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독 넘어… 이토록 찬란한 황혼

이태훈 기자 2023. 8.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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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숙 연기 인생 60년 기념 연극 ‘토카타’
내달 10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무대에
배우 손숙은 “이 작품을 하면서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아름댭고 행복했던 모든 것들을 먼저 떠나보낸 뒤 혼자 남았지만, 꿋꿋이 또 찬란하게 황혼의 삶을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했다. /신시컴퍼니

“나무들도 이제는 제법 잎 그늘이 자욱하고 그 어린 잎들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려요. 나는 내 입을 닫아버리지 않을 거예요. 걷고 또 걸을 거예요. 언젠가 그 실크 가운을 입고 당신한테 올게요. 따뜻한 물로 이 메마른 고독을 씻고 부드러운 절망을 걸쳐 입고 당신 품에 안길 거예요. 당신한테 노래를 불러줄게요….”

무대 위로 환한 빛이 가득 차올랐다가 어두워졌다. 다시 불이 켜지자, 관객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19일 개막한 배우 손숙 연기 인생 60년 기념 연극 ‘토카타’의 90분은 한 편의 시(詩)와 같다. 한 배우의 연기 인생을 기념하는 창작극이 무대에 오르는 것도 희귀한데, 연출 손진책, 극작 배삼식, 음악 최우정, 무대 이태섭, 조명 김창기 등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창작자들이 힘을 모았다.

배우 손숙 연기 인생 60년 기념 연극 '토카타'. /연합뉴스

배우 김수현과 안무가 정영두가 손숙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각각 지나온 생을 회고하는 늙은 여자와 젊은 남자, 그리고 악장(樂章)과 악장 사이를 연결하는 무용수. 생의 막바지, 기르던 개까지 떠나보낸 나이 든 여자는 황금빛 풀밭을 산책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살갗을 맞대던 옛 기억을 떠올린다. 그 옆 앙상한 나무 아래 의자에 앉은 남자는 병상 위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의식의 아득한 바닥까지 미끄러지며 사랑하는 여인을 만지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세 사람의 대사와 춤은 서로 주고받으며 삼중주처럼 이어진다.

시를 닮은 배삼식의 언어는 힘이 세다. 뚜렷한 서사 없이 독백과 몸짓뿐인데도, 배우 손숙과 김수현은 그저 말하는 것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배우가 빚어내는 무대 위 공기가 관객의 몸과 마음을 따뜻이 감싸며 어루만지는 듯하다.

배우 손숙 연기 인생 60년 기념 연극 '토카타'. /연합뉴스

‘접촉하다’ ‘손대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토카레(toccare)’에서 유래된 작품 제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가리키는 말. 연극은 코로나로 서로를 만질 수 없었던, 관계의 단절 속에 보낸 2년여의 시간에 대한 회고이기도 한 셈이다. 손진책 연출은 “단순히 ‘슬프다’ ‘고독하다’를 넘어 ‘삶이라는 것이 이토록 찬란하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찬가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객석에 축하 손님이 많았던 지난 20일, 손숙과 절친한 배우 박정자가 공연 뒤 커튼콜 무대에 올라왔다. “손숙이 올해 팔십이 되었습니다. 80년 중 60년을 연극을 하면서 무대에서 살았습니다. 오늘 공연 토카타는 손숙의 연극 배우로서의 외로움, 슬픔, 그리고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이런 소중한 배우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공연은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배우 손숙 연기 인생 60년 기념 연극 '토카타' 포스터.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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