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삭감, ‘이권 카르텔’ 이전에 봐야 할 것 [프리스타일]

김영화 기자 2023. 8. 23.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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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화 〈조커〉의 첫 시퀀스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사회복지사에게 상담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쁜 소식이 있어요. 예산이 삭감돼서 다음 주에 여기 문을 닫아요. 시가 복지예산을 대폭 줄여서 오늘 상담이 마지막이죠." 사회복지사인 데브라 케인이 말하자 아서는 "그럼 누구한테 말하죠?"라고 묻는다.

최근 사회복지 분야 예산 삭감 문제를 취재하며 이 장면이 종종 떠올랐다.

시민사회 곳곳에서 예산이 삭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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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강동구의 한 이동노동자 지원센터.ⓒ시사IN 신선영

2019년 영화 〈조커〉의 첫 시퀀스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사회복지사에게 상담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폭력과 가난, 모멸이 도사리는 도시에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으며 살아가던 아서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조커로 각성한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 무료 상담 서비스가 중단된다. “나쁜 소식이 있어요. 예산이 삭감돼서 다음 주에 여기 문을 닫아요. 시가 복지예산을 대폭 줄여서 오늘 상담이 마지막이죠.” 사회복지사인 데브라 케인이 말하자 아서는 “그럼 누구한테 말하죠?”라고 묻는다. “미안해요, 아서.” 데브라도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간신히 그를 붙잡고 있던 ‘동아줄’이 하나씩 끊어지고 영화는 악당의 탄생을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나아간다. 관계가 단절되는 과정이 일종의 재난처럼 느껴진다. 최근 사회복지 분야 예산 삭감 문제를 취재하며 이 장면이 종종 떠올랐다. “오랫동안 지역사회에 쌓여온 관계와 노하우를 무너뜨린다”는 작은 도서관 활동가의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취약계층 노동자 권리구제 사업이 중단돼 민원의 하수구가 막힌 것 같다”는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무사의 말을 들었을 때. 지난해 마포구에서 도서관 예산은 삭감될 뻔했고, 서울시에선 최근 2년간 서울노동권익센터 예산을 포함해 민간위탁 예산 850억원 이상을 감액했다.

시민사회 곳곳에서 예산이 삭감되고 있다. 혈세 낭비를 방지하고 예산을 효율화해야 한다는 게 현 정부의 방침이다. 정권에 따라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바뀔 수 있고, 기존 단체에 특혜 비리가 있었다면 시정되어야 한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관행적 사업이라면 줄일 수도 있다. 다만 지금 추진 중인 예산 삭감안에는 ‘시민단체 전용 ATM’ ‘부정부패의 이권 카르텔’ 같은 날 선 언어만 남을 뿐, 대안은 없어 보인다. 누군가에겐 생업이고, 누군가에겐 소속감을 느끼는 커뮤니티, 또 어떤 이에겐 곤궁한 처지를 구제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곳들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일이 그렇게만 뭉뚱그려져도 될까. 애초에 시민 복지를 늘린다는 행정기관의 필요에 의해 ‘외주화’한 곳들이 정권이 바뀌자 비리의 온상이 되어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속 이동노동자쉼터에서 일하는 김삼권씨는 지난해 배달 노동자들과 동해 바다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미조직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렇게 놀러 나와본 게 처음”이라는 얘기를 듣고 일하는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작은 도서관의 활동가에게 도서관은 ‘누구 엄마’ 대신 선생님으로 불리는 곳이었고, 어느 출판인에게 플랫폼P는 고립되지 않고 맞은편 동료의 등을 보며 마감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시기 예산 삭감이 추진된 곳들을 취재하면서, 줄어든 예산이 결국 보이지 않는 관계망을 끊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어떤 사업의 성과는 수치로 증명하기 어려울 뿐이다. 계산되지 못한 피해가 커져간다. 〈조커〉에서 데브라는 아서와의 마지막 상담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 같은 사람한텐 아무도 관심 없어요. 나 같은 사람한테도요.”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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