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카르텔 ‘저격’보다 “왜?” 물어야 진짜 개혁된다

한겨레21 2023. 8. 2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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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정치 평행이론]조선왕조 기틀 된 과전법 등 ‘유기적’ 개혁 실행한 조준, 윤석열 정부가 배울 점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7월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치의 제도와 기강을 바로잡고, 이익을 일으키고 해로운 것을 없애어 이 나라 백성으로 하여금 즐겁게 사는 마음을 품게 한 것은 그의 힘이 컸다.”

조선 초기 태조와 태종 때 정승직을 지낸 조준이 죽은 1405년 음력 6월27일 <조선왕조실록>은 그에게 극찬을 남겼다. 여말선초(고려말·조선초)를 다루는 사극에서 낮은 비중과 달리 실제 역사에서 조준은 당대 최고의 재상이자, 실무형 관리였다.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만큼이나 신임하고 어쩌면 더 신뢰했던 관료다. 태종 이방원도 신임을 물려받아 조준의 아들 조대림은 이방원의 둘째 딸 경정공주와 결혼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조준의 필적.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4년 은거하며 고려 문제 연구

조준의 일생을 바라보면 왜 최고 권력자의 신임이 그에게 쏠렸는지 알 수 있다. 조준의 증조할아버지 조인규는 역관 출신으로 원나라가 고려를 간섭하던 시기 열심히 몽고말을 배워 출세했다. 조인규의 딸은 당시 국왕인 충선왕의 넷째 부인이 된다. 성공의 곁에는 부가 찾아온다. 기록은 그가 땅을 많이 가졌고, 권세가 한 시대를 기울게 했다고 썼다.

조준은 이 ‘권세’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강남 8학군’ 출신의 귀족이었다.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뒤 왜구를 막기 위한 관리로 파견 갔는데 현장 군인들이 미적거리자 크게 질타하며 한 고위 군인을 처형하기도 했다. 젊은 귀족의 치기 어린 행동이었을 수도 있지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굳은 결의와 자존심이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가득 찼던 이 귀족 자제는 이후 공민왕 말기와 우왕 치세 동안 고려에 어지러운 상황이 계속되자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귀족의 대책은 가진 권력으로 세상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은둔’이었다. 그는 조정을 떠나 4년간 은거한다. 그 기간에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일종의 스터디 모임을 만든다. 당대 고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연구한다. 위화도회군으로 개경을 장악한 이성계는 조준의 이야기를 듣고 불러 대화를 나눈 뒤 일약 고위관리에 발탁한다. 기록은 이성계가 조준과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의논했다고 했다.

이 4년간의 연구에서 당대 현실을 바꿀 결실이 대거 탄생했다. 조선왕조 성립 기틀이 된 과전법은 ‘권문세족이 국가를 무시하고 사적으로 소유한 토지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조준의 상소 한 장에서 출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준은 거듭되는 상소에서 당대 현실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이를 개혁하기 위한 전방위적 정책을 제시한다. 토지제도뿐 아니라 군사제도, 행정, 인재 등용, 재정, 조세, 예법 등 전 분야를 망라했다. 조준은 조선왕조 성립 뒤 자기 생각을 가다듬어 <경제육전>이라는 법전을 만드는데, 이 법전은 정도전의 <조선경국전>과 함께 훗날 <경국대전>의 바탕이 되는 법령집이 된다. 사실상 조준이 조선왕조의 뼈대를 만든 주역 중 한 명이었던 셈이다.

하나의 대책만으로 개혁은 어려워

조준의 일생과 그가 만들어낸 성취는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사례다. 조준은 당대 현실 문제를 개혁하려면 하나의 대책만으로는 어렵다고 봤다. 토지제도를 바꾸려면 감독할 관료체제를 바꿔야 했고, 관료체제를 바꾸려면 인사·행정·교육 등 여러 체제를 건드려야 했다. 그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방위적 개혁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만들었던 게 이 때문이다.

600여 년 전 조준이 고민한 ‘유기적 개혁’이란 원칙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600년 전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해진 현대 행정과 관료체제에선 더더욱 세밀한 정책과 각 분야의 파급효과를 계산하는 정교함이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 문제는 지금 정치권을 볼 때 ‘유기적 개혁’보다는 ‘일단 건드리고 본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엿보인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여당 국민의힘은 최근 부쩍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윤 대통령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과정에서 사교육 시장을 겨냥해 ‘이권 카르텔’이라는 표현을 썼고 이후 그 방향성을 노조, 시민단체, 태양광사업 등 다수로 확장해 겨냥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7월18일에는 집중호우에 따른 대책을 언급하다가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선 후보로 나서기 전후부터 ‘이권 카르텔’이란 표현을 쓰면서 척결 의지를 보여온 윤 대통령의 선의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또, 한국 사회에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합하고 부당한 행위를 벌여 독과점적 이익을 쌓는 문화가 암암리에 존재함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부와 여당의 문제의식 근원에는 “왜?”가 없다. 부정부패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하는 현재의 교육, 노조, 시민단체의 담합행위를 쓸어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왜’ 한국 사회에 카르텔이 있는지, 부당한 담합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 사회가 됐는지에 대한 근원적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잘못됐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처벌 뒤 다르게 솟아오르는 또 다른 ‘카르텔’을 키우는 건 아닌가.

600여 년 전 조준은 분명 ‘명의’였다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맞고, 문제가 생기면 고쳐야 하는 것도 맞다. 문제는 잘못을 인식하고 문제의식을 느꼈을 때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판단’이다. 단순한 증세를 보고 전체 몸의 이상을 진단하는 의사가 명의이듯이, 단순한 사회정책적 병폐 현상에서 전체 국가 개혁 기조를 판단할 줄 아는 실력이 고위 관료와 정치인의 능력을 가른다. 600여 년 전 조준은 분명 ‘명의’였다. 부패를 척결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정치에 보여주는 600여 년 전의 교훈이다.

이도형 <세계일보> 기자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언론사 정치부에서 국회와 청와대 등을 8년간 출입한 이도형 기자가 역사 속에서 현실 정치의 교훈을 찾아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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