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김명수 대법원을 만든 건 8할이 尹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2023. 8. 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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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에서의 법원 요직 물갈이에는
윤석열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결정적 영향
엘리트 판사들이 무더기로 적폐로 몰린 사이
우리법 국제인권법 연구회가 치고 올라왔다
송평인 논설위원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른바 ‘사법농단’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의 입장은 ‘검찰이 수사한다면 협조한다’는 것이었을 뿐 수사 의뢰는 아니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도 이유가 있었다. 사법농단 사태가 법원 자체 조사로 끝나면 그 결과를 국민이 믿어주겠느냐는 것이다. 외부, 즉 검찰의 수사를 통해 조사가 이뤄지고 법원에 회부돼 유죄가 나든 무죄가 나든 해야 사태가 종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망각하고 있지만 사법농단 수사는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맡았다. 서울중앙지검은 특수 1∼4부를 총동원해 수사한 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전·현직 고위 법관 14명을 기소하고 66명은 비위가 있다고 대법원에 통보했다.

법원에는 동료·선후배의 평가에 의해 대법관감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대법원 선임재판연구원과 수석재판연구원을 거친다. 사법연수원 17기의 한승, 18기의 홍승면, 19기의 유해용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런 엘리트들이 사법농단에 연루됐다고 배제되고 아무도 대법관감으로 여기지 않는 이들이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 갔다.

김 대법원장은 고등 부장판사 승진제의 폐지, 법원장 추천제의 확대, 독립된 사무분담위원회 구성 등 많은 개혁 조치를 이뤄냈다. 다만 일련의 개혁 조치가 엘리트 판사들이 적폐로 몰리는 과정에서 진행돼 법관대표회의를 주도하는 세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결국 김 대법원장조차도 놀란, 예상을 뛰어넘는 수사 결과로 법원을 물갈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윤석열과 한동훈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주도한 사법농단 기소의 결과는 초라했다. 기소된 14명 중 6명이 무죄가 확정됐고 2명은 항소심까지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민걸 이규진에 대해서만 항소심까지 유죄가 선고됐다.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 임 전 차장 등 최고위급에 대해서는 1심 선고도 내려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유죄가 예상되는 건 임 전 차장 정도다. 재판 결과로 보면 임 전 차장 등 몇 명만 기소하고 끝냈어야 할 사건을 침소봉대한 것이다. 재판에서의 무죄율을 검사 평가에 반영한다면 두 사람은 좌천감이다.

사법농단 공소장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한 편의 소설’이라고 했다. 소설이란 말은 생짜로 거짓을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억지로 엮었다는 뜻일 것이다. 가령 어느 판사가 신문에 나올 정도로 문제를 일으킨 파문을 모아 놓은 자료까지 직권을 남용한 불법 정보 수집으로 몰아갔다. 그런 과격한 기소의 결과가 법원 인사 평가와 재임용 심사의 무력화이고, 노골적인 정치적 편향 재판을 하는데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판사들의 등장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시작하면서 ‘우리 법원도 선진국 법원처럼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뭘 생각하며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김 대법원장이 취한 개혁 조치는 대체로 선진국 법원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 법원은 법 적용과 외교 관계가 충돌할 경우 외교 관계를 우선하는 확고한 전통을 갖고 있다. 최소한 외교 관계에 파국을 초래할 것이 분명해 판결을 연기시키려 한 대법원장을 구속하는, 그런 막 나가는 검찰은 선진국에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이 당한 수치가 엘리트 판사들의 귀족적 행태에 경종을 울린 것은 분명하다. 그는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스스로 뛰기보다는, 대법관이 되고 싶지만 능력이 모자라 모든 것을 맡아 해주는 것으로 대신한 ‘마타하리’ 임 전 차장에게 맡겨 놓았다가 법원 관료화를 심화시켰다.

그럼에도 그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초래할 결과를 예상하고 뭔가 해야 한다고 여긴 점은 국가를 책임진 3부 요인다운 의식이다. 김 대법원장과 검찰에 있을 때의 윤 대통령에게는 그런 의식 자체가 없었다. 그 결과 우리가 내린 판결을 우리 스스로가 부인하는 국가적 수치를 당했다. 대법원장이나 검찰총장이라면 조직의 논리에 따라 일했으니 할 일 다했다고 손 털 게 아니라 자기 조직이 존재하는 목적인 국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 수장이 돼서야 비로소 뭣이 더 중한지 깨닫는 어리석음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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