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에 빠진 英 클래식 작곡가… “음악의 소통이 내 화두”
20세기 초 유명 러 작곡가의 손자
지난 20일 저녁 서울대 음대 예술관.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서울대) 교수가 손에 쥔 술대로 현(絃)을 퉁기면서 다채로운 소리를 빚고 있었다. 거기에 박종화 서울대 교수의 피아노 연주와 전자 음악까지 어우러지면서 시대와 장르, 국적 불문의 묘한 3중주를 빚어내고 있었다. 헤드폰을 쓴 채 컴퓨터와 키보드 장비 앞에서 전자음악을 연주하는 영국 출신의 작곡가이자 연주자가 가브리엘 프로코피예프(48)였다. 가브리엘이 거문고와 협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술대를 통해서 강렬한 에너지와 격렬한 리듬, 동양적 깊이를 모두 표현한다는 것이 놀랍다”고 감탄했다.
그는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과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피터와 늑대’ 같은 곡으로 유명한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의 친손자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역시 클래식 작곡가이면서 동시에 전자음악 연주자, 음반사 대표, 클럽 사장으로도 활동하는 만능 음악인이다. 가브리엘은 “10대 청소년 때부터 다양한 장르에 관심이 많아서 트럼펫과 호른, 피아노 등을 배웠고 팝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한 적도 있다”면서 “힙합이나 전자 음악, 클럽처럼 젊은 세대와 교감하고 소통 가능한 방식으로 클래식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 내 음악적 화두”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영국의 명문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에서는 힙합 DJ의 턴테이블과 전통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그의 턴테이블 협주곡을 연주했다. 2021년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는 전자음악과 현악 6중주가 어울리는 그의 신작 실내악을 소개했다. 가브리엘은 “과거에도 미뉴에트와 왈츠, 마주르카 같은 민속 춤곡들이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에도 녹아든 것처럼, 지금도 힙합과 테크노, 펑크(funk)의 리듬감을 현대음악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믿음은 할아버지의 작품을 통해서 갖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할아버지의 교향곡이나 발레 음악에서도 격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리듬감이 언제나 강력한 원동력이었다”고 했다.
올해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에 초대받은 가브리엘은 거문고 허윤정 교수와 피아니스트 박종화 교수의 프로젝트 그룹인 ‘띵’과 함께 3중주를 펼친다. 박종화 교수는 “음악에선 모든 것(everything)이 가능하고 불가능은 없다(nothing)는 의미에서 ‘띵’이라는 이름을 창안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전반에는 현대음악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형제들’을 거문고와 피아노의 이중주로 편곡해서 연주하고, 후반에는 가브리엘의 신작들을 거문고·피아노·전자음악의 3중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의 무대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24일 대전예술의전당, 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이어진다. 박 교수는 “단발성 연주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도 다양한 형식의 연주와 녹음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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