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8] 뿌리지 않았는데 거두기를 바라는 사람들
“당신은 11년 동안 소식 한 장 없었어요. 양육비도 보내지 않고 자기 아들을 똥 싸듯 내갈겨버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법이지요.” 로자 아줌마는 열이 난다는 듯 부채질을 했다. “저는 운명의 희생자입니다. 아이샤를 되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기 전에 아들을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저를 위해 신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아버지인 척하면서 요구사항까지 들고나오는 그가 나는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중에서
아들의 사망 보상금을 딸과 나누지 않겠다는 팔순의 노파가 화제다. 남편이 죽자 어린 자식들을 시댁에 맡기고 재가한 뒤 54년간 연락 없이 살았어도 상속권은 친모에게 있다. 바다에서 시신도 찾지 못한 아들, 엄마 없이 고생했을 딸을 생각하면 마음 아플 것 같은데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돌아서면 남이다. 재혼해서 얻은 자식이 있는 걸까? 그들을 향한 또 다른 모정일까?
상속 권리만 주장하는 냉정한 모성과 달리 자식 사랑과 양육 의무에 눈이 멀어 부정을 저지르는 부모도 있다. 자녀에게 A+학점을 주는 교수 아빠, 입시 비리로 수감 중인 교수 엄마, 조력한 혐의로 재판 중인 전 법무부 장관 아빠, 자녀를 특혜 채용하고 부정 승진시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임원들.
위탁 가정에서 자란 모모에게 아버지가 찾아온다. 그는 모모의 엄마를 죽였지만 너무나 사랑해서 질투 때문에 한 짓이었다고, 정신병원에서 치료감호를 받아 어쩔 수 없었을 뿐, 아들을 버린 건 아니라고 변명한다. 그가 아들을 되찾고 싶어 한 이유는 이해나 용서를 바라서만은 아니었다. 병들어 죽어도 남길 핏줄이 있다는 위안, 죽은 다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자식이 있다는 확신이었을 것이다.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욕심이 권리가 되고, 남들이 애써 뿌리고 가꾼 것을 훔치는 일이 권력이 되는 사건들을 볼 때마다 제자들이 열어준 칠순 축하 모임에서 했던 은사의 말이 떠오른다. “혼자 살면 외롭지 않으냐고 사람들이 물어요. 당연히 외롭지요. 하지만 나는 출산의 고통도 겪지 않았고 양육의 힘겨움이나 자식을 교육해야 하는 그 어떤 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뿌리지 않았는데 거두기를 바랄 수는 없지요. 그래도 이렇게 나를 아껴주는 제자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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