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수해 현장서 “정말 틀려 먹은 것들”… 김덕훈 내각 질타

김예진 2023. 8. 2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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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농경지 555만㎡ 침수 피해… 대규모 문책 예고
간석지 제방 붕괴 ‘식량난 악영향’
“경제사업 말아먹어” “용서 불가”
간부 잘못 일일이 나열하며 격노
경제난 화살 돌리기 의도 분석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덕훈 내각 총리를 겨냥해 “국가 경제 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총리 등에 대한 대규모 문책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가뜩이나 심각한 식량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 2면에 걸쳐 김 위원장이 평안남도 남포 온천군 석치리에 위치한 안석간석지 피해 복구 현장을 현지 지도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신문은 “안석간석지 제방에 배수 구조물 설치 공사를 질적으로 진행하지 못해 바닷물 영향으로 제방이 파괴되면서 논벼를 심은 270여정보를 포함, 총 560여정보의 간석지 구역이 침수되는 엄중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1정보는 약 9900㎡로 270여정보는 대략 267만㎡, 560여정보는 555만㎡에 해당한다.
현지 지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21일 평안남도 안석간석지 침수 피해 복구 현장을 찾아 직접 물속에 들어가 현지 지도를 하고 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배수 구조물 설치 공사 실패를 침수 원인으로 지목하며 김덕훈 내각 총리를 강하게 질타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식량난 타개를 위해 전국 곳곳에 간석지를 만들고 있다. 북한은 “간석지 건설을 국가 중대사로 강력히 추진하는 것은 가까운 앞날에 인민들의 식량 문제, 먹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한 것”(노동신문 5월27일자)이라고 강조해 왔다.

신문 1면에는 김 위원장이 신발과 바지가 다 젖은 채 잔뜩 분노한 얼굴로 간부들을 질책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실렸다. 또 하반신이 다 잠기는 침수 현장에 간부들을 끌고 들어가 비를 맞으며 관계자들을 질타했다. 김 위원장은 “며칠 전 침수 보고를 받고 당 중앙위 비서를 파견해 복구사업 지휘를 지시하고 군대까지 동원했는데 어떻게 내각과 성(省), 중앙기관의 책임 일꾼(간부)들은 현장에 얼굴도 내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어 “내각 총리는 관조적 태도로 현장을 한두 번 돌아보고, 부총리는 현장에 나와 연유(기름) 공급원 노릇이나 했으며, 간석지 건설국장은 자기는 크게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돌아가겠다고 했다”며 잘못을 일일이 나열했다.

김 위원장의 질책은 특히 김 총리에게 집중됐다. 그는 “김덕훈 내각의 행정 경제 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고 그 결과 건달뱅이들의 무책임한 일본새로 국가 경제 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당 중앙의 호소에 호흡을 맞출 줄 모르는 정치적 미숙아들, 경종을 경종으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지적 저능아들, 인민의 생명 재산 안전을 외면하는 관료배들, 당과 혁명 앞에 지닌 책무에 불성실한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책임 있는 기관과 당사자들을 색출”하겠다고도 했다. 김덕훈은 2020년 북한에서 젊은 축인 59세 나이로 경제를 총괄하는 총리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또 간석지 건설국장에 대해선 “국가로부터 공급받은 많은 연유를 떼내 몰래 은닉해 놓은 행위까지 했다는데”라며 비리 행위 적발도 시사했다. 마치 현장을 직접 본 것처럼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북한 사회의 감시와 통제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덕훈 내각 총리
김 위원장은 과거에도 간부들을 질책하고 문책 인사를 단행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공포 통치’는 책임을 돌리고 애민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번 보도만 놓고 보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의 초고강도 질책이다. “군대가 전적으로 달라붙어 해 달라는 뻔뻔스럽고 불손하기 그지없는 태도” “정말 틀려먹은 것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등 호통을 쏟아냈다. 신문은 엄격한 처벌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이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와 규율조사부, 국가검열위원회와 중앙검찰소가 책임 있는 기관과 당사자들을 색출해 당적, 법적으로 단단히 문책하고 엄격히 처벌할 데 대해 명령”했다고 보도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역대 사례와 비교해) 매우 높은 수위”라며 “워낙 비난 강도가 높아 어떤 형태로든 인사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내각에 전가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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