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장 "시진핑 꼽은 정율성, 공원은 中관광 투자"…여권 "돈된다고 전범을?"
'김일성 포상장, 北군가 작곡'…반대한 박민식
"정율성 선생 겪은 '시대적 아픔'" 버틴 강기정
"中관광객 온다…시주석 꼽은 우호인사" 강조
與 "전범 부역자 추앙…돈만 되면 정체성 무관?"
정부·여당에서 광주 출신 작곡가 정율성의 사실상 6·25 남침전쟁 부역 행적을 짚으며 광주광역시가 약 48억원 재정을 들이는 연말 '정율성 역사공원' 추가 조성에 반대했다. 북한·중국에서 추앙받는 군가 작곡가로 공산당의 "나팔수" 겸 "응원대장"을 국민 혈세로 기릴 순 없단 것이다. 하지만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를 색깔론이라고 치부하며 중국인 관광객 유치 목적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반일(反日) 코드와 '시진핑 중국 주석이 꼽은 한중우호 기여 인물'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논쟁이 꼬리를 물게 됐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22일 오후 페이스북에 두번째 올린 글을 통해 "다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고요? 돈 되는 일이면 국가정체성이고 뭐고 필요 없단 말입니까?"라고 강기정 광주시장에게 공개 질문을 던졌다. 그는 "호남에 정말 기념할 인물이 없나. 호남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일뿐만 아니라 대대로 독립과 호국의 본산이기도 했다. 서재필 박사 등 호남 출신 독립유공자가 무려 2600명이 넘는다. 이는 전체 독립유공자의 15%"라며 정율성을 기리는 행태를 이해하기 어렵단 의견을 재차 내비쳤다.
이어 "어디 그뿐이겠나. 군산고 등 6·25때 가장 많은 학도병을 배출한 학교가 있는 곳도 바로 호남이다. 호남은 순천·여수·광양·벌교·보성·강진 등 전남 17개교 180명의 학생들이 지원해 유일하게 학도병들로만 대대가 편성될 수 있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서부덕 소위, 박창근, 황금재, 박평서, 오제룡 상사 등 맨몸으로 적의 전차에 뛰어든 '육탄 10용사' 중 5명이 호남출신이다. 참 자랑스러운 호남의 역사고, 호남의 정신 아닌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영웅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상기시켰다.
박민식 장관은 "광주시는 이 많은 분들을 두고 왜 하필 정율성 같은 '공산당 나팔수'의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건가. 그게 역사를 기억하는 광주시의 방식인가"라며 "바로 그 '시대적 아픔'을 알기에 더 분노하는 것이다. 그가 만든 군가를 부르며 몰려왔던 적에게 죽임을 당한 수많은 이들의 피가 아직 식지 않은 대한민국이다. 정 그렇게 기념하고 싶으시면, 민간모금을 하든, 민간투자를 받든 국민의 혈세는 손대지 마시기 바란다. 그런 '반국가'적인 인물 기념하라고 지방정부가 있는 게 아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런 걸 '적대의 정치'가 아니라, '상식의 정치'라고 한다"고 일침을 했다. 앞서 강 시장은 같은날 오후 페이스북으로 "광주는 정율성 역사공원에 '투자'한다"며 박 장관을 겨냥했다. '전범' '극우' 레토릭을 전가의 보도 삼던 더불어민주당 태도와 달리 정율성 행적 논란엔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두 가지 색깔, '적과 나'로만 보인다"고 전제했다. 정율성을 '선생'으로 지칭하며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영웅시하지도, 폄훼하지도 않는다. 광주의 눈에 그는 뛰어난 음악가"라고도 했다.
강 시장은 또 "뛰어난 음악가로서의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며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광주의 역사문화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라고했다. 그는 "독일 베를린 도심 한 복판에는 여전히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이 있고, 마르크스 거리가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오늘날의 방식"이라고 빗댔다. "항일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가 겸 음악가로 활동하다 중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시대의 아픔"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항일독립운동가 집안' 공인 여부는 불투명하다. 정율성의 부친 정해업은 한학자이자 광주 수피아여고 교직 등을 맡았으며, '항일 투쟁을 위해 모든 자녀(4남 1녀)를 중국으로 보냈다'는 전언이 알려져 있다. 정율성은 1933년 형 의은이 중국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학생 모집차 광주를 찾자 누나와 함께 일본을 경유해 중국 상하이로 향했고, 간부학교 공부 기간 의열단에 가입했다. 음악을 배운 시기 '선율로써 성공하겠다'는 의미로 본래 이름은 '부은(富恩)'에서 '율성(律成)'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정율성은 1936년 중국 좌파청년들의 '오월문예사' 창립 대회에서 첫 작품 '오월의 노래'를 선보였는데, 광주 5·18과는 무관하다. 그는 1939년 중국공산당원이 돼 공산주의 혁명 문예공작에 참여, '팔로군행진곡' 등 8곡을 작곡했다. 행진곡은 훗날 1988년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격상됐다. 1945년 8·15 해방 후 정율성은 북측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 구락부장·협주단장 등을 지냈고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을 작곡했다. 북조선노동당원이 됐던 그는 1950년 중국 국적을 취득, 6·25 발발 후 중공군 일원으로 재차 참전했다.
전후로도 정율성은 중국에서 마오쩌둥·저우언라이 정권의 공산주의 혁명 음악 분야에서 계속 활동했고 1976년 12월7일 베이징에서 고혈압 등으로 사망, 중공이 안배한 바바오산의 혁명투사 공동 묘지에 묻혔다. 이같은 생애를 두고 강 시장은 "그 아픔을 감싸고 극복해야 광주건, 대한민국이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며 "정율성 선생은 시진핑 주석이 한중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김구 선생과 함께 꼽은 인물이다. 나와 다른 모두에 등을 돌리는 적대의 정치는 이제 그만하시라"면서 박 장관에게 '우정의 정치'를 하자고 했다.
이에 앞서 박 장관은 오전 페이스북에 정율성이 1948년 2월8일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 명의로 받은 포상장 사진을 게재하며 "보훈부 장관으로서,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앞장섰던 사람을 우리 국민 세금으로 기념하려 하는 광주시의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 (공원 조성계획은) 전면 철회돼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영웅 또는 북한 영웅인 그 사람을 위한 기념 공원이라니"라며 "김일성도 항일운동을 했으니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이미 광주엔 '정율성로'도 있고 '정율성 생가'도 보존돼 있다. 음악제나 고향집 복원 등에도 많은 세금을 썼는데 안중근, 윤봉길도 못누리는 호사를 누려야 할 만큼 그가 대단한 업적을 세웠나. '오월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광주가, 시민들의 혈세를 들여 기념해야만 할 인물이 과연 누구여야 하느냐"며 "그(정율성)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6.25 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았다.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예 민족을 저버리고 중국으로 귀화해 중국 공산당을 위한 작품을 쓰며 중국인으로 생애를 마쳤다.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하고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만들어 6·25 전쟁 남침의 나팔을 불었던 사람, 조국의 산천과 부모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공산군 응원 대장이었던 그는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수 없었다"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그를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한다는 건 5·18 묘역에 잠들어 계신 민주주의 투사들을 욕보이는 일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5·18정신은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48억이라는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일이다. 비록 광주광역시 차원의 시 재정이 쓰인다고는 하지만 시 재정은 국민의 혈세가 아니냐"며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를 부정하는 사업에 지방자치단체가 국민들의 혈세를 마음대로 쓴다면,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도 엄격히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에서도 같은 날 강사빈(22일) 부대변인 논평으로 "정율성의 친북·친중 행적은 매우 명확하다"고 가세했다.
강사빈 부대변인은 "정율성은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며 '팔로군행진곡'을 작곡했고, 광복 이후에는 북한으로 넘어가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작곡해 6·25 전쟁을 부추겼던 인물"이라며 "사실상 '공산군 응원단장'을 자처한 정율성을 역사공원 조성으로 기념하는 행태에 큰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정율성은) 북한 정부 수립에도 기여한 바 있으며 그가 만든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6·25 전쟁 당시 남침 행진곡으로 쓰였고, 이후에는 '신(新)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까지 오른 인물"이라고 했다.
이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여러 독립유공자도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정말로 기억해야 할 인물인지조차 논란이 있는 이를 공원까지 조성해 기념한다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독립유공자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국가의 정체성과 국가의 계속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라는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헌법가치 훼손 사업을 혈세로 집행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남 순천 출신의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정율성에 대해 "우리 국군을 많이 죽이라고 독전한 자다. 전쟁 이후 중국에 귀화한 자다. 청천강 전투 때도, 장진호 전투 때도, 중공군은 정율성의 팔로군 행진곡을 부르며 국군과 유엔군을 도륙했다. 1953년 12월 3일 유엔 총회에선 '전쟁 당시 인민군과 중공군이 유엔군 포로와 한국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각종 만행들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통과되기도 했다"며 "6·25의 전범이 김일성이라면 정율성은 그 부역자에 해당한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김웅 의원은 "북조선인민공화국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6·25 부역자를 추앙할 수 있나. 강 시장은 '정율성이 뛰어난 음악가이기 때문에 기려야 한다'고 한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은 조선 최고의 명필이었다. 그럼 예술성이 뛰어났으니 이완용 공원도 세워야 하나. 반례로, 만약 조선인 작곡가가 일제의 기미가요 행진곡을 작곡했다면 그럼 그 작곡가를 기리는 공원을 세울 수 있나"라며 중국인 관광객 유치 논리에도 "수많은 일본 관광객을 부르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 공원도 세워야 하냐"고 따졌다.
그는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다. 홍콩 민주화운동가 조슈아 웡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여 '홍콩 시민과 한국 국민들이 40년 전 광주에서 있었던 많은 이들의 희생 잊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중국공산당은 천안문 사태와 홍콩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했다"며 "그 중국 공산당의 상징을 광주민주화운동의 성지에서 기리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자 광주정신을 팔아먹는 것이다. 중국몽은 그저 꿈일 뿐이다. 제발 제정신으로 돌아오시라"고 강 시장에게 촉구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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