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는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었나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사례 2077건 모음집’이라는 전자문서가 있다. PDF 파일과 노션(협업 기록 소프트웨어) 링크로 유포되었다. 편집자는 익명의 교사들이다. 이들은 지난 7월21일부터 7월23일까지 사흘 동안 초등학교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 사례 2077건을 모아 한 권의 전자책으로 묶었다. '민원 스쿨(minwon_school)'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하고 추가 제보도 받고 있다.
이 문서에서 교권침해의 주어는 온통 ‘학부모’다. ‘개인 번호 알아내 개학식 날 저녁 8시에 전화한 학부모’ ‘시험문제 직접 출제하여 내미는 학부모’ ‘설사까지 치워줬는데 돌아오는 건 항의뿐’ ‘내 전화 안 받았다며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학부모’ ‘우리 아이 마음 다치니 받아쓰기 틀린 것 빗금치지 말라는 학부모’ ‘수업 중인 교실에 불쑥 들어와 나간 전구 개수를 세는 학부모’…. 2077개 ‘진상’ 학부모 열전이 문서를 빼곡히 채웠다.
지난 7월22일부터 주말마다 서울 종로구 보신각과 광화문 인근에서 열리는 교사 집회에서도 학부모는 학생, 학교 관리자, 교육청, 교육부 못지않은, 아니 그들을 앞서는 교권침해의 주동자로 지목되고 있다. 7월29일 광화문에서 열린 교사 집회를 다녀간 김훈 소설가는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 교사들은 ‘학부모’라는 익명의 거대 집단을 직접 겨냥해서 발언하지 않았고, 다만 ‘악성 민원’이라고, 에둘러 가는 언어를 사용했다. … ‘악성 민원’은 학생들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제기해온 것이므로, 무대조명 안으로 소환되지 않은 ‘학부모’라는 익명 집단은 이 사태의 핵심이며 배후였다(8월4일 〈중앙일보〉 ‘[김훈 특별기고]‘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공교육과 그가 죽었다’).”
악성 민원인, 교권 침해자, 가해자, 진상, 몬스터, 괴물, 악마…. 지금 한국 사회가 학부모라는 집단을 부르는 말들이다. 학부모는 어쩌다 이렇게 공공의 적이 되었을까? 학부모는 정말 최근 교육계에서 발생한 다수 비극적 사태의 핵심이자 배후일까? 도대체 요즘 학부모는 어떤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특성과 학교 현장의 무엇이 충돌을 일으키는 걸까? 공교육에서 학부모의 권한은 어디까지이고 책임은 어디서부터일까? 학부모가 공교육의 건전한 주체로서 인정받고 기능할 수 있으려면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
교육기본법 제5조 3항과 제13조 1·2항, 공교육정상화법 제6조에 학부모(학생의 보호자)의 권리와 책임이 명시되어 있다. 법률 조문 속 학부모의 역할과 지위는 ‘협조’ ‘참여’ ‘지원’ ‘존중’이라는 키워드로 나타나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그것들이 ‘간섭’ ‘개입’ ‘민원’ ‘협박’ 등으로 변질된다. 우리 반과 우리 학교를 위한 건의, 제안, 참여는 저조한데, 내 아이 하나만을 위한 요구, 부탁, 항의는 빗발친다. 아무런 방어막 없이 그 개별적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들이 고통을 호소하다가 더러는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7월18일 서울 서초구 S 초등학교 2년 차 교사의 죽음 이후 학부모는 더욱더 교사에게 공포의 대상, 사회적으로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요즘 학부모’에 대한 비난은 예전에도 있었다. ‘치맛바람’이라는 용어가 대표적이다. 압박의 수단이 과거 ‘촌지’에서 현재 ‘민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 신문 기사들만 들춰봐도 “요새 들어 더 거세진 치맛바람”으로 인해 담임교사가 교체되고, 교사가 폭행당하고, 학생의 성적과 자리 배치가 바뀌는 등 스승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며 당시의 학부형·자모·가정주부를 꾸짖고 개탄하는 기사나 사설을, 지금의 공교육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 1960년대 아카이브에서부터 꾸준히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 보편성을 넘어선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진상’ 학부모는 언제 어디에든 늘 일정 비율 있어왔다며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기에 지금 학교 현장에서 불거진 학부모-교사 갈등이 너무 잦고 크고 남은 상처 또한 깊다. 언제부터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요즘 학부모’는 대체 뭐가 다른 걸까? 〈시사IN〉은 교사·학부모·전문가들에게 ‘요즘 학부모’의 기원과 특성, 교사와 상호 신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물어보았다. 처한 입장과 사는(근무) 지역, 개별 경험 등에 따라 세부 분석은 각기 달랐지만 몇 가지 겹치는 키워드와 해석의 틀을 발견했다.
■ 1980년대생 ‘신종’ 학부모의 출현
첫 번째는 세대론적 분석이다. 김기수 전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0년 6월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의 특성’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원에서는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서 연구 주제를 제안받기도 했는데, 이 주제는 한 초등학교 평교사가 제안한 것이었다. 김 전 연구위원은 “제안 배경이 ‘요새 학부모들이 옛날 학부모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때문에 서로 갈등이 불거지는 일이 너무 많은데 요새 학부모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거였다고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김 전 연구위원이 꼽은 1980년대생의 특성은 개인과 조직을 ‘거래적 계약’으로 보고,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고 그것을 통한 정보 소통과 공유를 좋아하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한편 상호 협력 욕구도 강하다는 점 등이다. 이들이 학부모가 되자 갖게 된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학교의 주된 역할을 학습 지도보다 인성 지도와 공동체 생활, 창의력 신장으로 보고 2. 자녀가 ‘학교폭력’에 연루되는 걸 가장 두려워하며 3. 교사와 전화, 카톡, 문자메시지, 앱 등을 통해 부담감 없이 소통하고 4.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관심은 매우 크지만 학교의 공식 학부모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는 꺼린다. 김 전 연구위원은 “이런 특성은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대세고 흐름이다. 지금 학부모 세대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서부터 이들과 교사 간의 신뢰 회복 방안을 찾아나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책을 쓴 전직 초등교사 이은경씨도 비슷한 관점으로 요즘 학부모를 해석한다. 본인 역시 1980년대생 학부모이기도 한 이씨는 1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지금은 ‘슬기로운 초등생활’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초등학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방송·강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씨는 학부모들과 SNS 등으로 자주 소통하면서 예전과 다른 변화를 감지했다. “DM으로 구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상담 질문 중 하나가 ‘(자녀가 학교에서 무슨무슨 일을 겪어서 문제 제기하고 싶은데) 제가 예민한 걸까요? 아니면 그냥 넘어가야 할까요?’다. 긴 사연들을 다 읽어보면 90%는 학부모가 예민한 게 맞고 10%만 문제 제기가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학부모가 아이에 대해 점점 예민해지고 있다는 게 해가 갈수록 확확 더 느껴진다.”
이씨는 지난해 여름 ‘80년대생 부모 마음, 궁금해요!’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였다. 1980년대생 학부모 1866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반드시 갖추었으면 하는 덕목을 한 가지만 선택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응답자 63.1%가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1178명)’를 선택했다. ‘집중력을 높이는 교수법(4.7%)’ ‘아이를 휘어잡는 카리스마(1.8%)’ 등은 우선순위에서 훨씬 처졌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돌고 있는 ‘진상 부모 체크리스트(〈그림 1〉 참조)’ 중 많은 항목도 이런 현상을 뒷받침한다. 기다려주기, 이유를 들어주기, 친절하게 말해주기 등은 요즘 인기 있는 양육서에 자주 등장하는 자녀 존중 팁이다.
이씨는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명제에 관한 1980년대생 학부모의 경험과 학습에 괴리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1980년대생은 딱히 학교와 가정에서 존중받고 자라난 세대는 아니다. 체벌과 폭력이 일상적이었고, 부모는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해 대학 보내놓으면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여겨진 시대였다. 그러다 아이 키우는 세대가 되었을 때 이들은 몸소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녀 존중법을 책이나 오은영 박사 같은 전문가에게서 배우려고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상당 부분 오해가 발생했다. ‘가정 안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상처 주지 말고 자녀를 존중하라는 이야기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모든 장소에서’ 내 자녀가 절대 상처받으면 안 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잘못 확대 해석되었다. 그러니 내 아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옆집 엄마든 시부모든 담임교사든 가만있지 않게 되었다.”
■ “어린이집에서는 다 들어주던데요”
1980년대생 학부모 혹은 지금의 초등학교 학부모 대다수는 ‘무상보육 1세대’와도 겹친다. 2012년부터 시작된 무상보육 정책에 따라 자녀를 영아기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선택이 된 세대다.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교사들이 많이 시달린다는 ‘우리 아이 웃는 사진 좀 많이 찍어서 (학급 밴드 등에) 올려주세요’ ‘아이 가방에 콧물약 넣어서 보냈으니 ○시경에 투약해주세요’ ‘오늘 애가 아침을 안 먹고 가서 배고플 텐데 점심 전에 뭐라도 좀 먹여주세요’ 같은 학부모 민원은 사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당연히 해주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 제기가 가능한 요구들이었다.
6년 동안 특수교사로 재직하다가 2009년부터 경기도 화성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해온 박현주 꿈고래어린이집 원장은 “첫 단추는 보육에서부터 잘못 끼워졌다”라고 말했다. “2012년 무상보육을 시작할 당시 정부는 ‘낳기만 하면 정부가 키워준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보육기관 종사자는 서비스직이고 학부모들은 그 서비스를 누리고 평가하는 데 익숙해졌다. 학급당이 아닌 재원생 머릿수대로 보조금이 나오는 탓에 아이 한 명을 붙잡기 위해 어린이집 교사고 원장이고 부모의 요구를 무한정 들어주며 무조건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지금 학교에서 불거지는 교사 아동학대 고소고발, 녹음기 지참 등의 논란도 어린이집에서 먼저 겪었던 일이다. 학부모들이 보육기관에서 갑질인 줄 모르고 행하던 갑질, 서비스의 요구를 학교에 가서도 그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의 여러 교사들도 요즘 학부모의 달라진 모습 중 하나로 ‘소비자 마인드’를 짚는다. “학부모들이 학교에 오기 전부터 자녀를 보육기관이나 사교육 기관에 보내며 소비자로서 권리를 주장해온 경험에 익숙해졌다. 보내다 마음에 안 들면 뺄 수 있고 ‘더 신경 써달라’ 댓글 문자로 따질 수 있는 영역이었으니 학교에서도 그 경험 그대로 ‘내가 돈(세금)을 내고 여기를 이용하는데 그만큼 효과가 있는가’ 평가하는 관점에서 교사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인천 21년 차 초등학교 교사 A씨).”
학부모 스스로 그런 마인드를 가지게 된 것만은 아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34년 차 교사 B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10년 전쯤 당시 학교 교장이 교무실에 ‘학부모 소비자 헌장’이라는 걸 붙여놓고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학생과 학부모는 소비자고 학교는 그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담론이 그즈음부터 퍼졌고 학부모와 학교의 관계도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의 권위와 폐쇄성을 내려놓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좋은 취지도 있었지만 점점 소비자로서의 갑질, ‘소비자로서 내가 이 정도 대우는 받아야 하는 거 아냐?’라는 인식만 팽배해졌다.”
무상보육 경험, 교육 소비자주의에 더해 학부모의 (부정적 방향으로의) 변화를 일으킨 또 하나의 요인으로 어떤 이들은 ‘학교폭력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지목한다. 이 제도가 생긴 뒤부터 학부모들이 학교폭력을 처리하는 과정과 처분 결과에 극히 예민해지고 학교에 악성 민원을 쏟아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북 지역의 24년 차 초등 교사 정성식씨는 “처음부터 좋은 학부모, 나쁜 학부모가 따로 있지 않다. 멀쩡하고 학교에 협조적이던 학부모였는데 자녀가 학폭에 연루되는 순간 이성을 잃고 모성과 부성만 남아서 교사에게 온갖 악다구니를 쏟아붓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봤다. 가해자로 한번 낙인찍히면 끝까지 꼬리표가 달리는 학폭 생기부 기재가 시작된 뒤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온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다. 21년 차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코로나19 시기 이후 ‘급발진’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전에 없이 자주 경험했다. “다이너마이트에 불붙인 것처럼 빵빵 터져버리는, ‘이게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은 문제에 일단 화부터 내고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학생과 학부모가 너무 많아졌다.” 서울의 15년 차 고등학교 교사 C씨는 코로나19 유행 시기 고3 담임 업무를 맡으면서 정신과를 다닐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상황에서의 불안에 대입을 앞둔 긴장까지 더해지니 학부모의 예민도가 극에 달했고 그 스트레스를 자기 아이의 담임교사에게 풀더라. 자녀 상담을 빙자해서 저녁이고 새벽이고 전화해 본인의 불안과 화를 쏟아내는 학부모가 너무 많았다.”
학부모와 교사 간 갈등 중 어떤 부분은 학교 기능에 대한 동상이몽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교사는 자신의 역할과 학교의 기능을 ‘수업 전문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학부모는 점점 돌봄·상담·진로 진학 컨설팅 등 더 많은 기능을 학교와 교사에게 요구하고 기대한다. 대통령이든 교육감이든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교육과 보육 모두를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공약을 내고 새 교육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구멍 없는 돌봄’이나 ‘일대일 수요자 맞춤식 교육’ 같은 걸 선포해대니 학부모도 그걸 기대하고 학교에 보내지만, 이는 정작 교사들과 합의된 사항이 아니다. 이 인식의 간극 속에서 ‘자신은 악성 민원인인 줄 모르는 (교사 입장에서) 진상 학부모’가 탄생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8월3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연 '교육권 보장 현장 요구 전달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대형 인천교총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학교가 잠자고 밥 먹고 쉬고 노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학교 기능을 돌려놔야 한다.” 교육 연구직에 종사하는 초등학생 학부모 D씨는 이 말에 의아해졌다. “이제 더 이상 학교는 수업만 하는 곳일 수가 없지 않나? 저출생 추세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 때문에라도 학교에 돌봄 기능이 추가되고 학교가 학생 입장에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당연해졌다. 그게 해외 선진국들도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다. 서비스라는 말이 꼭 시장화를 뜻하는 게 아니다. 공공재인 학교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하고 그 안에 있는 직역들이 어떻게 그 역할을 나눠 맡을 것인가에 대해 교사들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런 교사-학부모 사이 인식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 방과후 돌봄과 교육을 저녁 8시까지 확대하는 이번 정부의 ‘늘봄학교’ 같은 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둘 간의 갈등과 충돌은 더 거세질 위험이 높다.
■ '학부모 대 교사' 각개전투의 비극
학부모는 집단으로 호명되지만 사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진상’ 학부모는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실재한다. 학부모의 개별 플레이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학부모 총회나 학부모 연수 자리에서 우리 학교나 우리 반에 관한 발언과 참여를 요청하면 모두 숨을 죽이고 있다가 교사와의 개별 상담, 개별 전화, 개별 메시지로는 내 아이에 관한 질문과 부탁을 쏟아낸다. 학부모의 개별적 요구는 단체행동보다 교사 입장에선 더 곤혹스럽고 난도가 높다. 우리 아이한테 ‘교실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아요/높아요’ ‘급식 배식량이 너무 많아요/적어요’ ‘시험문제가 너무 어려워요/쉬워요’ 같은 상반된 개별 요구들 속에서 교사는 길을 잃고 ‘멘탈’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에 인용된 전 서울시 강남서초교육지원청 학교폭력 담당자 김난영 장학사의 발언도 이런 현상을 뒷받침한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경계할 정도로 학부모들의 단체 혹은 집단 활동이 활발했다면 요즘에는 단체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학급별 모임 정도에 참여는 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내가 알아낸 정보를 잘 나누지 않고 내 아이의 안전과 교육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많은 이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는 문제(강제 전학 대상 학생 전입 등)가 발생하면 그 이슈를 중심으로 공동행동에 나서지만, 이후 이슈가 해결되거나 쟁점이 사라지면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몇 차례 경험했다.”
문제는, 이런 개별화된 학부모의 요구에 대응하는 방법 또한 교사 개별의 노하우와 책임으로 돌리는 현재의 학교 시스템이다. 해결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덮고 넘어간 교육 현장의 온갖 갈등과 긴장과 모순들이 교사 개인에게 민원이라는 형식으로 덮쳐와도 교사 각자가 '업무폰'을 만들든 투넘버 서비스에 가입하든 자신만의 학부모 상담 비법을 개발하든 스스로 방법을 알아서 찾아내야 한다.
이를테면 초등교사 A씨의 개별 노하우는 이거다. “어찌 보면 교사에게 자기 애 봐달라고 난리를 부리는 학부모가 아이를 방치하고 정말 아무 관심도 없는 학부모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도 부모, 보호자로서의 진심은 있는 거니까. 그러니 나는 ‘당신도 당신 자식을 걱정하고 나도 똑같이 당신 자식을 걱정하니 우리 둘이 뭘 어떻게 할지 얘기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하고 소통한다.” A씨는 덧붙였다. “그런데 나는 경력 21년 차다.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된 지 10년이 채 안 됐다. 특히 요즘은 1~2년 차 신규 선생님이 결코 혼자 헤쳐나갈 수 있는 난도가 아니다.”
학부모 개인과 교사 개인이 각개전투하도록 방치한 결과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초임 교사뿐 아니라 경력 많은 교사들도 학생·학부모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20년 차 고등학교 교사 E씨는 올해 처음으로 업무폰을 따로 쓰기 시작했다. “주변 선생님들이 업무폰 만들고 근무시간 외 학부모나 학생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걸 보면서 ‘뭘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최근 여러 비극적 사건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거였다. 어느 동사무소 직원이 자기 개인 전화번호를 민원인에게 공개해서 퇴근 후고 주말이고 전화를 받나? 누군가에게 생사가 오가는 현장이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이제야 나도 일과 나를 구별해야겠구나 생각했다.”
15년 차 고등학교 교사 C씨도 2년 전 처음으로 업무폰을 만들었다. “학교에 요구했지만 ‘네가 유난이다, 예산이 없다’는 반응에 기가 차서 사비로 따로 가입했다.” 새벽 2시부터 문자메시지가 오고 출근 전에 개별 메시지가 20~30개 쌓이고 한 해 학부모와 수천 통의 메시지와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C씨는 천직이라 여긴 이 직업이 자신을 해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떠서 초기 화면이 켜지는 그 모습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안 쉬어지고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과에 가서 증상을 호소하니 ‘선생님이죠? 요새 많이들 오세요’라고 하더라.”
C씨는 스스로 생각하던 교사상을 바꾸면서 견뎌나가고 있다. “‘근무시간 따지지 않고 학부모나 학생의 고충을 성심성의껏 들어주는 교사가 참교사다’ 이런 암묵의 룰 같은 게 있었고 나도 그걸 믿고 있었는데 최근 와장창 깨졌다. 교직의 적성, 소명감에 대한 생각도 일부러 많이 바꾸려 하고 있다.” 전직 초등교사 이은경씨는 “여러 피해 사례들이 쌓이면서 교사들 사이에 ‘열심히 해봤자 나만 손해야’ ‘진상 학부모 한 명 만나면 어차피 올 한 해 농사 망치는데 뭐’라는 게 교사 사회 보편적 정서로 퍼졌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 ‘안전하게’ ‘원활한’ 소통은 어떻게 가능할까
경기도교육연구원은 지난해 1월 ‘학부모와 교사 간 상호 신뢰 향상 방안’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냈다. 초중고 학부모 5538명과 교사 966명에게 서로를 신뢰하거나 불신하는 이유와 상호 간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묻고 서술형 답변에 나타난 단어의 빈도를 분석해보았다. 교사에게 학부모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을 때 많이 나타난 단어는 ‘민원·항의’ ‘이기적인’ ‘불신’ ‘의사소통’ 등이다. 학부모는 ‘무관심’ ‘문제에 대한 대처’ ‘소통’ 등을 거론하며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그림 2〉 참조).
교사-학부모 간 신뢰 향상 방안을 물었을 때도 교사는 ‘교권 강화·보호’와 ‘의사소통’ ‘(소통·상담) 창구’를 주로 이야기했고 학부모는 ‘대면 상담’ ‘소통’ ‘이야기’ ‘관심·사랑·애정’을 자주 언급했다(〈그림 3〉 참조). 학부모는 갈구하고 교사는 부담스러워한다는 간극은 포착되지만, 어쨌든 ‘소통’이란 것을 빼놓고 신뢰 회복을 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학부모와 교사 양쪽 모두 알고 있었다.
교사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동료 교사들이 학부모로부터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입어 목숨을 잃는 사례들을 목격하면서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대다수 학부모들은 그런 교사들을 보며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자녀의 학교생활을 자세히 알고 때로 교사에게 묻거나 의견을 제시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가 힘들다. 관건은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 수식어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느냐이다. 어떻게 하면 학부모와 교사가 ‘안전하게’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2018년 11월 서울시교육청 산하 서울교육정책연구소의 연구위탁을 받아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은 당시 보고서를 통해 교사와 학부모의 의사소통 창구를 공식화·일원화·시스템화하자고 제안했다. 여타 공공기관처럼 공식적인 민원처리 시스템과 절차를 마련하고, 모든 학교가 공통된 방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청이나 교육부 차원에서 구축하자는 것이다. 최근 서초구 S 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 이후 서울시교육청이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전화·대면 상담 사전예약제도 이미 이때부터 제안된 대책이다.
전북 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정성식 교사는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 사망사건이 일어난 일주일 뒤인 7월25일, 자신이 교원위원으로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회의에 ‘학교 민원 처리 방식 개선’을 긴급 안건으로 올렸다. 민원인이 학교 교무실이나 담임교사 개별 전화로 직접 전화하는 현재 민원 신청 방식을 학교 구성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학교 알림장 애플리케이션의 전자민원 창구로 일원화하도록 바꾸고, 학교 전화 통화연결음에 녹음 사실을 알리는 문구를 추가하는 등 통화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이었다. 앱 개발업체에 관련 기능 추가를 제안하자 금세 반영되었다. “교사 개인이 나서고 사설 플랫폼에 기대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당장 우리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도 해보자는 자구책”이었다.
안건은 학운위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정 교사는 “안건을 제안하면서 학부모위원들 앞에서 말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 벽을 치자는 게 아니다. 이건 횡단보도 앞의 정지선이다. 정지선이 있어야 인도 차도의 경계를 알고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가 안전해지듯,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도 최소한의 선이 있어야 서로 안전해진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 정지선을 긋는 동시에 학교 조직 안에서 교원 구성원 간 칸막이를 없애는 일도 시급하다. 시스템적 대응이란 ‘혼자’ 어려운 일을 맡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학교 교사 B씨는 말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까다로운 학생이나 학부모가 한 명 있으면 담임, 옆반 교사, 교장 교감, 상담교사까지 총동원되어 누구 한 명에게 압력이 쏠리지 않게 ‘바람을 빼는’ 협업이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운이 좋아야만 이런 환경에서 근무하는 게 아니라 모든 학교가 구성원 간 협업하는 문화를 시스템으로 갖추어야 한다.” 교사 A씨는 “특히 요새 젊은 교사와 중장년 교사 사이 서로 묻지도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는 문화가 심해졌다. 학교마다 문제의 특성과 대응법이 다른데도 신규 교사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옆반 교사, 선배 교사 대신 익명화된 인터넷 교사 커뮤니티에 묻곤 한다. 학교 안에서 각자도생이 아닌 교사들끼리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건가도 지금의 사태를 풀 중요한 질문이다.”
■ ‘내 아이’의 사적 학부모에서 ‘우리 학교’의 공적 학부모로
알아야 대응한다. 요즘 학부모의 특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들과 학기 내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교사다. 그런데 교원 양성 과정에서 학부모와 관련된 교육 커리큘럼은 전무하다. 사전 지식과 이해도 없이 난도 높은 요즘 학부모 앞에 선 교사들은 말문부터 막힌다.
‘학부모와의 의사소통 어려움에 대한 저경력 초등교사의 인식 연구’라는 석사학위 논문(노연주, 2020)에 나타난 교사 인터뷰 내용에서 그 빈틈이 발견된다. “신규 발령이 났을 때 학부모에게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어려웠어요. 그런 거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고, 교사가 된 것도 처음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예 백지 상태라고 해야 하나?(3년 차 초등교사)” “학부모랑 처음 대화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아예 몰랐던 기억이 나요. 학생이라는 존재는 교생실습도 하면서 많이 겪어보고 경험해봤는데, 학부모에 대해서는 지식도 경험도 전무해서 처음에 뭐라고 해야 하고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해야 되는지 몰라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어요(2년 차 초등교사).”
이종각 강원대 명예교수(교육학과)는 “신임 교사를 학부모 문맹 상태로 학교에 가게 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교사 양성 과정에서부터 예비 교사에게 학부모와 어떤 식으로 관계 맺고 대화하며 협력할 건 협력하고 자를 건 자를지 최소한의 사전학습과 실습을 제공하는 것, 이런 게 극히 미시적일지라도 그야말로 당장 해야 할 일이다.”
이 교수는 동료 교육계 전문가들과 뜻을 모아 2014년 6월 한국학부모학회를 창립했다. 우리 사회 학부모 담론이 너무 빈약하고 편협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학부모 집단은 최근 같은 악성 민원 이슈뿐 아니라 ‘사교육 광풍’ 혹은 ‘명품 경쟁 벌이는 학부모 총회’처럼 부정적 장면에서만 공론의 장에 불려나오곤 했다. 학부모학회에서는 학부모를 바라보는 단편적 관점을 탈피하고 ‘교육열’이라는 이름으로 과하게 찬사받거나 아니면 맹목적으로 비난만 받는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를 더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자 노력해왔다.
한국학부모학회 초대회장이기도 한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학부모를 ‘교육시민’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시민으로서의 학부모란 내 아이만을 위하는 사적 교육 주체를 넘어 우리 아이들, 우리 학교, 우리 사회를 위해 교육열을 발산하는 공적 교육 주체이다. 그는 학부모에게 사회적 존재감을 부여하고 공적 참여 기회를 강화하는 넛지(더 좋은 선택으로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방법)를 많이 개발해 적용해야 공교육이 혁신되고 지속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오히려 지금 같은 갈등 상황에서 더욱 학부모가 교육에 공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학부모를 학교로부터 멀리 떼어놓는 게 당장 해결책으로 보일지 몰라도 궁극적 해법은 될 수 없다. 결국은 우리 사회가 학부모를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한 나라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기도 힘들지만 학부모의 질도 넘을 수 없다.”
이수광 경남미래교육원 원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최근 사건을 계기로 학부모를 악마화하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 대개의 교사가 좋은 교사이듯 대개의 학부모는 건강한 학부모다. 악성 민원에 대응하는 시스템과 가이드라인을 촘촘히 만들되, 건강한 학부모의 학교 참여마저도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학교 공론장으로 학부모를 초대하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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