안전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수준이 미흡하다는 방증이다. 자신은 물론 상대방도 배려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위험한 행동을 하는 동료와 사업주에 대해서 정당한 요구를 떳떳하게 주장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안전문화 정착은 길게 보고 가야 하는 길이다. 법과 제도를 강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이미 확인했다. 근본적 해결책은 건설인들이 지난 수십 년간 강조해 온 '제값 주기', '제대로 된 공사 기간' 등 적정공사비의 확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쟁점이 되는 무량판 구조 공법의 경우 층고를 더욱 확보할 수 있고 내부 공간 활용이 비교적 용이하며, 층간 소음 완화기능과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적용하는 검증된 공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요즘 세상에 누가 철근을 고의로 빼먹으며 부실시공을 할 수 있겠는가.

안전설비나 교육시스템을 '갖추기'보다는 '감추기'에 더 신경을 쓴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의식과 관행 등 문화 자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이익으로 직결된다는 인식 아래 시설과 설비를 갖춰야 한다. 교육 체계도 꼼꼼히 살펴보고 미흡한 부분은 설계를 새로 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중대재해 예방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선 모든 중대재해가 아닌 '상습·반복 사망사고에만 형사처벌'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처벌 우선'이 아닌 '안전재해 예방활동'이 선행돼 '안전이 우선'이라는 인식 조성이 급선무다. 현재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을 위한 TF를 운영하는 만큼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영세중소기업들을 위해 준비기간을 더 부여해 주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들을 더 이상 범법자로 내몰지 말아주길 바란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예기간 종료가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이 우리 일터가 안전하고 건강한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할 적기일 것이다. 정부와 기업, 근로자가 한 곳을 보고 중단 없이 한발 한발 걸어가야 안전이 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

최길학 대한건설협회 충남·세종시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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