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대법원장’ 지명… 사법부 지형 대대적 변동 예고

곽은산 2023. 8. 2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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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이균용 후보자 지명
대통령실 “약자 인권신장 앞장”
임명 땐 대법원 보수우위 구도
산업 방문규·국조실장 방기선
행복청장 등 차관급 4명 인사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이균용(사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산업통상부 장관 후보자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을 지명했고, 국무조정실장에는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을 내정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후보자에 대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두 번이나 역임하는 등 32년간 오로지 재판과 연구에 매진한 정통법관이다. 특히 장애인 권리를 신장하고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판결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 인권 신장에 앞장서온 신망 있는 법관”이라며 지명 이유를 밝혔다.

이 후보자는 사법부 내에서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법관으로 분류된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중도·보수 7명, 진보 6명 구도를 형성한 데 이어 이 후보자 지명으로 대법원 진용이 보수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실장은 브리핑에서 방 후보자가 “정통 경제관료로 국정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와 조정 능력을 바탕으로 규제 혁신, 수출 증진 등 산자 분야 국정과제를 잘 추진할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방 내정자에 대해서는 “풍부한 정책 조정 경험을 갖추고 있어 국정 현안을 합리적으로 조율하고 주요 국정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2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에 이균용(62·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뉴스1
방 후보자는 “우리 산업과 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해나갈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방 내정자는 “윤석열정부 국정철학이 우리나라 정책 하나하나에 모두 스며들어 잘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산업부 장관 교체는 국정과제인 탈원전 폐기 정책 등의 지지부진한 상황 등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지난 5월 대통령실 비서관을 산업부 차관으로 보냈을 당시에도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산업부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기획재정부 1차관에는 김병환 대통령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 행정안전부 차관에는 고기동 세종시 행정부시장,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에는 이한경 행안부 재난관리실장이 내정됐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오송 지하차도 참사 책임을 물어 인사 조치를 건의했던 이상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은 김형렬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이사장으로 교체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오는 24일까지 재송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국회는 지난 18일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개최했으나 적격 여부에 대한 여야 의견 차이로 청문보고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했다. 국회가 청문보고서를 재송부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은 재송부 요청 기한 다음 날부터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재부 1차관으로 김병환 현 대통령 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왼쪽부터), 행정안전부 차관으로 고기동 현 세종특별자치시 행정부시장, 행안부 재난안전본부장에는 이한경 재난관리실장,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에는 김형렬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을 내정했다고 대통령실이 22일 밝혔다. 대통령실 제공
◆尹 “사법부 정상화” 의지… 재판 지연·법관 이탈 등 해결 과제

보수 성향의 이균용(61·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2일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데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투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지명을 기점으로 대법원의 중심축은 진보에서 보수 쪽으로 이동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사법부 지형 대대적 변동 예고

윤 대통령이 이날 이 후보자를 지명한 배경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법원이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 이후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꾀하며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에서 벗어난 인사를 발탁해 왔다. 그 자리는 김 대법원장이 몸담았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이 꿰찼다.

이들이 전체 대법관의 과반을 이루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구성은 진보 성향 우위 구도를 구축했다. 지난달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이 퇴임하기 전까지 전합에 참여하는 13명의 대법관(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전합 참여하지 않아 제외) 가운데 진보 성향으로 평가되는 법관이 7명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요 사건에서 ‘정치적 편향’ 논란이 여러 번 불거졌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오석준·권영준·서경환 대법관이 임명되면서 전합 구도는 보수·중도 7명, 진보 6명으로 변화했다. 여기에 더해 이 후보자가 임명되면 보수·중도 성향이 8명으로 늘어난다. 이는 사회·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전합의 선고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선의 한 중견 법관은 “대법원장이 전합 재판장을 맡긴 하지만 전합 내에선 ‘13분의 1’의 권한만 있을 뿐”이라면서도 “다만 이번 인사를 봤을 때 향후 대법원 구성이 보수주의 성향의 인사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언급했다.
대법관 구성은 당장 내년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을 시작으로 8월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 12월 김상환 대법관이 줄줄이 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이들의 후임 대법관 제청권과 함께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의 지명 권한을 갖는다. 헌재는 지난 3∼4월 취임한 김형두, 정정미 재판관을 제외한 나머지 7명 재판관 전원이 현 정부 임기 내 교체를 앞두고 있다.
◆재판 지연, 법관 이탈 문제 급선무

새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처해 있는 재판 지연과 법관 이탈 같은 난제를 해결해야 할 임무를 떠안게 된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 ‘깜짝 지명’된 김 대법원장은 임기 중 법원행정처의 역할을 축소하고 법원 내 관료화를 타파하는 방향으로 사법 행정을 개혁하려 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소송에 대처하지 못해 재판이 지연되고 유능한 법관들이 대거 법원을 떠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일각에선 법원 내 승진제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가 2018년 폐지돼 법관의 사기와 동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일선 판사들이 추천한 사람을 법원장 후보로 올리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관련해서도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오히려 강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수직적 인사 구조를 해소하자는 취지로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각 법원 수석부장판사가 대부분 법원장 후보로 추천됐기 때문이다. 한 부장판사는 “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인사 제도를 손보는 것”이라면서 “지금의 인사 시스템은 인기 투표처럼 돼 버렸다. 인사와 관련한 여러 문제가 재판 지연이나 ‘워라밸’ 추구 성향으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로는 사법부의 신뢰를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뉴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다만 “고법부장 제도 폐지 등으로 법관들이 일을 열심히 안 한다는 지적은 매우 단편적인 분석”이라면서 “법관의 관료화나 서열화를 방지하면서도 인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법조 일원화로 인한 법관 충원도 시급한 과제다. 법조 일원화는 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일으켰다. 재야 법조 인력을 법원으로 유인할 동기가 떨어진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법관 급여 인상 등 처우 개선은 결국 법률 개정을 거쳐야 하는 문제다. 이와 관련해 일선의 한 중견 법관은 “사법 행정은 법원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면서 “대법원장이 바뀌더라도 급격한 변화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곽은산·이종민·안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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