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이젠 전 정부 탓만 못 한다[오늘과 내일/박용]
고금리 속 가계빚 증가, 과거보다 위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다른 나라들은 긴축 과정을 거치며 가계부채 규모를 줄이거나 유지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 폭등을 통제하지 못한 한국은 역주행을 했다. 작년 4분기(10∼12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로 주요 43개국 중 세 번째로 높다. 민심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빚을 지게 만든 부동산 실정의 책임을 물었다.
그런데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증가세가 꺾였던 가계부채가 올 2분기(4∼6월) 증가세로 전환했다. 올 들어 7개월간 은행권에서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이 약 22조 원 불어났다. 과거보다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늘어난 대출이어서 경제에 미칠 독성은 더 심각하다. 검사 출신 금감원장을 빼면 모두 금융 베테랑들인 F4답지 않은 실책이다.
정부 기관의 대출 보증은 원래 신용이 낮은 중소기업이 돈을 빌리기 쉽게 지원하는 정책금융 성격이 강했다. 요즘은 주택 시장을 떠받치는 지지대로 변질되고 있다. 부동산 대출 보증은 공적보증 잔액(869조 원)의 약 80%를 차지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주택담보대출 외에 전세보증금을 빌려주는 전세자금대출이 늘어나더니 전세금을 못 돌려주는 주인을 위한 역전세대출까지 만들어졌다. 집 한 채를 놓고 세입자와 집주인이 정부 보증을 낀 ‘대출 돌려막기’를 하게 만든 셈이다.
정부는 부동산과 대출 규제를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주택시장에 흥을 돋우는 ‘클럽 DJ’ 같은 역할을 했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명분으로 1월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부동산 투기 규제를 해제한 ‘1.3 대책’을 내놓고 9억 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대 5억 원까지 대출해주는 특례보금자리론을 풀었다. 검사 출신 금감원장은 은행 현장을 돌며 금리 인하까지 압박했다. 이렇게 풀린 대출이 서울 및 수도권 주택시장으로 흘러 들었다.
대출이 풀리고 집값이 다시 꿈틀거리면 소득으로 집값을 따라잡기 힘든 청년들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매매 건수의 31.3%가 30대 이하가 사들인 집이다.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이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이라는 비판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그것도 안 하면 젊은 분들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옹호했다. 거리에 나가 청년들에게 물어보라. 대출이 안 나와서 어려운 건지, 대출을 받지 않으면 사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뛴 집값 때문에 더 걱정인지. 집값과 전세금이 2배 오르면 조혼인율(1000명당 혼인 건수)이 각각 0.33건, 0.19건 하락한다거나 집값이 10% 오르면 합계출산율이 0.2명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무리하게 빚으로 떠받친 집값은 소비 위축과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고 한국 경제의 미래마저 어둡게 한다. 중국 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부동산 시장에 풀린 빚을 제때 통제하지 못한 후폭풍이다. 위기 땐 ‘원팀 정신’이 중요하지만 필요할 땐 목소리를 내야 집단사고(Groupthink)에 빠지지 않는다. 고삐가 풀리고 있는 가계빚 증가세를 잡지 못하면 금융 F4는 거품이 터질 때 가계부채를 방치한 ‘F(Failure·실패) 4’로 기억될 것이다. 전임자를 탓할 시기는 한참 지났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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