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음과 양이 뒤바뀐 조각으로 상반된 세계의 공존 모색 [나의 삶 나의 길]
음과 양을 생각하다 새로운 조각법 만들어
음각으로 새기지만 관객들은 양각으로 봐
인기없는 인물 조각 파고들어 새 장르 열어
현대조각 주요작가로 19차례 개인전 개최
“틀을 씌우는 것은 싫다”
일상서 아름다움 찾아… 목적 가진 장면 거부
깎거나 빚어내는 대상들은 평범한 이웃들
獨유학시절 구상 ‘소년상’ 예술가의 길 열어
2024년엔 전업작가로 새 출발 안 해본 일 할 것
작품 가까이 접근한 관람객들은 조각이 지닌 부피감이나 존재감,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는 기대감 대신, 방금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대상이 어느새 쏙 빠져나가 버린 듯한 빈자리를 감지하게 된다. “헐!” 음과 양이 뒤바뀌어 제작된 조각의 파인 공간이 주는 공허함이 엄습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정반대의 현상에 관람객들은 그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배시시 웃을 뿐이다.
평론가 김원방은 “음과 양이 도치된 속이 텅 빈 조각인데, 이용덕은 이를 감탄스러울 만큼 완벽하고도 매력적으로 완성해내고 있다”며 “그것은 관객에게 거의 마술에 가까운 환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호평한 바 있다. 그는 “마르셀 뒤샹, 브루스 나우먼, 리처드 세라, 레이첼 화이트리드 등의 작가들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이용덕의 방식은 그들과 또 다른 방법을 택하면서도 보다 효과적으로 대상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또 “이용덕의 음각 조각은 ‘존재 대 비존재(무)’라는 이분법적 형식이 아니라 ‘존재의 부정이면서 동시에 비존재의 부정’, 즉 ‘이중부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1984년인가 85년인가, ‘음’과 ‘양’에 대해 생각하다가 떠올린 아이디어(역상조각)였죠. 일부는 들어가게, 일부는 나오게 보이도록 만들지만 전체를 보면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게 한다던가… 음각으로만 조각해도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양’이 내재하기 때문에 양각으로 보이는 거죠.”
이용덕은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실제’와 ‘재현’에 주목했다. 대부분 추상조각에 줄을 섰을 때 그는 인물조각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다들 구상조각은 진부하다고 여겼지만 “인물은 여전히 파고들 것이 많다”면서 ‘음과 양’이 뒤바뀐 역상조각(Inverted Sculpture)이란 새 장르를 열었다. 음각으로 새기지만, 보는 이들에겐 양각으로 보여 신비롭다. 볼록함과 오목함, 겉과 속, 음과 양이 뒤바뀐 이 역상조각은 ‘상반된 두 세계의 공존’을 눈으로 확인시켜 준다. ‘있다고 생각했던 것’(양각처럼 보일 때)과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음각이란 걸 아는 순간), 그런데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있는 것이다. 존재와 비존재가 동시에 병존하는 작품이다.
그가 깎거나 빚어내는 대상은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다. 앞을 보며 경쾌하게 걸어오는 여자, 청소년들의 거리농구, 엎드린 채 무언가 적고 있는 여자, 대야에 물을 받고 구부정한 자세로 세수하는 노인, 벤치에 앉아 생각하는 여자 등이다. 편안하고 대중적이며 즐거움을 주는 친근한 소재들이다.
이러한 역상조각은 이용덕을 세계 현대조각의 주요작가로 손꼽게 만들었다. 독일 베를린 슐뮤지엄, 중국 국립미술관, 마카오 미술관, 상하이 다륜미술관 등 국내외에서 19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여러 나라에서 100여회 단체전에 참가했다. ‘조각계의 한류스타’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그의 천재성은 일찌감치 독일 유학시절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이용덕은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고, 스승인 한국 추상조각의 개척가 최만린 선생의 무한 사랑을 받는 등 탄탄대로에 서 있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독일 유학을 택했다.
1994년 가을, 그는 베를린의 한 벼룩시장에서 한 장의 사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1920년 10월 24일 한 초등학교의 1학년 학급을 찍은 사진이다. 아이들의 표정이 왜 그토록 슬퍼 보였을까. 1차 세계대전 직후 기근과 질병, 억압의 시기였다. 이후 이들은 어떤 운명의 삶을 살았을까.
사진 속 아이들은 취학 전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20대에 또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겪는다. 유태인이나 폴란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살아남았을까. 독일군으로 참전한 아이들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무사했을까. 이후 동독 또는 서독 어디에서 삶을 꾸렸을까. 통일독일을 맞이했을까.
그는 공공조형물도 다수 제작했다. 안중근 의사상(남산, 안중근기념관)과 유관순 열사상(삼일공원, 동작구)이 대표적이다. 김수환 추기경상, 프란치스코 교황상(명동성당), 정주영 정신영 형제상(서울 관훈클럽)도 그의 작품이다. 대치동 포스코 사옥의 박태준 회장 부조도 그가 만들었다. 중절모의 박 회장이 당당히 서 있는 이 역상조각은 관람자가 움직이면 같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한눈 팔지 않고 한길만 걸으며 ‘범생’의 삶을 살아온 그는 요즘들어 살짝 들뜨거나 설레기까지 한다. 학교를 떠나는 내년 2월 이후 펼쳐질 인생 후반전에 대한 기대와 계획 때문이다.
“전업작가로서 새로운 것, 안 해본 일을 찾아나설 겁니다. 재직중이라 작업에 흠뻑 몰입하여 살지 못했는데, 마침내 전업작가만큼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미뤄둔 일이 꽤 있거든요. 후반전에 만들 작품들은 아무래도 뭔가 달라지겠죠. 시간도 늘고 충분히 여유있게 표현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은 작품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을 테죠. 하하.”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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