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폭염→태풍…48일 만에 ‘공식퇴근’ 한 예보분석관들

박상현 기자 2023. 8.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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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재해기상대응팀이 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통과한 후 상황 등에 대해 토의를 하고 있다. /기상청

“이름은 ‘김태풍’이나 ‘김카눈’이 어떨까요?”

6호 태풍 ‘카눈’이 열대저압부로 약화하면서 소멸한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기상청 재해기상대응팀 사무실. 며칠 간 긴장감 역력했던 사무실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밤샘근무 중이던 한 예보분석관이 하필 ‘태풍 상륙일’에 아빠가 됐다. 축하인사 한마디 건넬 새 없이 분주하다가 태풍이 사라지고 나서야 득남 소식이 화제에 오른 것이다.

이날 예보분석관 7명은 48일 만에 ‘공식 퇴근’했다. 올여름 기록적 장마와 정점 없는 폭염(暴炎), 한반도를 종단한 사상 첫 태풍이 연달아 찾아오며 7주간 주말을 거의 반납하고 출근한 탓이다. 초췌한 얼굴로 각자 자리에 쌓아둔 빨랫감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아이 만나러 대전으로 급히 달려가 미처 자리를 치우지 못한 ‘새 아빠’ 책상에만 짐이 한가득했다.

◇”전례 없는 경로에 대만·일본 상륙 태풍까지 분석”

지난 10일 한반도를 강타한 ‘카눈’은 1951년 이후 우리나라 최남단과 최북단을 관통해 휴전선까지 넘은 최초의 태풍으로 기록됐다. 이동경로가 한반도 정중앙에 놓이고, 전역이 ‘강풍반경’에 들었다. 한반도의 동서 폭(300km)보다 태풍의 강풍반경(340km)이 더 넓었다. 역대급 상흔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피해 규모는 크지 않았다. 정확한 경로 예측이 피해를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통 태풍 경로에 대한 예측은 과거 사례를 통해 힌트를 얻는다. 특히 산지(山地)가 많은 우리나라 같은 지형에선 태풍이 상륙한 후 산맥과 이리저리 부딪히며 강도가 약화하거나 경로가 뒤틀릴 가능성이 커 예측이 더 어렵다. 기상청은 ‘카눈’과 비슷한 경로를 찾기 위해 2000년 이후 발생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총 78개 태풍 경로를 전수조사했다. 그러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종단한 태풍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다시 1951년까지 자료를 뒤져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박중환 분석관은 “참고할 만한 과거 사례가 없다 보니 대만·일본에 상륙한 태풍 중 산맥을 넘은 사례를 일일이 뒤져봤다”며 “우리 상황에 일대일 대응을 하긴 어렵지만 이동경로 예측에 참고로 삼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카눈’의 경로를 예측한 각국 수치예보모델 중 우리 기상청의 예측이 가장 정확했다. 태풍 상륙을 며칠 앞둔 지난 8~9일 각국 예상 경로는 대체로 ‘카눈’이 서울을 통과하거나 더 서쪽으로 움직일 것으로 전망됐다. 우리 기상청 예측경로가 가장 동쪽에 있었다. 박정민 분석관은 “각국이 경로가 서쪽으로 더 이동할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전망했지만 중국 내륙의 건조역이 강화하는 것을 감안해 우리 기상청은 서울이 아닌 경기동부로 태풍이 통과하는 경로를 고수했다”고 했다.

◇서울 전역 호우주의보…열흘 만에 다시 ‘비상근무’

재해기상대응팀이 다시 비상근무에 돌입한 것은 ‘카눈’ 소멸로부터 꼭 열흘이 지난 21일. 한반도 남동쪽 고온다습한 공기와 북서쪽 한랭건조한 공기가 충돌해 거대한 비구름대가 형성되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많은 비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많은 양을 퍼붓고 소강상태에 드는 최근 강수 패턴상 주말까지 기습 폭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비는 22~23일 비구름대가 한 차례 전국 곳곳에 비를 퍼붓고, 24일 새로운 저기압이 한반도를 통과하며 전국에 다시 비를 퍼부을 전망이다. 수도권에는 25일까지 비가 이어지겠다. 이런 비가 내리는 것은 우리나라가 점차 ‘한여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3일은 여름이 물러가고 더위가 가신다는 처서(處暑)다. 한반도 대기 상·하층을 각각 장악했던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 다툼이 끝나고 저기압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비가 내리는 것이다. 임윤진 재해기상대응팀장은 “여름 끝물로 갈 때 방심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작년 8월 8일 서울 집중호우도 많은 비가 예고됐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비가 집중되며 피해를 키운 만큼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했다.

기상청은 22일 서울 전역에 호우주의보를 발령했다. ‘카눈’ 상륙 당일 아빠가 된 김연직 분석관도 남은 출산휴가를 자진반납하고 출근했다. 김 분석관은 “이번에 많은 비가 내리고 나면 9월에 찾아올 ‘가을 태풍’이 또다시 고비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태풍 예보 때 ‘태풍 상륙 날 태어난 내 아이의 안전을 생각한다’는 마음으로 더 신중하게 예보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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