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해병대 사태'의 명예로운 해결책

김관용 2023. 8. 23. 06: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순직한 고(故)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 결과를 두고 국방부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대립과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미 정치적 공방으로 비화된 상태다. 지난 21일 국회에서는 여야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박 대령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는 국방부 지시를 어긴 것은 명백한 ‘항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장관 결재가 끝난 수사 결과의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데는 대통령실 등 윗선의 외압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은 “누가 옳으냐”를 따지는 것이다. 수사기록에 대한 외압 여부에 대한 진실 공방이 벌어지는 이유다. 그러나 진실 공방이 어떻게 전개되던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주장에는 근거에 대한 판단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방부 장관이 서명한 서류에 대한 간접적인 이첩 보류 지시를 정당한 명령으로 볼 것인지, 그리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 대령에게 통화한 내용을 외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법적 판단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현 상황에서는 사실상 한 가지 길만 결정되어 있는 것 같다. 군 사법부가 박 대령의 행위를 항명으로 판결하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박 대령은 명예와 안정적 삶 모두를 잃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선택할 것이다. 사실 이미 그 싸움을 시작한 셈이다. 그에게 몹시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국방부 관계자들도 고통스런 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바뀌면 이 문제는 분명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명예로운’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 장관이 박 대령의 명예를 살려주는 것이다. 항명에 대한 사법 조치를 철회하거나 그의 명예를 살릴 수 있는 보다 경미한 혐의로 변경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명예롭게 군 복무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 한다. 박 대령의 행동이 괘씸할 수 있다. 그러나 못할 일도 아니다. 장교의 명예를 살리는 것도 장관이 해야 할 중요한 과업이기 때문이다.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를 어겼던 맥아더에게도 명예로운 전역이 허용되었다. 비교하기 어려운 사안이기는 하지만, 장교의 명예를 존중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국방부가 일을 키운 측면도 있다. 박 대령이 주장하듯이 장관이 직접 지시했거나 문서로 했다면 그 역시 수명(受命)했을 것이다. 국방부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집단항명의 수괴’ 혐의로 입건한 것도 문제를 키웠다. 27년 넘게 충실히 군 복무해 온 장교에게 이런 식의 죄명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박 대령이 명예를 위한 투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해결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진실 공방이라는 이름의 상처뿐인 싸움을 하느냐, 아니면 명예로운 해결을 도모하느냐 하는 것이다. 군 사법부가 박 대령의 행위를 항명으로 판결하고 그의 명예와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다. 조직과 개인과의 싸움에서 조직은 늘 유리하다. 관계자들은 조직의 이름 뒤에 숨을 수 있다. 조직과 싸우는 한 개인은 처절한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자신의 명예와 삶을 앗아간 이들이 그 싸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빼앗긴 자의 투혼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명예로운 해결책은 당장은 불편할 수 있다. 국방부 입장에서 밀렸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멀리 본다면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정부가 바뀌어도 다시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국방부 장관에게 달렸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결단은 늘 현실적 어려움을 뚫고 나온다. 장관의 지혜로운 결단을 기대한다.

김관용 (kky1441@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