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청사 코앞에서 불법 거래?…논란 부른 '도면거래' 아시나요

김동욱 2023. 8. 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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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역 인근 바이오지구단지 점포주택촌
집 짓기 전 건물 계약 맺는 도면거래 성행
건축주 세금 회피 통로?…"불법은 아냐"
19일 찾은 청주시 흥덕구 오승읍 봉산리. 길가에 4층짜리 점포주택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김동욱 기자

충북 청주시 오송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바이오폴리스 지구가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일대가 농촌 마을이던 이곳은 정부세종청사가 인근인 데다 오송생명과학단지를 비롯해 산업단지에 기업들이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눈부시게 변모했다. 총 328만㎡의 지구 규모 가운데 24%(80만㎡)가 주거시설이다. 길 하나를 두고 위쪽은 아파트 단지가, 아래쪽은 상가(1층)와 원룸(2~4층)이 결합된 4층짜리 점포주택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포주택을 둘러싸고 불법 논란이 불거졌다. 일대 부동산을 중심으로 건축주들이 생소한 거래 방식을 동원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인데, 신종 절세 방법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19일 이곳을 찾아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20%가 도면거래

바이오폴리스 지구 개발은 시행을 맡은 충북개발공사가 일대 토지를 수용하고 점포주택을 지을 수 있는 필지 590여 개를 조성해 4년 전 토지 분양을 마쳤다. 지금은 수직으로 난 1㎞ 길을 따라 4층짜리 신축 점포주택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 주요 직장이나 대학가에 조성된 원룸촌 규모를 훨씬 능가한다.

최근 불법 논란이 제기된 것은 지난해부터 점포주택이 속속 완공되며 토지주와 건물 매수인 간 거래방식이 드러나면서다. 바로 '도면거래'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상당수 건축주(투자자)들이 점포주택 용지 분양이 시작되자 원주민들에게 3,000만~4,000만 원 웃돈을 붙여 집중 매입했다. 통상 건물매매는 땅을 매입한 건축주가 건물을 지은 뒤 이를 매입자에게 매각하는데, 이들의 매매 방식은 달랐다. 주택 설계도면을 먼저 그린 뒤 이를 바탕으로 집을 짓는다는 조건을 달아 건물을 살 매입자를 구했다. 건물 없이 도면만으로 건물 매매계약을 맺었다는 얘기다.

이 일대엔 이런 방식으로 거래된 점포주택이 20%가 넘는 걸로 지역 부동산은 추산한다. 본보가 인근 중개업소가 사례로 알려준 주택의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비교했더니 이런 거래 방식이 확인됐다. 예컨대 A주택이 들어선 토지는 2022년 3월 김씨에서 이씨로 소유주가 바뀌었다. 건축물대장엔 이씨가 건축주로 나오지만, 건물 착공일은 이씨가 토지를 매입하기 전인 2020년 8월이다. 이는 김씨가 땅을 사 이씨와 도면거래로 건물 매매계약을 맺고, 2022년 3월 토지 소유권이 바뀌면서 이씨 이름이 뒤늦게 등장했다는 게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세금 때문에 시작된 도면거래

그래픽=신동준 기자

건축주들이 도면거래를 하는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땅을 매입한 뒤 건물을 지어 건물까지 팔 경우, 땅과 건물 취득에 따른 취등록세를 두 번이나 내야 한다. 또 건물 완공 당시 집값이 오르면 양도세까지 부담해야 한다. 1년 내 되팔면 양도세가 중과돼 차익의 절반 이상을 토해내야 한다.

하지만 도면거래엔 이런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땅주인인 매도인이 도면대로 건물을 짓되 준공허가는 매수인 앞으로 하기 때문에 매도인은 건물 취등록세나 양도세를 내지 않는다. 매수인의 경우 매도인이 절감한 세금만큼 건물 가격을 깎을 수 있고 무엇보다 입지 좋은 땅을 선점해 건물을 올린 뒤 임대사업으로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양측 모두 윈윈이라는 얘기다. 이런 도면거래는 실제 지난 정부 때 취득세 중과 조치가 시행되면서 성행했다고 한다.

인근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세금을 얼마큼 깎느냐가 관건이라 땅을 팔 때도 다운계약서를 쓴다"며 "도면거래까지 거치면 건축주는 취득세와 양도세 등을 합쳐 수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도면거래도 당자사 간 계약, 불법 아니다"

탈세 의혹이 제기되는 도면거래지만, 결론적으로 불법은 아니다. 본보가 국토교통부와 세무사 등에 문의한 결과 불법 요소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상 반드시 건물을 완공한 뒤 팔아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당사자 간 계약 문제라 해당 내용만 봐선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 팀장도 "이 경우 새로운 건축주가 취등록세를 모두 내기 때문에 탈세란 말이 성립이 안 된다"며 "아파트 분양권도 매입했다고 해서 취등록세를 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이 같은 도면거래도 주춤하는 추세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전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요즘은 전세사기 탓에 빌라는 외면하는 분위기라 전세를 들이기 쉽지 않고 취득세 중과도 사라져 굳이 이 방식으로 거래할 유인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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