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권은비 [MD칼럼]
[이승록의 나침반]
유난히 권은비의 '더 플래시(The Flash)'가 전작 '언더워터(Underwater)'나 '글리치(Glitch)'와 비교되었던 건 그만큼 우리에게 '언더워터'와 '글리치'의 잔상이 뜨거웠던 탓이다. 발표되고 시간이 다소 흐른 뒤에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졌던 '언더워터'는 여전히 그 열기를 머금고 있다.
'언더워터', '글리치'와의 비교는 숙명적이었다. 이때 '더 플래시'를 내놓음으로써, 권은비는 전작에 편승(便乘) 않고, 작지만 분명한 전진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더 플래시'가 '언더워터', '글리치'와 비슷한 감성이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감정으로 느껴진 건, 노래를 주도하는 역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권은비의 보컬은 한순간에 뻗어나갔다가도 단숨에 사그라드는 유려한 완급이 특기인데, '언더워터'와 '글리치' 모두 이런 권은비의 보컬이 노래를 이끌었다. 반면 '더 플래시'는 마치 수면에 물방울이 터지듯 튀어오르는 멜로디가 도입부터 후렴까지 휘몰아치며 노래를 주도한다. 권은비의 보컬은 그 멜로디의 수면 아래에서 유영하듯 노래를 휘감는다.
변화였고, 권은비는 나아갔다.
'글리치'와 '언더워터'를 통해 '솔로 가수'로서 권은비의 색깔을 선명하게 그려냈다면, '더 플래시'는 두 노래가 만든 커다란 바탕 위에 더 짙은 채도로 그어진 분명한 획(劃)처럼 여겨진다.
미디어에 비쳐진 외향적 이미지가 아닌, '솔로 가수'로서 권은비는 어떤 존재인가. 그 물음은 '글리치', '언더워터' 그리고 '더 플래시'에게 답할 의무가 있다.
권은비의 노래는 마치 몇 알만 먹었을 뿐인데도 페르세포네의 운명을 뒤바꾼 신화 속 '페르세포네의 석류'처럼 들린다. 예상 못했던 순간에 나타난 '글리치', 심해 속으로 끌어당긴 '언더워터', 세상을 흔들 듯 번져온 '더 플래시'까지. 단 세 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 노래들을 알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가수 권은비'가 우리 앞에 서있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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