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만 바꾼 게 아니라’ 확 변화한 개정판들
편집자 주석 보강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김보영 작가 대표작 '7인의 집행관' 직접 수정
훼손된 원고 되살린 '고우영 열국지' 무삭제판
개정판은 다양한 이유로 나온다. 그중에서도 공을 많이 들인 개정 신간 3편이 눈길을 끈다. 각주를 새롭게 달고, 소설가가 직접 내용을 손질하고, 훼손됐던 원작 원고를 유물을 발굴하듯 복원하기도 했다. 독자들이 작품의 진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길 바라는 작가와 편집자의 땀이 밴 책들이다.
민음사가 이달 출간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탈리가 기행'은 주석만 300개 가까이 달린 '주석판'이다. 작가이자 편집자인 이수은이 쓴 주석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800~900매에 달한다. 어지간한 단행본 한 권 분량이다. 한국 괴테 학회를 창설했던 고 박찬기 고려대 교수가 주축이 돼 최초의 한국어 완역본을 출간한 지 19년 만에 친절한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이탈리아 기행'은 괴테가 1786년부터 1788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이탈리아 30여 개 도시를 여행한 기록이다. 250년 전 이야기다 보니 국내 일반 독자가 낯선 옛 지명들과 문화, 400명이 넘는 실존 인물 등을 주석 없이 100% 소화하기란 어렵다.
이번 주석판은 해설을 통해 "괴테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동하는 인간으로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덕분에 곳곳에서 '파우스트' 등 괴테 명작들의 시원(始原)과 마주치게 된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으로 전 유럽에 이름을 알리고, 공직 생활로 부와 사회적 명예를 획득했으나 작가로서는 슬럼프에 빠졌던 시기. 홀연히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괴테의 예술과 사상이 난숙해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소설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다듬은 개정판도 나왔다. 2021년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던 한국 SF소설 대표 작가인 김보영(48)이 10년 만에 '7인의 집행관'을 폴라북스(현대문학)를 통해 다시 냈다. 제1회 SF어워드 장편부문 대상 수상작으로, 출간 당시에도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죄로 여섯 번의 사형 판결을 받고 여섯 개의 세계에서 여섯 명의 집행관에게 사형당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사랑받은 작품을 수정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김 작가는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추리소설 독자는 추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속고 싶어 한다는 것을 모르고 단서를 열심히 숨겨야 하는 줄 알았다”며 출간 당시의 부족함을 돌아봤다. 이야기 속 진실의 향방을 독자들이 보다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혼란을 주는 부분은 들어내고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는 대목을 추가했다. 예를 들어 제5집행에서 주인공이 왕비에게 범인에 대해 의도적으로 거짓 진술하는 원작의 대목을, 진실을 말하지만 부실한 설명 때문에 결국 왕비가 믿지 못하는 설정으로 수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문학동네는 '고우영 열국지'의 무삭제판(전 7권)을 출간했다. 이 만화는 고 고우영 화백(1939~2005) 특유의 재치와 해학, 에로티시즘으로 중국 주 왕조 말기부터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시황의 천하통일에 이르기까지를 그려낸 대하 역사물이다. 1981년 7월부터 1983년 12월까지 일간스포츠에 총 684회 걸쳐 인기리에 연재됐다. 하지만 1981년 선정적·폭력적이라며 검열로 원작이 크게 훼손된 채 첫 출판본이 나왔다. 이후 개정판에도 완전한 복원에 이르지 못했다. 출판사 측은 "약 1년에 걸쳐 복원 작업을 해서 무엇보다 그림 화질을 크게 개선했고, 빠졌던 장면들을 대거 보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 화백의 차남인 고성언 ㈜고우영 이사가 원고 상태가 안 좋거나 원고 자체에 오류가 있는 일부 장면을 가필하는 등 직접 복원에 참여했다. 화살을 얼굴에 잔뜩 맞은 왕의 얼굴을 보여주는 컷을 되살리고, 칼로 싸우는 역동적인 전투 장면을 제대로 그려 부자가 합심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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