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아웃룩] 타인 약 먹이고, 엉뚱한 정맥 묶고… 작년 환자 안전사고 1만4800건
투약 오류, 낙상 사고 많아… 처치 시간대인 오전 10~12시 몰려
우수 임상 기술과 환자 안전은 선진 의료 두 축… 안전에도 지원을
#안구 표면 각막에 염증이 심하게 생긴 각막궤양으로 입원한 80대 환자 김모씨. 그는 새벽 2시경 병실 침대에서 자다가 깨서 화장실을 가려고 침대 난간을 넘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환자 옆을 지키던 보호자는 잠이 든 상태였다. 김씨는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고 실신했다. 이후 촬영한 뇌CT상 두개골과 뇌경막 사이에 출혈이 생겼다. 머리에 외상성 손상이 왔을 때 발생하는 출혈이다. 김씨는 두개골 안쪽 혈액 덩어리를 제거하는 응급 수술을 받았다.
#오른쪽 종아리 정맥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병원을 찾은 이모씨. 그는 종아리 정맥 피가 심장 쪽으로 올라가는 위쪽의 사타구니 정맥에서 판막 부전으로 혈류가 아래 종아리 쪽으로 역류되어 생기는 하지 정맥류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경우 치료는 역류의 진원지인 사타구니 정맥을 묶어 버리는 결찰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씨는 멀쩡한 왼쪽 사타구니 정맥 결찰술을 받았다. 이 시술 위치가 환자가 엎드린 자세로 하는 게 편한 상태이기에 시술 준비 의료진이 환자를 엎드린 상태로 해놓고 소독포를 덮고 시술 부위만 드러나게 해놨다. 그다음에 처치실에 들어온 시술 의사가 환자가 엎드려서 좌우가 바뀐 걸 모르고 왼쪽 사타구니에 메스를 갖다 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번의 오류가 있었다. 대개 질병 부위를 시술 전에 미리 펜으로 환자 몸에 표기해 놓는데, 이 환자의 경우 정맥이 튀어나온 환자의 오른쪽 종아리에만 표시해 놓았던 것이다. 그 부위는 직접 시술하는 부위가 아니었기에 소독포에 감춰져 있었다. 또한 시술 직전에 의료진이 모여서 정확한 시술 부위를 확인하는 절차, 이른바 타임아웃(time out) 제도를 시행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병 고치러 병원에 왔다가 병을 얻은 환자 안전사고가 상당수 발생한다. 지난해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환자 안전사고는 1만4820건이다(의료기관평가 인증원, 환자안전통계연보 2022년). 건수는 최근 해마다 늘면서 5년 전인 2018년 9250건에 비해 60% 늘었다.
환자 안전사고 유형을 보면, 약물 투여 오류가 43.3%로 가장 많았다. 약물 용량이 처방전과 달리 잘못 투여 됐거나, 다른 사람의 처방 약이 엉뚱한 환자에게 들어가는 경우 등이다. 약물 투여 경로 오류도 종종 발생한다. 후두염으로 호흡곤란이 발생한 환자에게 구강 내에 분무하는 형태로 응급 처방된 에피네프린이라는 약물이 엉뚱하게 정맥 주사로 투여되는 식이다. 이런 경우에는 흡입용, 근육 주사용, 정맥 주사용 등 약물 투여 경로별로 투약 카드 색깔을 파랑, 빨강 등으로 달리해 놓기를 권장한다. 그러면 응급 상황에서도 의료진이 투약 경로를 헷갈리지 않고 약물을 제대로 투여할 수 있다.
병원 내 낙상 사고는 전체 안전사고의 38.8%로 둘째로 많았다. 그 밖에 처치 관련 상해(3.3%), 검사 오류(3.3%) 등이 있었다. 안전사고 위해 정도는 중증, 사망, 중등도 이상이 보고된 건수가 전체의 12.1%였다. 안전사고 발생 장소는 입원실(41%)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외래(29%)였다. 낙상은 주로 화장실, 복도에서 발생했다. 안전사고 발생 시간은 진료와 처치로 붐비는 오전 10~12시(19.5%)가 가장 많았다.
환자 안전사고는 2015년 제정된 ‘환자 안전법’에 따라 병원이 자율적으로 환자안전보고 학습시스템(KOPS)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집계된다. 병원들이 평판 나빠지는 것을 우려해 안전사고를 감추려 하고, 처벌이 두려워 숨기려는 경향이 있기에 자율 보고를 하되, 그것을 갖고 처벌하거나 징계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각종 환자 안전사고를 파악하고 예방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후 환자 안전사고 보고 건수는 해마다 늘었다. 이는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적극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환자 고령화로 투약 오류 피해, 치료 과정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섬망, 낙상 사고 발생 건수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현재 환자 안전사고의 절반가량(42.6%)이 70대 이상에서 발생하고 있다.
실제 병원에서는 고령 환자가 섬망 증세로 소변줄이나 수액줄을 손으로 뽑아서 출혈을 일으키는 사고가 상당수 발생한다. 고령 환자는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어지럼증이 많고, 인지 기능이 떨어진 데다, 여러 개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낙상 발생 요인이 많다. 대장암 치료를 위해 입원 중인 한 80대 환자가 인지 기능 저하로 낙상 예방을 위한 신체보호대를 풀고 병상에서 뛰어내리다 낙상해 사망한 사례가 보고됐다. 낙상 관련 사고의 78%가 60세 이상 고령 환자에게 발생한다. 노인에게 발생하는 낙상은 뇌출혈, 골절, 사망 등 환자에게 심각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이에 병원은 고령 환자를 대상으로 낙상 위험 평가를 해서 관리하고, 섬망이나 욕창 조기 발견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수술, 시술, 수혈 등에도 항공기 안전 수준의 철저한 체크리스트 제도가 이뤄져야 한다.
환자 안전을 연구하는 한국의료질향상학회 이왕준(명지병원 이사장, 외과 전문의) 회장은 “안전사고 자율 보고 체계가 작동되면서 보고 건수가 늘었지만 원인 파악이 이뤄지고 예방책이 개발되면서 치명적인 오류와 실수는 줄고 있다”며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 기술에는 의료 수가가 있지만, 의료 행위가 안전하게 이뤄지도록 하고 사고를 막는 행위에 대해서는 수가가 아예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우수한 임상 기술과 환자 안전은 선진 의료 환경의 두 축”이라며 “환자 안전과 의료 질 향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이뤄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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