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표범놈, 죽어봐라!” 조폭 원숭이의 ‘집단 다X리’

정지섭 기자 2023. 8. 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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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에게 집단으로 달려들어 혼쭐내는 장면 포착
사바나 생활에 적응하며 영양과 홍학까지 잡아먹는 ‘맹수’
개코원숭이와 침팬지는 영장류계의 양대 ‘조폭 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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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성격은 때로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입니다. 똑같은 뜻을 가진 단어인데도 공식적인 자리에 쓰는 말과, 비공식적으로 쓰는 말로 나뉘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빛의 말’과 ‘어둠의 말’로 이원화됐다고나 할까요? 그 어둠의 말 중 차마 입에 담기도 뭐한, 그렇지만 실제로 쓰는 빈도는 더 높은 말들도 있죠. 비속어 또는 은어라 불리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어둠의 말이 훨씬 또렷하게 뜻과 느낌을 명확하게 전달해주곤 합니다.

무리 일원을 공격하려는 표범에게 개코원숭이 수십 마리가 달려들고 있다. /Latest Sightings Facebook

‘다X리’라는 말만 봐도 그래요. 여럿이 한 명을 흠씬 두들겨팬다는 이 말은 공식적으로는 ‘집단 폭행’, ‘뭇매’ 정도의 말로 대체되는데, ‘다X리’라는 말에서 주는 음험하고 비열하며 거친 조폭적 감성까지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하죠. 오늘의 주인공 개코원숭이들의 모습을 봐도 ‘다X리’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는 없지 싶습니다. 우선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의 온라인 매체인 레이티스트 사이팅스(Latest Sightings)가 최근 페이스북에 공개한 동영상부터 보실까요?

사바나에서 표범과 개코원숭이는 대표적인 앙숙입니다. 은둔의 외톨이 사냥꾼 표범과 원숭이계의 맹수인 개코원숭이가 1대1로 맞서는 장면이 종종 발생합니다. 아무리 개코원숭이가 영장류 최대의 전투력을 발산한다고 하더라도, 하이에나와 사바나 넘버2를 다투는 관록의 맹수 표범을 배겨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코원숭이에게는 표범에게 없는 막강 파워가 있습니다. 조직력이죠. 이 표범은 오늘 일진이 사나워도 단단히 사나웠습니다. 풀숲에서 단숨에 뛰쳐나오는 특유의 매복 공격으로 개코원숭이를 덮칠때만 해도 별미 원숭이고기로 몇날 며칠을 즐기겠거니 싶었어요. 하지만, 거의 쉰 마리에 가까운 무리가 근처에 있다는 상황까지 접수하지는 못했습니다. 개코원숭이 떼 한가운데로 몰리자마자 무서운 공격이 시작됩니다. 수컷, 암컷, 어린놈 할 것 없이 표범을 사납게 몰아붙입니다. 이런게 바로 ‘다X리’입니다. 분노한 개코원숭이가 입을 쩍 벌리고 스위스 나이프 같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포착됩니다. 표범의 몸집이 날랬기에 망정이지, 치명상이라도 입었다가는 그 자리에서 살가죽이 찢어지고 근육이 파열되면서 아름다운 얼룩무늬 털가죽을 남기고 혼이 빠져나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혼비백산한 표범은 간신히 현장을 빠져나가 풀숲으로 사라집니다. 같은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동영상입니다.

그리고는 아마 나무위로 올라가서 씨근덕거리면서 오늘의 실패를 복기했을 거예요. 야생에 승패가 있겠냐만, 이 상황만큼은 조폭을 연상시키는 집단 폭행으로 표범을 녹아웃시킨 개코원숭이의 승리의 순간입니다. ‘영장류의 조폭’이라는 타이틀을 씌워도 무방할 이 족속 개코원숭이는 어떤 놈들일까요?

서울대공원의 7살 수컷 맨드릴 '라비'가 우람한 덩치를 뽐내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서울대공원

우리가 ‘원숭이’라고 통틀어 부르는 영장류는 분류 체계가 상당히 복잡해요. 우선 진화된 정도에 따라 두 무리로 나뉩니다. 원시적인 원숭이라는 뜻의 원원류(原猿類) 에는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를 비롯해 ‘저게 원숭이였어’ 싶을정도로 우리가 알고 있는 원숭이의 모습과 거리가 있는 종류들이 많아요. 아이아이, 안경원숭이, 로리스원숭이 등이 속하죠. 이에 비해 한눈에 봐도 ‘원숭이네’라는 느낌이 팍 오는 놈들이 진짜 원숭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진원류(眞猿類) 입니다. 이 족속은 다시 생김새를 기준으로 두 부류로 구분되는데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살고 있는 녀석들은 주로 콧날이 오똑하고 얼굴 윤곽이 뚜렷해요. 그래서 코가 좁은 원숭이라는 의미로 ‘협비원(狹鼻猿)’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중남미에 사는 진원류들은 뭔가로 짓누른 듯 얼굴이 납작하고 코도 뭉툭하고 얼굴 윤곽도 넓습니다. 그래서 협비원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넓을 광자를 써서 ‘광비원(廣鼻猿)’이라고 부릅니다. 중세 유럽 탐험가 입장에서 아메리카 대륙은 ‘신대륙’이기 때문에 협비원과 광비원을 각각 구세계원숭이, 신세계원숭이라고 일컫기도 하지요.

개코원숭이 역시 대다수의 영장류들과 마찬가지로 붉게 부풀어오른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 /Oakland Zoo X

원숭이 하면 떠올려지는 모습은 대개 협비원입니다. 온천에 몸을 담근 일본원숭이, 인디아나 존스에서 뇌요리 재료로 등장하는 인도 원숭이, 유인원인 침팬지와 고릴라, 심지어 사람까지도 모두 협비원이거든요. 개코원숭이 역시 협비원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영장류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맹수’라고 부를만한 족속입니다. 네 발로 땅을 내딛으며 사바나를 질주하는 모습이 주는 카리스마는 사자나 표범, 치타의 그것에 못지 않습니다. 대략 10여 종이 알려져있어요. 라이온킹의 주술사 원숭이 라피키로 유명한 맨드릴,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살아가는 겔라다 개코원숭이 등이 모두 이 무리에 속하는데, 가장 유명한 놈들이 위의 동영상에도 등장하는 사바나 개코원숭이(노랑개코원숭이)입니다.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는 개코원숭이를 사바나의 사냥꾼으로 등극시켜준 최고의 무기 중 하나이다. /Nat Geo TV X

동영상에서 보여지듯 철저한 무리 생활을 합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떼거지로 모여있는게 아닙니다. 철저한 수직적 권력 구조예요. 두목 수컷과 부두목, 그리고 휘하의 암컷과 젊은 수컷들, 그리고 새끼들로 구성돼있습니다. 이들이 이동할때는 위계에 따라 위치가 정해져있습니다. 두목을 중심으로 암컷과 새끼들이 대오를 형성하고 다시 그 주변을 다른 수컷들이 둘러싼 모양새입니다. 두목은 권위만큼 책임이 따릅니다. 숙적 표범과 맞닥뜨리게 되면 앞장서서 대적해야 합니다. 왜 내가 두목인지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죠.

임팔라를 막 잡아먹으려는 개코원숭이. 영장류라기보다 늑내나 사자의 모습에 더 가깝다. /Blue Africa Tours

이들이 무서운 까닭은 원숭이이면서 또한 맹수이기 때문입니다. 즐겨먹는 메뉴에는 메뚜기·도마뱀·전갈 등과 함께 새끼영양과 다 자란 홍학도 포함돼있습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임팔라나 톰슨가젤 등 영양새끼들의 가장 무서운 천적이 개코원숭이입니다. 이들의 사냥·습식 방식은 목불인견입니다. 어미와 함께 있던 새끼 영양을 잡아챈 뒤 고통없게끔 숨통을 끊어주는 자비를 베풀 새도 없이, 어미가 보는 앞에서 산채로 찢고 뜯어서 먹기 시작합니다. 이 참상은, 사바나가 전해주는 잔혹하고 거친 일상 중 하나일 뿐입니다. 관련 동영상(Savage Nature Youtube)입니다.

영장류에게 새의 고기는 맛과 영양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식자재일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치킨에 열광하는 것처럼요. 호숫가에서 날아오르려는 홍학을 덮친 뒤 핫윙 살점을 찢듯 쫙쫙 뜯어먹는 모습은 그 자체가 몬스터입니다. 엄청난 스피드와 순발력으로 날아오르는 홍학을 잡아채는 개코원숭이의 사냥 장면(BBC Youtube) 한번 보시죠.

엄격한 위계와 거친 습성, 그리고 잔혹한 약육강식 등 개코원숭이가 보여주는 이미지로 인해 ‘원숭이계의 조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 싶어요. 하지만, “어허~, 무슨 소리. 원숭이계의 조폭은 바로 나라고.”라고 즉각 이의를 제기할지 모를 놈들이 있습니다. 바로 침팬지입니다. 놈들은 육고기를 섭취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사냥을 하는데, 그 주 타깃이 바로 같은 영장류인 콜로부스 원숭이입니다. 서로 괴성을 지르고 위협적인 몸짓으로 콜로부스 원숭이를 공포에 질리게 한 뒤 나무에서 떨어지자 마자 나꿔채서 그 자리에서 여러 조각으로 찢은 뒤 피와 살점과 근육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피의 만찬 모습은 인간들에게도 제법 악명을 떨치죠.

침팬지무리가 협업해서 원숭이를 사로잡고 있다. 침팬지는 주기적으로 원숭이를 사냥해 먹는다. /Kibale Chimpanzee Project

개코원숭이와 침팬지 모두 개별 개체의 피지컬도 엄청나거니와, 엄격한 위계질서와 기율로 다져진 조직적 전투력도 상당합니다. 이들 모두 아프리카에 살고 있지만, 서식지가 서아프리카 정글(침팬지)과 동남아프리카 사바나(개코원숭이)로 나뉘어있다보니 자연에서 만날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만일 이 두 집단이 집단으로 패싸움을 벌인다면 지상 최대의 흥행카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자와 호랑이의 대결 못지 않을 것이고, 마피아와 삼합회의 패싸움을 능가하는 전설의 매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매년 벌어지고 있는 극한의 기후변화로 인해 정글의 사막화와 사막의 정글화가 동시에 진행된다면,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원숭이 조폭 집단의 맞짱 대결이 성사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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