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식 '인사 스타일'…실력, 그리고 그때그때
尹대통령은 왜 '재판만 한 판사'를 대법원장에 지명했나
윤석열 대통령이 새 대법원장 후보로 이균용(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한 이유는 '정통 법관'이라는 점이다. 말 그대로 법리에 충실한 판사다운 판사가 사법부의 수장이 돼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22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10여명의 대법원장 후보군 중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하다가 이 후보자를 낙점했다.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지만 '판사'로서 이력과 판결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분은 32년간 재판만 하신 분"이라며 "법원행정처도 안 가고 전국 각급 법원에서 다 근무했다. 정통 법관으로서 법리나 실력, 인품을 다 인정받는 소위 말하는 법원 내에서도 인정받는 정통 법관"이라고 밝혔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또한 이날 인선 발표에서 가장 먼저 "32년간 오로지 재판과 연구에만 매진해온 정통 법관"이라고 소개했다.
즉 사법부를 정상화할 수 있는 최적임자라는 판단이다. 윤 대통령은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법원이 급격히 '정치화'되고 특히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리에 기반한 균형을 잃었다고 보고 있다. 법치주의를 지탱하는 입법-행정-사법의 마지막 지지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강한 우려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법리에 정통하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실력있는 법관을 수장으로 내세워야 사법부가 바로잡힌다고 여긴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이 후보자의 성향은 보수로 분류되지만 이념이 아닌 법리를 바탕으로 판결을 내려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판결을 보면 장애인이나 여성 이런 쪽에 상당히 진보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며 "다 법리에 기초한 판결이라서 강한 보수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중도 보수 정도 아니겠느냐는 인식이다.
실제 이 후보자가 맡았던 재판에서 이른바 보수 진영논리와 무관한 판결이 나온 사례가 적지 않다. 이 후보자는 시위 도중 경찰의 살수차 진압으로 머리를 다쳐 숨진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과 관련해 2019년 2심 재판에서 1심과 달리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또 2020년에는 내란 선동 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일부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대해 형사보상금(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재판 당사자가 쓴 비용을 국가가 보상해주는 것) 지급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념과 상관없이 법리에 따른 판결을 내린 사례들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은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발목을 잡기도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대법원장은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후보자가 전임 문재인 정부 때 요직인 대전고법원장을 지냈고 줄곧 대법관 후보로 거론됐던 점도 야당이 마냥 반대를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전관예우 혹은 기업사건 수임료 논란 등이 따라붙는 로펌 근무나 시류에 휩쓸려 시빗거리에 오르내릴 수 있는 법원행정처 근무 이력이 없다는 것도 강점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대법원장 후보가 국회에서 동의 못 받은 케이스가 별로 없다"며 "야당이 트집잡기로 간다면 국민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만약 대법원장을 공석으로 만든다면 전원합의체 판결을 못 내리는 상황이 되는데 국회 다수당이 무책임하게 그렇게 둘 것이냐의 문제"라고 했다. 만약 대법원장 후보가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해 대법원장이 공석이 되면 선임 대법관이 그 대행을 맡게 된다.
한명 한명 '살라미 개각'…尹대통령식 수시 인사, 왜?
윤석열 대통령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교체하면서 집권 2년차 수시개각을 이어갔다. 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국정 장악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인사 수요 위주로 정무직 인선을 실시했다. 국회 청문회와 인물 적합도 등을 고려해 장관 인사는 최소화했고 대규모 차관 인사로 국정과제 추진의 속도감을 높이고 있다.
22일 단행된 산업부 장관과 국무조정실장, 기획재정부 1차관 등의 연쇄 인사와 행정안전부 차관, 행복청장(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등 차관급 인선은 9월 정기국회 등 본격적인 하반기 국정 대응을 앞두고 내각을 정비하는 차원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6월29일 장관급 인사와 11개 부처의 차관 등 15명의 장·차관급 인선을 실시했다. 취임 후 첫 대규모 정무직 인사였다. 국정철학에 밝은 대통령실 비서관들을 대거 부처에 내려보내 국정운영에 속도감을 높이는 취지였다. 이어 지난달 28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명하면서 방송개혁 등 국정과제 수행에 탄력을 더했다.
사실 추가 개각은 이달 초로 예상됐지만 국내외 현안으로 미뤄졌다. 윤 대통령이 수해와 잼버리, 태풍 대응에 매진한 뒤 부친상을 치르고 곧바로 한미일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인사를 실시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안보 현안이 일단락된 만큼 앞으로는 경제와 민생 등 국내 당면과제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장관에 기재부 출신의 정통 경제관료를 투입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신임 국무조정실장도 기재부 출신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어느 정도 안보, 대외관계 이런 건 완성됐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제부터는 경제다, 국정 중심은 경제다'고 해서 특히 기재부에서 경제를 오래 했던 분들을 모셨다"고 말했다.
산업부 장관의 경우 일찌감치 교체 대상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되돌리고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신속한 추진을 하지 못한다는 대통령의 질타를 받아왔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교수 출신 장관이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이 5월10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상징적으로 먼저 담당 비서관(당시 강경성 산업정책비서관)을 차관으로 보내 부처에 긴장감을 높이기도 했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신임 산업부 장관 후보자는 꼼꼼하게 일을 추진해서 국무총리가 강하게 추천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당분간 추가 개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당장 추가 개각 계획은 없다"고 했다.
현재까지 국무위원 중에는 당으로 돌아간 권영세 의원이 맡았던 통일부 장관과 이번 산업부 장관만 바뀌게 됐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과 이 과정에서 신상털이 등을 우려한 주요 인사들의 고사로 후보자를 찾기 어려운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산업부와 함께 꾸준히 인사 대상으로 거론됐던 부처들도 후임자가 마땅치 않아 아직 구체적인 교체 시점을 잡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하고 국정감사 등이 이어지면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야 하는 장관급 인사는 어려워진다. 후속 인선은 11월 말 이후 다시 실시될 전망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출마할 장관 등이 직을 내려놔야 하기 때문에 인사 수요가 생긴다.
물론 보여주기식 대규모 인사를 지양하고 적재적소 원칙의 수시인사를 지향하는 윤 대통령의 특성상 필요에 따라 그 사이에도 추가 인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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