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과 착취’라는 동물적 본능, 지구상의 ‘공정’을 무너뜨렸다[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기자 2023. 8. 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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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위대한 동물, 호모 이코노미쿠스
국제우주정거장에 파견된 미국 항공우주국 소속 워런 호버그가 지난 6월9일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우주공간에 나가 우주정거장에 부착된 로봇 팔을 조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류는 1966년 우주공간과 천체는 공동의 재산이라고 결의했지만 우주공간과 천체를 선점하려는 각국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햇빛 독차지하려고 높이 자라는 나무처럼…거대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 거두기 유리한 위치 ‘선점’하기 위해 경쟁
동물과 달리 노동이라는 경제활동으로 생산된 잉여가치가 ‘법적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착취’됨으로써 인류 불행 시작
이제 지구를 넘어서 우주를 향하는 인간의 탐욕…몽땅 착취하고 독점하려는, 이 얼마나 강력한 ‘본능’인가

인간은 과연 경제라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일까?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인 속성은 생산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원의 소비라는 점이다. 간혹 식물을 생산자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식물은 스스로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 외에는 어떠한 부가적인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으므로 경제학적 생산자로 볼 수 없다. 단지 동물에게 강제로 소비당하는 것뿐이다. 지난 글 ‘야생 침팬지와 식용 개’에서 동물의 이러한 포식 행위는 ‘탈취’에 해당한다고 정의했다. 기본적으로 자원의 탈취는 상대의 몸이나 생활영역에 대한 ‘침범’을 통해 이루어진다.

침범에 대한 방어 기작을 생태학에서는 ‘간섭’이라고 표현한다. 간섭 경쟁이란 주로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이 자신의 영역에 침입하거나 서식지 내의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여 ‘독점’을 유지하고자 할 때 이루어진다. 많은 조류들이 자신의 둥지 주변을 물리적으로 방어하여 다른 새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간섭의 예다.

반면 ‘착취’ 경쟁은 이런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없지만 일부 개체들이 제한된 자원을 ‘선점’함으로써 다른 개체들이 자원을 이용할 기회를 간접적으로 빼앗을 때 일어난다. 자연의 자원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착취 경쟁은 자연 곳곳에서 일어난다. 나무들이 높이 자라는 이유는 우리에게 멋진 숲을 제공해주기 위함이 아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보다 높이 자라 위쪽 공간을 선점해야만 이웃들이 만드는 그늘에 가리지 않으면서 더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같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곰들 사이에서도 직접적인 간섭은 일어나지 않지만, 유리한 장소를 차지하고 거기서 과도한 사냥을 하는 곰은 같은 강을 따라 더 아래쪽에 있는 다른 곰들에게 간접적인 손실을 끼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동물이 차지하고자 하는 유리한 위치는 다름아닌 사회적 지위다.

탈취, 간섭, 착취는 모두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탈취의 대표적인 예는 전쟁이다. 간섭과 착취는 오늘의 주제인 경제와 관련된다. 생태계에서의 간섭 경쟁이 인간의 경제에서는 독점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의 미국은 마크 트웨인이 ‘도금시대(Gilded Age)’라고 풍자했던 시절로서, 불법적으로 막대한 부를 모은 개츠비라는 한 남자의 성공과 몰락을 그린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기도 하다. 석유재벌 록펠러, 철강재벌 카네기, 금융재벌 JP 모건 등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고 불리던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은 ‘트러스트’를 만들어 생산, 제조, 유통, 판매 등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각종 리베이트 및 심지어 용역 깡패까지 동원했다.

1990년 후반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의 운영체제에 익스플로러를 통합해서 판매하기 시작함으로써 넷스케이프를 제치고 시장을 독차지했으며, 결국 넷스케이프는 매각되어 시장에서 퇴출된다. 사실 이 문제로 마이크로소프트에 가해진 법적 제재 덕분에 정보기술(IT)계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구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에 대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구글이 애플의 스마트폰 등에 자사의 검색 앱을 끼워 넣도록 해 이익을 독점하고 다른 업체들의 경쟁이 불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가 했던 것과 똑같은 행태다.

지대는 지주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는 소득이며 이에 대한 과세는 경제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

그런데 착취는 독점과 같이 눈에 띄는 물리적 간섭-용역 깡패, 리베이트, 끼워팔기 등-을 통하지 않고 ‘법적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교묘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생물들 착취 경쟁의 핵심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땅을 먼저 차지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가치를 ‘지대(地代·rent)’의 형태로 가져가는 행위가 바로 착취에 해당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지대는 지주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는 소득이며 이에 대한 과세는 경제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지주는 토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나 노동자들이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토지를 이용하려 할 때 사적 소유라는 권리를 통해 수익을 얻을 뿐이다. <진보와 빈곤>에서 헨리 조지는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취급한 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실수였다며, 지대의 대부분을 징수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겁게 과세하여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개혁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근본적인 개혁이라고 역설했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성서에는 희년이라는 혁신적인 제도가 등장한다.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고 50년마다 돌아오는 이해가 되면, 한시적으로 매매되었던 모든 땅은 원래 소유주에게 돌아가야 하므로 토지의 사유화는 금지되며 토지에 대한 투기도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지대 개념은 물리적인 땅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지대는 주택이나 상가건물 임대료에도 적용된다. 쉽게 말해 주택 월세는 거기에 사는 노동자 월급의 착취다. 자본가들 역시 지대를 추구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공장이나 기계와 같은 생산공간과 수단을 선점한 후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는데 이때 노동자들의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부분, 즉 임금으로 지급되는 가치를 넘어서는 잉여가치를 창출하도록 강제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자본을 선점한 채 대출만 해주고 가만히 앉아 이자를 받는 것에서 시작하여 온갖 금융 기법을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착취 방법들도 개발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대란 생산공간(땅, 공장, 상가건물 등), 생산수단(기계, 자본 등), 생산자 거주공간(집)을 선점함으로써, 생산된 가치 중 일부 혹은 대부분을 불로소득의 형태로 착취해가는 것이다. 가치의 생산에 기여하지 않고 이득만 취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는 손실을 입는다는 것인데, <오징어 게임>에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 손실이 자신의 목숨값을 넘어선다.

지대의 대부분을 징수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겁게 과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근본적인 개혁이다.

헨리 조지

구글의 대대적인 투자를 받은 세계 최대의 유전자 검사 회사 23andMe-23이라는 숫자는 23쌍의 염색체를 의미한다-의 최고경영자(CEO)인 앤 워치츠키는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아내였다. 고객들은 23andMe에 유전자 검사 비용으로 99~199달러를 지불하며 이와 동시에 건강에 관련한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이때 연구 목적이라는 명목으로 정보 제공에 대한 동의를 받는다. 어떤 유전자 변이가 어떠한 질병의 위험을 높이는지에 대한 데이터와 그것을 분석하는 유전학적 방법론은 당연히 수많은 과학자들이 세금과 같은 공적 자금을 기반으로 수행하여 공개한 연구에서 나왔다. 또한 유전자 변이와 질병의 연관성은 자연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발명자들처럼 특허와 같은 형태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23andMe는 이에 대한 어떠한 비용도 치르지 않고 이러한 공공의 정보를 가져다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구글과 같은 IT기업들이 공공 영역에서 개발된 핵심 인터넷 기술들을 공짜로 자신들의 플랫폼에 가져다 쓰는 것과 똑같은 모양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구글이 개인 사용자에게서 돈을 받지 않고 기업 고객으로부터 광고비로 주된 수익을 얻는 양면시장 전략을 23andMe도 차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3andMe의 다른 쪽 시장 고객들은 바로 화이자, 제넨텍,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거대 제약사들이며, 이들에게 판매하는 제품은 바로 그동안 수집된 개인 고객들의 유전자와 건강 정보에 대한 독점적인 접근권이다. 예를 들어 23andMe는 2015년에는 제넨텍과 6000만달러에, 2018년에는 글라소스미스클라인과 3억달러에 데이터베이스 사용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엄청난 가격에 팔릴 수 있는 것은 데이터베이스의 규모 때문인데, 23andMe가 초창기 199달러였던 유전자 검사 비용을 99달러까지 낮춘 것은 바로 구글이 공짜로 사용자를 확보한 것과 똑같은 전략이다.

그런데 이렇게 챙긴 막대한 이득에 비하면 실제로 생산해낸 유의미한 가치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3andMe의 고객들은 이미 공공의 영역에 존재하는 유전자와 질병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99~199달러와 함께 자신들의 생물학적 정보를 23andMe에 ‘기증’해준다. 이 정보는 데이터베이스의 형태로 집적되어 제약회사들에 넘겨지고, 이때 제약회사가 지불했던 어마어마한 비용은 다시 약값으로 소비자들에게 부담되거나 신약 개발을 위해 근무하는 과학자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착취를 통해 해결된다. 이렇게 착취된 가치로부터 획득한 수익을 23andMe의 자본가들이 즐기는 동안,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그 약값이 부족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23andMe가 유전자 검사 실험을 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등의 생산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행위에 대한 이득은 개인 고객에게서 받는 서비스 비용에서 끝내야 한다. 제약사에 넘긴 데이터의 가치는 유전자 정보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이것을 단순히 취합하는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데이터의 생산은 과학계에서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라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이미 해오던 작업이다. 결론적으로 이 회사는 구글의 막강한 자금력과 명성을 등에 업고 유전자 검사 서비스라는 ‘땅’을 선점한 후, 거기에 쌓인 데이터의 규모라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유전자-질병 정보라는 형태의 지대를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간섭과 착취가 진화적으로 유래된 동물적 본능의 행동인 반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경제활동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을 넘어선 그 무엇을 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생산되는 잉여가치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이들에게 착취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부자와 가난한 자,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어마어마한 격차를 보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동시에 그 가치를 몽땅 착취해가고 또한 독점하고자 하는 동물적인 본능 역시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이 지구상에서 공정한 ‘땅’의 분배에 실패한 인류가 이제는 우주를 향하여 눈을 돌리고 있다. 달과 다른 행성들에 있는 희소하고 값비싼 자원을 누가 먼저 ‘선점’할 것인가의 경쟁이 이미 시작된 것 같다. 1966년 유엔에서 결의한 ‘외기권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에 따르면 우주공간 및 천체는 인류 공동의 재산이므로 특정 국가의 소유권 주장은 금지된다. 하지만 해당 조약은 특정 국가가 건설한 시설에 대한 관할권 주장은 금지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법적으로 정당한’ 선점이 가능하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면 한 유인원이 도구로 사용하던 그리고 다른 유인원을 때려죽이는 무기로 사용하던 동물의 뼈를 하늘 높이 던져 올리자 그것이 우주선의 모습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나온다. 가히 영화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동물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최정균 교수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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