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3년만에 R&D예산 3.4조 삭감

최지원 기자 2023. 8. 23. 03: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년 국가 R&D 예산 21조5000억
“나눠먹기식 카르텔 깨고 구조조정”… ‘소부장’ 깎고 AI-반도체-6G 늘려
현장선 “기초과학 연구 위축” 우려… 출연연 “신규과제 기획 꿈도 못꿔”
정부가 33년 만에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나섰다. ‘R&D 카르텔’을 걷어내고 국가전략사업에 집중 투자하기 위해 연구 예산을 재조정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연구 현장에서는 내년 신규 사업의 상당 부분에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첨단바이오 예산 확대, 소부장은 삭감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4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논의된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내년 주요 R&D 예산은 21조5000억 원으로 올해(24조9400억 원) 대비 약 14%가 줄어든다.

정부의 R&D 예산은 과기정통부가 확정하는 주요 R&D 예산과 기획재정부가 구성하는 대학지원금 등의 일반 R&D로 구성된다. 기재부가 짜는 일반 R&D 예산이 올해와 동일한 수준(6조1300억 원)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전체 R&D 예산이 전년과 비교해 10% 이상 줄어든다.

현재의 안이 확정되면 1991년 이후 처음으로 정부 R&D 예산이 삭감 편성된다.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나눠 먹기, 갈라 먹기식 R&D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한 뒤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사업비를 삭감 조정했다. 권력이 있는 연구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R&D 카르텔의 영향으로 R&D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지적이었다.

과기정통부는 현재 진행 중인 R&D 사업을 전면 검토해 나눠 주기식 사업, 성과 부진 사업 등을 구조조정해 108개 사업을 통폐합했다고 밝혔다. 줄어든 예산은 총 3조4400억 원이다. 특히 강도 높게 구조조정에 나선 사업은 ‘기업 R&D’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감염병’ 등 3개 사업이다.

가장 큰 폭으로 예산이 줄어든 기업 R&D 지원 사업의 경우 1조5700억 원에서 1조1900억 원으로 3800억 원이 줄었다. 과기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유사한 과제로 사업비를 반복적으로 받아가는 기업이나 R&D 과제를 기업 대신 수행해주는 브로커가 전국에 1만 곳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예산 감축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국가전략기술에 필요한 R&D 예산은 늘렸다. 첨단바이오, 인공지능, 사이버보안, 양자, 반도체, 이차전지, 우주 등 7개 핵심 분야에 총 5조 원의 예산을 투자하기로 했다. 올해 예산인 4조7000억 원보다 6.3% 증가한 수치다.

이 외에도 국제협력과 신진 연구자 연구 지원(2조8000억 원), 국가 안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미래전략기술(2조5000억 원),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주력산업(3조1000억 원), 6G, 초거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인프라 고도화(1조6000억 원)에 추가 예산을 투입한다.

●연구 현장은 각종 혼선 우려

출연연이나 대학 등 연구 현장에서는 “R&D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라면서도 “연구에 각종 혼선이 생길 것”이라며 우려했다. 정부는 출연연의 주요 R&D 예산을 2조4000억 원에서 2조1000억 원으로 10.8%가량 감축했다.

출연연 관계자는 “출연금이 줄어들어 신규 과제 기획은 꿈도 못 꾸고, 대형 연구 장비 운용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줄어든 주요 R&D 사업비는 크게 연구비와 장비 운용비로 나뉘는데 대형 연구 장비는 출연금이 아니면 운용이 어렵다”고 했다.

연구원들이 정부와 기업의 과제 수주에 더 내몰리고, 이로 인한 중장기적인 기초과학 연구가 위축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R&D 사업에 상대평가가 전면 도입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과학계는 부담스러워 한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R&D 사업평가도 강화해 하위 20% 사업은 구조조정할 계획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그간 온정적으로 이뤄졌던 R&D 평가를 강화해 새는 예산을 막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출연연 전체에 대한 별도의 통합재원 1000억 원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국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출연연 연구협력단을 경쟁을 통해 선별한 뒤 통합 재원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