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독 넘어… 이토록 찬란한 황혼
내달 10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무대에
“나무들도 이제는 제법 잎 그늘이 자욱하고 그 어린 잎들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려요. 나는 내 입을 닫아버리지 않을 거예요. 걷고 또 걸을 거예요. 언젠가 그 실크 가운을 입고 당신한테 올게요. 따뜻한 물로 이 메마른 고독을 씻고 부드러운 절망을 걸쳐 입고 당신 품에 안길 거예요. 당신한테 노래를 불러줄게요….”
무대 위로 환한 빛이 가득 차올랐다가 어두워졌다. 다시 불이 켜지자, 관객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19일 개막한 배우 손숙 연기 인생 60년 기념 연극 ‘토카타’의 90분은 한 편의 시(詩)와 같다. 한 배우의 연기 인생을 기념하는 창작극이 무대에 오르는 것도 희귀한데, 연출 손진책, 극작 배삼식, 음악 최우정, 무대 이태섭, 조명 김창기 등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창작자들이 힘을 모았다.
배우 김수현과 안무가 정영두가 손숙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각각 지나온 생을 회고하는 늙은 여자와 젊은 남자, 그리고 악장(樂章)과 악장 사이를 연결하는 무용수. 생의 막바지, 기르던 개까지 떠나보낸 나이 든 여자는 황금빛 풀밭을 산책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살갗을 맞대던 옛 기억을 떠올린다. 그 옆 앙상한 나무 아래 의자에 앉은 남자는 병상 위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의식의 아득한 바닥까지 미끄러지며 사랑하는 여인을 만지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세 사람의 대사와 춤은 서로 주고받으며 삼중주처럼 이어진다.
시를 닮은 배삼식의 언어는 힘이 세다. 뚜렷한 서사 없이 독백과 몸짓뿐인데도, 배우 손숙과 김수현은 그저 말하는 것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배우가 빚어내는 무대 위 공기가 관객의 몸과 마음을 따뜻이 감싸며 어루만지는 듯하다.
‘접촉하다’ ‘손대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토카레(toccare)’에서 유래된 작품 제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가리키는 말. 연극은 코로나로 서로를 만질 수 없었던, 관계의 단절 속에 보낸 2년여의 시간에 대한 회고이기도 한 셈이다. 손진책 연출은 “단순히 ‘슬프다’ ‘고독하다’를 넘어 ‘삶이라는 것이 이토록 찬란하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찬가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객석에 축하 손님이 많았던 지난 20일, 손숙과 절친한 배우 박정자가 공연 뒤 커튼콜 무대에 올라왔다. “손숙이 올해 팔십이 되었습니다. 80년 중 60년을 연극을 하면서 무대에서 살았습니다. 오늘 공연 토카타는 손숙의 연극 배우로서의 외로움, 슬픔, 그리고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이런 소중한 배우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공연은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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