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전체주의 맹종 세력'이 문제라는 윤 대통령, 그럼 '공산자유주의'는 어떤가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지난 일주일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화제 중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였다. 윤 대통령의 연설문은 항일독립의 뜻을 되새기는 광복절 기념사라기보다는 오히려 난데없는 선전포고문이었다. 느닷없이 무시무시한 적이 한국 사회를 안에서부터 허물고 있다고 외쳐대며 전쟁을 선포했다. '공산전체주의'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을 지적하며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의 대립 구도를 못 박았다. 그러고는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고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현실 인식을 일제하 항일독립운동으로까지 소급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고 하고,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토를 달았다. 이 시각에 따른다면, 독립운동가들을 기려야 할 이유 역시 일본에 맞서 싸운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투사들의 선배라는 데 있게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20세기 초에 국내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곳곳, 유라시아 대륙 저 끝까지 누비며 일본 제국주의와 대결하던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정말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전체주의'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자신들의 투쟁을 바라봤을까?
한국 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항일독립운동가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도무지 '자유민주주의'도, '공산전체주의'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강박의 대상일 수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윤석열이라면 꿈도 못 꿀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들의 이상과 현실 인식은 '공산'과 '자유'를 넘나들며 둘을 하나로 잇고 있었다.
'공산'과 '자유'를 교차하던 항일독립운동가들
대표적인 사례로 소앙 조용은(우리에게 '조소앙'으로 더 잘 알려진)을 살펴보자. 조소앙은 항일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사상가라 할 만한 인물이다. 항일독립운동 내부의 '좌파'도 아니고 재중국 항일독립운동 '우파'를 대변하는 사상가다. 해방을 앞두고 중경 임시정부가 발표한 '건국강령'을 기초한 인물이며, 그 바탕이 된 삼균주의(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 실현)를 1930년대부터 일관되게 주창한 논객이다.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조소앙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는 제헌국회 의사록만 봐도 드러난다. 헌법기초위원회를 주도한 법학자 유진오가 사회민주주의 색채를 띤 헌법 초안을 발제하자 제헌국회의원 가운데에는 대번에 "임시정부 건국강령의 삼균주의를 계승한 것이냐"고 묻는 이가 있었다. 조소앙 자신은 김구, 김규식의 남북협상에 함께 하는 바람에 제헌국회에 참여하지 못했지만(제2대 국회에는 진출했다), 그럼에도 제헌국회 회의석상에서는 새 나라 헌법의 사상적 출발점으로 조소앙이라는 존재를 다분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조소앙이 1920년대 초에 중국에서 발표한 '한살임당 요강'이라는 문서가 있다. '한살임'은 순우리말 '한살림'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조소앙은 저 유명한 의열 투사 김상옥(영화 <밀정>에서 배우 박희순이 연기했던)과 함께 '한살임당'이라는 비밀결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한살임당 요강'(이하 '요강')이 표방한 이념이 흥미롭다. 윤 대통령처럼 머릿속이 온통 이분법으로 굳어진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기 힘들 내용이다.
'요강'은 독립전쟁의 3단계를 제시했는데, 그 1단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이다. 민족혁명을 통해 일본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미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한 경험이 있던 당시 독립운동가들에게 새 나라가 보통선거제도에 바탕을 둔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이런 점에서, '요강'이 말하는 독립전쟁 1단계는 윤 대통령 기념사에 나온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 독립운동과 맞아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요강'의 독립전쟁에는 2단계와 3단계까지 있다. 2단계 과제는 계급혁명이다. 자본가-지주 계급의 생산수단 독점을 폐지하고 무산계급 해방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요강'은 이 과제를 '공생(共生)'의 실현이라 요약한다. '공생'이란,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가 경제-사회 생활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상태를 일컫는 동아시아의 표준 번역어 '공산(共産)'과 같은 말이면서 또한 그것보다 더 나은 번역어다.
1920년대 초에 조소앙은 분명 항일독립운동의 과제들 중 하나로 '공산'을 내세웠던 것이다. 제1단계에는 민족혁명으로 '자유'를 쟁취하고, 제2단계에는 계급혁명으로 '공산'을 함께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싸우는 전사들에게는 가슴 철렁할 이야기이겠지만, 이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독립전쟁의 3단계까지 마저 살펴보면, 이 마지막 단계의 목표는 '무치(無治)'다. '무치'란 아나키스트들이 궁극 목표로 제시하는 '아나키(anarchy)', 그것이다. '요강'은 '무치'를 노골적으로 '정부와 의회마저 없는 상태'라 정의한다. 독립전쟁의 최종 과제는 역설적으로 지구상에 서로 먹고 먹히는 국가들 자체가 없어지는 상태다. 이것이야말로 조소앙 같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생각한 '자유'의 가장 완성된 모습이었다. 윤석열이 2023년에 말하는 '자유'와 지난 세기 초 항일독립운동가들이 꿈 꾼 '자유' 사이의 간극은 이토록 거대했다.
조소앙만이 아니었다. '공산'과 '자유'를 교차하는 방향에서 해방의 길을 찾은 이들로는 또한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이 있다. 이들은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을 직접 목격하고 온 조소앙과 교유한 끝에 윤석열식 이분법의 저 '자유민주주의'도, '공산전체주의'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국가가 아닌 공동체들을 통해 '자유'와 '공산'의 조합을 실현하려 한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아나르코 코뮤니즘이었다. 굳이 윤 대통령의 용어를 빌어 말한다면, '공산자유주의'라고나 할까.
이렇게 '공산'과 '자유'를 이리저리 조합하며 새 나라를 고민한 이들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좌우를 막론하고 항일독립운동의 주류가 대개 그러했기 때문이다. 만일 생존하여 해방을 맞이했다면, 김구는 물론이고 이승만조차 버거워했을 항일독립운동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부터가 그랬다. 그가 1930년대에 중국에서 밝힌 '대공(大公)주의'는 '공산'과 '자유'를 추구하는 세력들을 한데 모아 장래 새 나라의 출발점이 될 두 지향의 중첩지대를 형성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조소앙은 대공주의의 문제의식에 화답해 한실임당 시기의 3단계 독립전쟁 구상을 삼균주의로 재정식화했다. '삼균' 중 '정치의 균등', 즉 보통선거제에 바탕을 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자유'의 변주라면, '경제의 균등', 즉 공업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농지 개혁으로 경제적 평등을 달성하자는 것은 '교육의 균등', 즉 무상교육과 함께 '공산'의 변주였다. 위에서 이미 말한 대로, 제헌국회의원들은 이런 엄청난 교향악을 떠올리며 제헌헌법을 제정했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의 진짜 건국 정신이다.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전체주의' 이분법이 가리는 또 다른 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는 우리의 과거와만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와도 충돌한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윽박지름은 항일독립운동 세대에게 낯선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당황스럽기만 할 뿐이다. 정작 진정한 선택지는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치 체제만을 놓고 보면, 그나마 '자유민주주의'가 더 나음이 입증됐다고 할 수도 있겠다. 상세히 캐묻고 들어가면 이야기가 훨씬 더 복잡해지지만, 단순화하면 아무튼 그렇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모든 일당 독재 체제는 실패했다. 남은 일당 체제 역시, 자유선거와 다당제를 실시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유선거나 다당제의 완전한 보장과는 거리가 먼 현 대한민국 정치 체제와 비교해도 그렇다.
그럼, '자유민주주의' 편에 서서 '공산전체주의'와 싸우라는 촉구가 옳다는 말인가? 오늘날 전 인류의 고민은 바로 위의 결론(일당 독재에 대한 대의민주주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처럼 '자유민주주의'의 열심당원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쉽게 한 묶음으로 치부하는 '자유'들이 실은 서로 그렇게 간단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현 대통령이 뒤늦게 추종 대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의 주창자들은 '자유'는 결국 '시장의 자유'라고 말한다. 시장에서 경쟁하고 승자(혹은 패자)가 될 자유. 시장지상주의자들은 이 자유를 기준으로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의 자유를 해석하고 설계한다. 그러나 지금 그 결과가 무엇인가? 불평등 심화, 생활비 상승과 장기 침체, 자산 거품, 인구 절벽, 돌봄 위기, 고립과 소외의 증가, 문명의 존립을 위협하는 기후 급변 등등이다. 윤석열 대통령마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게 된 '복합위기'다.
이런 시대에 '자유'란 대통령의 선창을 목청껏 따라 외치면 되는 그런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야말로 정색하고 따져 물어야 할 화두다. 그런 물음이 마주해야 할 '자유'의 또 다른 얼굴들 가운데에는 가령 20세기 영국의 사회주의자 G. D. H. 콜 같은 사람이 말하는 '자유'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와는 구별되는 길드사회주의 사조에 속했던 콜은 1920년에 낸 저작 <길드사회주의>(장석준 옮김, 책세상, 2022)의 첫 장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자유의 요구"
사회주의자 콜 역시 '자유'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윤석열식 '자유'와는 전혀 다른 맥락의 자유다. 콜은 묻는다.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그것이 '자유'라 해석된다면, 왜 정작 사람들이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람들의 삶을 직접 좌우하는 일터에서는 그런 권리를 통해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가? 주주나 고위 경영자만이 결정권을 쥔 곳에서는 주주나 고위 경영자의 '자유'만 있을 뿐이지 노동자의 '자유'는 없다. '자유'는 여전히 쟁취되어야 할 이상이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복합위기 극복의 중심에 이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있다. 시민의 압도적 다수는 일상생활의 가장 커다란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극소수 계급만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상황이 작금의 숱한 위기들을 낳았다. 따라서 이 위기들을 해결해나가려면, 이제 주주나 고위 경영자의 자유는 제약되는 반면에 나머지 모든 시민의 자유는 경제-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경제적 권력의 변혁이라는 문제와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소수 기득권 계급과 나머지 시민 사이에서 나타나는 자유의 불평등한 향유는 결국 전자가 경제적 부와 역량에 대한 소유와 통제를 독점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경제 영역으로까지 민주주의 원칙을 확대 적용함으로써 소유와 통제의 독점을 해체해야 한다. 오래 전에 조소앙이 '공생'이라고 더 그럴듯하게 옮겼던 그 '공산'의 문제의식과 다시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21세기의 우리도, 아니 복합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야말로 '자유'와 '공산'을 교차하는 상상력과 새로운 실천에서 미래의 답을 찾아야 한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전체주의'의 대립 구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 존재조차 감지할 수 없는 문제의식이자 지향이다. 어쩌면 이런 또 다른 길이 있음을 가리고 못 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윤석열식 양자택일이 노리는 가장 중대한 효과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탈냉전의 혼종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복합위기 시대는 인류사에서 전례가 없는 시대다. 이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우리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만 한다. 지난 역사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전에 없던 혼종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자유'의 요소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하면 '자유'의 방편으로서 '공산' 또한 우리 시대에 맞게 끌어다 써야 한다.
현 중국 체제가 유독 끔찍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중국이 이러한 혼종의 최악의 형태를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중국 사회는 말하자면 윤석열식 '자유'와 '전체주의'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퇴행적 조합에 맞서는 길은 광복절 기념사처럼 냉전의 사고 구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 혼종, '자유'와 '공산'이 맞물리는 탈냉전의 혼종 체제를 통해 복합위기와 붕괴의 시대에 맞서야 한다.
광복절 기념사 속 언어를 활용한다면 이 길은 '공산자유주의' 쯤으로 불릴 수 있겠지만, 물론 좋은 표현은 아니다. '민주사회주의'나 '생태사회주의' 같은 훨씬 더 보편적인 언어에 비하면, 확실히 그렇다. 기념사의 언어나 사고 구도가 워낙 조악하다 보니 뭘 뽑아내든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실은 '시장자유주의'를 통해 한국 사회를 복합위기 시대의 최대 실패 사례로 만들고자 하는 저 '용산자유주의'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하루라도 더 빨리 청산되어야만 한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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