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매일밤 12시]카이세도 힘들지? 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뜨겁게 달궜던 주인공은 모이세스 카이세도였다.
EPL 역사상 최고 이적료인 1억 1500만 파운드(1966억원)로 첼시 유니폼을 입은 카이세도. 그를 향한 기대감이 폭발했다. 돈이 선수의 실력을 말하는 세상. 가장 많은 돈을 냈으니, 가장 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 축구 팬들이 바라보는 자본주의 시선이다.
카이세도는 지난 21일 첼시 데뷔전을 치렀다. 상대는 웨스트햄. 카이세도는 후반 16분 교체 투입됐다. 기대는 곧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그는 실수를 연발했다.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상대에게 태클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마지막에 1골을 더 내준 첼시의 1-3 완패.
경기 후 카이세도는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다. 돈이 아깝다, 어떻게 저런 선수에게 1966억을 쓸 수 있냐 등등. 최악의 데뷔전이었고, 카이세도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21세의 어린 나이에 큰 상처도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또 많은 선수들이 데뷔전에서 엉망진창 경기력을 드러내며 좌절한다.
중요한 건 좌절로 끝내지 않는 것.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보완하고, 다음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데뷔전 악몽은 웃으면서 술안주 삼을 수 있는 행복한 날이 찾아올 수 있다.
한 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최악의 데뷔전을 치렀지만, 대반전을 일궈낸 한 선수를 소개한다. 그는 카이세도보다 더 엉망진창이었다.
때는 2005년 8월 17일. 장소는 헝가리의 페렌츠 푸스카스 스타디움. 이곳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헝가리의 A매치 친선경기가 열렸다.
아르헨티나가 2-1로 리드하던 후반 18분, 백넘버 18번을 단 아르헨티나 18세 소년이 그라운드를 밟았다.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아르헨티나의 미래로 각광받던 소년. A대표팀의 부름을 받았고, A매치 데뷔전을 시작했다.
많은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그라운드를 밟자 주저하지 않았고, 바로 장기인 드리블을 시도하며 빠르게 달려갔다. 빠른 스피드에 당황한 헝가리의 수비수 빌모스 반차크가 소년의 유니폼을 잡아당겼다.
소년은 이를 뿌리치기 위해 오른팔을 휘둘렀고, 아뿔싸! 소년의 의도와 달리 오른쪽 팔꿈치가 반차크 안면을 가격한 것이 됐다.
반차크는 고통을 호소했고, 주심이 달려왔다. 유니폼을 잡은 반차크는 옐로카드. 안면을 팔꿈치로 가격한 소년은 레드카드. 다이렉트 퇴장이었다. 그가 그라운드에 투입된 지 40여초가 지난 상황에서 발생한 일. 충격적인 상황.
A매치 데뷔전에서 40초 만에 퇴장당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라커룸에 가서 혼자 펑펑 우는 것이었다. "내가 꿈꿨던 건 이런게 아닌데"라면서...
그 소년이 악몽과 같은 데뷔전에 좌절해 무너졌다면, 세계 축구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다시 일어나 전진했다. 다시는 그런 황당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너무나 빠르게 달렸다.
18세 소년의 후반 18분, 백넘버 18번. 공교롭게도 18년 전의 일이다. 18년 후 그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그는 세계 최고의 대회 월드컵을 무려 5번이나 출전했고, A매치는 아르헨티나 역대 1위인 175경기를 뛰었다. 103골로 이 역시 아르헨티나 역대 1위. 화룡점정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이다. 거의 원맨쇼로 우승. 전 세계 모두가 그를 찬양한 대회.
그의 이름은 리오넬 메시다. 힘내 카이세도.
[최용재의 매일밤 12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축구 팬들을 위해 준비한 잔잔한 칼럼입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은 없습니다. 가볍거나,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때로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잡담까지, 자기 전 편안하게 시간 때울 수 있는 축구 이야기입니다. 매일밤 12시에 찾아갑니다.
[리오넬 메시, 모이세스 카이세도.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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