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하이난 치킨라이스와 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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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다문화 국가로 문화융합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나라, 싱가포르에 최근 다녀왔다.
싱가포르 대표 음식이자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미쉐린(미슐랭) 메뉴'로 꼽히는 '하이난 치킨라이스'에 얽힌 사연을 알아보는 도보여행을 골랐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가 오늘날의 번영을 이룬 데에는 중국계와 말레이계·인도계 국민들이 하이난 치킨라이스와 호커센터로 상징되는 '싱가포르인'으로서 만들어낸 정체성이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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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다문화 국가로 문화융합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나라, 싱가포르에 최근 다녀왔다. 각종 드라마와 인터넷 등을 통해 본 아름다운 광경에 시선이 끌렸던 이유가 컸다.
기왕이면 역사도 알아볼 겸 싱가포르 정부가 단기 여행객들에게 제공하는 2시간 일정의 무료관광을 신청했다. 싱가포르 대표 음식이자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미쉐린(미슐랭) 메뉴’로 꼽히는 ‘하이난 치킨라이스’에 얽힌 사연을 알아보는 도보여행을 골랐다.
19세기 후반 영국 식민지였던 싱가포르 지역에 정착한 하이난(海南) 출신 중국인들이 자신들보다 먼저 자리 잡은 타 지역 출신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싱가포르 지역에서 유행하던 요리법을 활용해 만들어낸 ‘싱가포르식 혼성 음식’이라는 이야기였다. 또한 싱가포르식 커피인 ‘코피’와 유명한 칵테일인 ‘싱가포르 슬링’ 또한 하이난 출신 바텐더가 만들어낸 ‘싱가포르식 혼합 레시피’라는 것.
싱가포르 음식을 살펴보니 더욱 놀라웠다.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결혼으로 탄생한 싱가포르식 쌀국수 ‘락사’, 싱가포르에서 발명된 매운 게 요리인 ‘칠리 크랩’, 인도 남부 매운 커리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생선 머리를 함께 넣은 ‘피시헤드 커리’까지 그야말로 ‘융합’이 빚어낸 음식들이 일상을 채우고 있는 것.
무엇보다도 이런 음식이 팔리는 공간은 ‘호커센터’라고 불리는 곳으로, 정부 관리하에 민족별 각지의 음식을 파는 행상(호커)들을 시장처럼 모아놓은 일종의 ‘노천 음식시장’이다. 싱가포르인의 80%가 매주 한번 이상 찾을 정도로 ‘마음의 고향’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보다 약간 넓은 싱가포르 전역에 있는 호커센터만도 118곳에 달하며, 인종·종교·소득 등의 구분 없이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싱가포르의 호커 문화는 ‘다문화 도시환경에서의 공동체 식사와 식문화’로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가 오늘날의 번영을 이룬 데에는 중국계와 말레이계·인도계 국민들이 하이난 치킨라이스와 호커센터로 상징되는 ‘싱가포르인’으로서 만들어낸 정체성이 큰 역할을 했다.
호커센터 테이블에서 하이난 치킨라이스를 먹으며 문득 우리 농촌이 떠올랐다. 요즘 전국 농촌 재래시장과 농협하나로마트에선 각종 아시안 식자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베트남·중국 등 외국 음식점과 식료품점도 제법 흔해졌다.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농촌에서는 중국식 국수인 ‘탕미엔’과 ‘마라탕’, 베트남 쌀국수, 필리핀식 잡채인 ‘판싯비혼’ 등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현재 농촌에선 ‘농업 근로자 기숙사 건립 지원사업’이 2년째 공전하고 있다. 농가의 외국인 근로자 숙소 마련 부담을 덜고 근로자에겐 질 좋은 숙소를 제공하기 위한 정부 사업이지만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를 혐오시설로 보고 지역 내 건립을 기피하는 님비현상이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저임금 노동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농업인들을 도울 외국인 근로자까지 자신의 지역에 두지 않겠다면 앞으로 우리 국민들은 어떤 방법으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을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이난 치킨라이스를 만들어냈던 싱가포르처럼 우리 농업계와 농촌 주민들도 짜장면과 부대찌개를 ‘전통음식’으로 받아들이거나 만들어낸 옛 지혜를 살려 바람직한 해법을 도출하기를 기대해본다.
류수연 뉴미디어영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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