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지극한 정성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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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름 남짓 병원 신세를 지고 돌아오니 농사가 엉망이다.
국내외 여건과 지역의 장래를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기보다 그저 SOC 예산과 자기편 이익이나 챙기는 사람이 지도자 노릇을 한다면 과연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중용(中庸)'에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겉으로 드러나 밝아지고, 사람들을 감동시켜 결국 본인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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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드는 나랏일도 마찬가지
지르고 보는 지자체 각종사업
재정준칙 도입 등으로 견제를
맡은 임무 완수하는 공직자와
깨어있는 국민만이 사회 개선
어쩌다 보름 남짓 병원 신세를 지고 돌아오니 농사가 엉망이다. 제철을 넘긴 오이와 호박은 줄기가 마르고 제때에 꺾지 않은 옥수수는 늙어서 먹을 수가 없다. 고추는 탄저병에 걸려 시들고 콩밭은 잡초만 무성하니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한 해 농사가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이달의 농가월령가는 ‘슬프다 농부들아 우리 일 거의로다 마음을 놓지 마소 아직도 멀고 멀다’며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을 타이른다. 작은 텃밭 농사조차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제때에 관리하지 않으면 기대한 수확물을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많은 조직과 인력·예산을 수반하는 나랏일이야 말해 무엇하랴!
얼마 전 새만금에서 열렸던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큰돈을 쓰고도 소기의 목적은 고사하고 나라 망신을 시켰다는 사실을 놓고 문제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는 논쟁이 뜨겁다. 매립도 하지 않은 간척지를 행사 장소로 정했느냐는 지적부터 폭염과 해충, 비위생적인 화장실과 세면장 등 부실한 안전과 편의시설, 무작정 나랏돈을 끌어들이는 한탕주의와 이를 거르지 못하는 재정관리시스템, 방만한 행사 관리운영과 무사안일 등을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하고 징비(懲毖·미리 징계해 후환을 경계함)의 정신으로 고쳐나가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역 홍보와 상품 판매, 관광객 유치와 주민들의 자긍심 고취 등을 위해 축제나 국제행사를 개최하고 그리고 도로·철도·공항·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는 것,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성을 무시한 채 정치를 등에 업고 인기에 영합해 그저 보여주기 위한 토건사업을 벌이다가 고추 말리는 공항, 다람쥐 고속도로, 흉물스럽게 방치된 시설물 등 오히려 지역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어디 한둘인가. 지역을 살려보려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역량이나 본래의 취지를 잊고 과하게 일을 벌이다보면 나라 살림은 거덜나고 불신과 부정부패는 커질 수밖에 없다. 옛말에도 ‘목표는 크고 멀리 설정하더라도 실천할 때는 능력을 헤아려 점진적으로 나가야 한다. 뜻이 너무 커 마음이 수고롭고(志大心勞) 힘은 약한데 임무만 무거우면(力小任重) 실패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사실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후 지자체의 권한이 확대되면서 균형발전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지역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러다보니 형편이 안되는 지자체까지 대책도 없이 일단 저지르고 부실운영을 거듭하다 결국 정부에 손을 벌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차제에 재정 투자로 시행한 각종 지역축제 및 국제행사, 그리고 지역개발 관련 사업의 관리운영 실태를 조사해 불요불급한 예산 낭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앙과 지자체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지자체의 권한에 맞게 책임과 재량권 확대 및 재정준칙 도입,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준의 상향 조정 등을 강구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관련 제도와 공직자의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공감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달라지기 어렵다. 국내외 여건과 지역의 장래를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기보다 그저 SOC 예산과 자기편 이익이나 챙기는 사람이 지도자 노릇을 한다면 과연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중용(中庸)’에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겉으로 드러나 밝아지고, 사람들을 감동시켜 결국 본인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잼버리든 지역 개발이든 지성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는 공직자와 옳은 일에 앞장 서는 깨어 있는 국민만이 관행이라는 족쇄를 풀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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