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증후군'은 딱 50년 전 이 사건에서 시작됐다[줌워드]
인질들, 납치범들 옹호하며 법정 진술 거부…경찰에 적대
(서울=뉴스1) 이유진 기자 =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닌 사람이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거나 연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다.
23일 AFP통신은 50년 전인 1973년 8월 23일 이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인 스웨덴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Norrmalmstorg) 크레디트반켄(Kreditbanke) 은행 강도 사건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얀에릭 올손(Jan-Erik Olsson)은 크레디트반켄은행에 침입해 여성 3명과 남성 1명, 총 4명을 인질로 잡고 스웨덴 법무부 장관과의 협상에서 △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던 악명 높은 은행 강도 클라르크 올로프손(Clark Olofsson)을 은행으로 데려올 것 △ 300만 크로네(약 4억원), △ 탈출을 위한 무스탕 차량 3가지 요구 조건을 제시한다.
인질을 구해내고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스웨덴 정부는 이에 동의했고, 이 같은 협상 과정은 언론을 통해 생중계됐다.
6일 동안 경찰들과 대치를 이어온 남치범들은 인질들에게 공포감을 주면서도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 인질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인질 중 한 명이 가족과 연락하지 못하자 인질을 위로하고, 인질 중 1명이 감기로 힘들어하자 강도들은 코트를 벗어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방에 있는 것에 폐쇄 공포를 느끼는 인질에겐 밧줄을 풀어주고 밖으로 나가게도 해줬다.
둘째날부터 납치범들과 인질들은 서로 이름을 교환했고 인질들은 납치범들보다 경찰을 더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당시 협상 과정에서 경찰국장이 인질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은행 안에 들어갔을 때 인질들은 오히려 납치범들을 경찰로부터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경찰이 인질들과 납치범이 있는 금고에 최루탄을 발사했고 납치범들은 즉시 항복해 상황은 마무리됐다.
◇ 인질들, 납치범 연행 당시 포옹·악수…증언 거부하기도
경찰은 인질들을 먼저 나오라고 요구했지만, 납치범들을 끝까지 보호하던 4명의 인질들은 이를 거부했다. 금고에서 인질들과 납치범들은 서로 키스하고 포옹하고 악수하며 헤어졌다.
경찰이 납치범들을 체포하자 인질 중 한 명인 크리스틴 엔마크는 클라르크를 향해 "클라르크, 다시 만나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질로 잡혔던 엔마크는 당시 23세로, 이후 자신의 저서를 통해 사건 이후 당시 상황을 자주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겁에 질려 한 쪽은 경찰, 다른 한 쪽은 강도라는 두 가지 살해 위협 사이에 갇혀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클라르크)는 제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저는 그를 믿기로 결심했다“며 ”저는 23살이었으며 죽는 게 두려웠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클라르크와 올손이 저는 조금도 두렵지 않고 경찰이 두렵다"며 "우리는 여기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당시 상황을 취재했던 사진기자 베르틸 에릭슨(73)은 "클라르크 올로프손이 (은행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장악했고, 경찰과 대화를 주도했다"며 50년 전을 떠올렸다.
이어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훌륭한 연설가였다”면서 엔마크가 그 상황에서 올로프손에 매료됐다고 했다.
이 같은 인질들의 남치범에 대한 애착과 동조 현상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고, 경찰은 당시 엔마크가 클라르크와 함께 사건을 계획했는지 조사하기까지 했다.
인질들은 경찰을 적대시하며 재판에서도 증언을 거부하거나 납치범들에 유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고, 납치범들이 투옥되자 그들을 찾아가 면회를 신청하기도 했다.
얀에릭 올손은 징역 10년의 판결을 받고 1980년대 초에 출소했다. 클라르크는 최초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범죄심리학자인 닐스 베예로트(Nils Bejerot)는 인질들의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50년이 지난 현재,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스웨덴의 의대인 카롤린스카연구소의 정신과 전문의 크리스토퍼 람은 스톡홀름 증후군은 "피해자가 트라우마 상황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어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위협을 가하는 사람과의 정서적 유대감은 학대 관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부연했다.
세실리아 아세 스톡홀름대 교수는 스톡홀름 증후군은 “당국과 국가가 인질을 보호하지 못할 때 인질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엔마크 역시 “클라르크는 제게 생존의 기회였고 저를 보호해줬다”고 거듭 주장한 바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수년이 흘렀을 때 에릭 로네가드 당시 경찰청장은 자신의 저서에 "우리는 인질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가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많은 경찰이 은행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인질 중 한 명이 총에 맞을 위험이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선 이번 사건을 배경으로 한 ‘클라르크’ 6부작 드라마를 방영하기도 했다.
rea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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