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미끄덩’ 변기 나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8. 23.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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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터로 윤활액 함유한 변기 인쇄
어떤 물질도 흔적 남지 않고 내려가
연잎 표면 모방한 변기 코팅제도 나와
”세계적 물 부족 문제 해결에 도움” 기대
변기에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는 신기술들이 잇달아 개발됐다. 화장실 청소 부담을 덜 뿐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vecteezy

화장실에서 변기를 닦는 솔이 필요 없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과학자들이 변기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해줄 신소재와 코팅 기술을 잇달아 개발했다. 주변에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소변기도 나왔다. 과학자들이 개발한 새로운 변기들은 화장실 청소에 들어가는 수고를 덜 뿐만 아니라, 저개발국가의 화장실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전 지구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한몫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리콘 오일 덕분에 모든 미끄러져

중국 화중과학기술대 재료공학과의 빈 수(Bin Su) 교수 연구진은 이달 초 국제 학술지 ‘첨단 공학 재료’에 “아무리 사포로 긁어내도 표면이 미끄러워 어떤 물질도 달라붙지 않는 변기를 3D(입체) 프린팅 기술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3D 프린팅은 잉크를 뿌리듯 재료를 층층이 쌓아 입체를 만드는 기술이다. 화중과기대 연구진은 플라스틱과 모래 알갱이를 혼합해 변기 형태로 쌓았다. 이후 레이저로 열을 가해 플라스틱과 모래 알갱이가 완전히 융합된 구조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안까지 침투하는 윤활유인 실리콘 오일을 발랐다.

물을 밀어내는 물질로 만든 소재(HHS)는 우유나 요구르트, 꿀에 적시면 흔적이 남지만(오른쪽 위 사진), 새로 개발한 내마모성 미끄러운 소재(ARSS)는 아무 흔적이 남지 않는다(오른쪽 아래)./중 화중과기대

이번에 만든 변기는 실제보다 10분의 크기였다. 연구진은 변기에 진흙탕물과 우유, 요구르트, 꿀, 젤, 합성 배설물을 던져 시험했다. 기존 변기 소재는 물에 잘 달라붙지 않도록 표면을 가공해도 흔적이 남았지만, 새로 만든 변기는 어떤 물질도 달라붙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특히 변기를 사포로 1000번 이상 문질러도 미끄러운 상태를 유지했다. 연구진은 사포로 표면을 긁어내도 안쪽까지 윤활유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표면을 미끄럽게 만든 변기가 있었지만, 내구성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연구진은 3D 프린팅 변기는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이물질이 달라붙지 않아 배설물을 제거하는 데 들어가는 물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기차 화장실처럼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곳에 적용하면 물 사용량이 크게 줄어 결과적으로 운송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기대했다.

◇미끄러운 표면 만드는 코팅제도 개발

앞서 지난 201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기계공학과의 탁싱 웡(Tak-Sing Wong) 교수 연구진은 ‘네이처 지속가능성’ 저널에 기존 변기도 배설물 흔적이 남지 않도록 표면을 미끄럽게 해줄 코팅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물 사용량도 90%나 줄였다.

연구진이 개발한 ‘액체 침투성 매끄러운 표면(liquid-entrenched smooth surface, LESS)’ 코팅제는 자연을 모방했다. 연잎이 늘 깨끗한 것은 표면에 미세한 돌기들이 나 있고, 그 사이를 공기가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물방울은 돌기 때문에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이물질과 같이 굴러떨어진다.

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가 개발한 변기. 1차로 뿌린 스프레이가 마르면 표면에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리콘 미세 털 구조가 생긴다(녹색). 2차 스프레이는 그 사이에 실리콘 오일 윤활유를 채운다(노란색). 그 결과 표면에 어떤 물질도 남지 않고 미끄러진다(아래 사진)./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코팅제는 2단계로 변기 표면을 연잎 형태로 바꾼다. 먼저 첫 번째 실리콘 스프레이가 마르면 표면에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지름이 100만분의 1이나 가는 털들이 서 있는 모양이 된다. 이들은 물을 밀어낸다. 두 번째 스프레이는 이런 미세한 털 사이로 윤활유인 실리콘 오일을 주입한다. 이 모든 과정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웡 교수는 “실험실의 변기에 새로 만든 코팅제를 바르고 합성 배설물을 버렸더니 완전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아무것도 달라붙지 않았다”고 밝혔다. 합성 배설물에 형광 염료를 혼합하고 눈에 보이는 흔적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을 측정했다. 코팅된 변기 표면은 유리 표면보다 물을 90% 덜 필요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세계적인 물 부족 문제 해결에 도움

매일 1억1400만t의 담수가 변기 물을 내리는 데 쓰인다. 이는 아프리카의 하루 물 소비량의 거의 6배에 달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물 부족 상태에 있다. 변기를 미끄럽게 만드는 기술은 물 사용량을 줄여 전 지구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 3D 프린팅 변기는 실제 크기로 만들면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핀란드 알토대의 윌리엄 웡(William Wong) 박사는 “변기의 내구성이 뛰어나고 사용되는 윤활유가 환경에도 해를 주지 않지만, 고가의 레이저 제조 기술을 현재의 변기 생산 공정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변기 코팅제 역시 500번의 물 내림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었지만, 실제 배뇨 상황을 가정한 모의실험에서는 50번 물을 내린 후에 코팅을 보충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모양의 소변기. 왼쪽 두 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실험 결과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키에 상관없이 소변방울이 밖으로 튀기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캐나다 워털루대

이와 달리 남성용 소변기는 모양만 바꾸면 기존 공정을 그대로 쓰고도 청소 부담과 물 사용량을 모두 줄일 수 있다. 캐나다 워털루대 기계공학과의 자오 판(Zhao Pan)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미국물리학회 유체역학 분과 연례 학술대회에서 “개와 앵무조개를 모방해 소변방울이 튀기지 않는 남성용 소변기를 새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소변기 바닥은 늘 흥건해 발을 어디 둘지 고민한다. 소변이 변기에 부딪혀 밖으로 튀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먼저 강아지 수컷이 오줌을 누는 모습을 관찰했다. 강아지는 늘 다리를 들어 소변 줄기가 나무나 전봇대와 30도 각도를 이루게 했다. 그러면 강아지 다리에 소변 방울이 튀기지 않았다.

다음에는 다양한 모양의 소변기 시제품에 물줄기를 뿜으며 ‘마법의 각도’인 30도가 유지될 수 있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좁고 기다란 소변기(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남성의 키에 상관없이 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변기 내부는 앵무조개처럼 나선형으로 굴곡을 이뤄 항상 30도 각도로 소변 줄기가 부딪혔다. 일반 소변기는 이 형태보다 소변이 50배나 더 튀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실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날이 기대된다.

앵무조개. 소변기 내부에 앵무조개처럼 나선형 굴곡을 만들면 소변줄기가 늘 30도 각도로 변기와 부딪혀 밖으로 튀기지 않았다./위키미디어

참고 자료

Advanced Engineering Materials(2023), DOI: https://doi.org/10.1002/adem.202300703

University of Waterloo(2022), https://uwaterloo.ca/news/engineering-research/solving-messy-problem

Nature Sustainability(2019), DOI: https://doi.org/10.1038/s41893-019-0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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