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폐기 성과 못 낸 탓? 산업부 장관 ‘찍어내기 교체’ 뒷말
여당과 전기요금 갈등부터 수출 부진 ‘문책성 인사’ 분석
지난 5월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을 ‘나홀로 교체’한 데 이어 22일 이창양 산업부 장관만 콕 집어 갈아치운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했음에도 1년이 넘도록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따른 불만이 반영된 ‘문책성 인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산업부 장관을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으로 교체했다. 여성가족부, 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다른 부처의 인사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산업부 장관만 바꾼 것을 두고 관가에서는 대통령 핵심 공약인 ‘탈원전 정책 폐기’가 미진한 데 따른 결과라고 해석한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원전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투사형 인물’을 원한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학자 스타일의 이 장관이 기대에 못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최강국 건설’은 윤 대통령의 10대 정책·공약에도 포함된 핵심 공약이었다. 이에 산업부는 정권 출범 이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가동 원전의 계속 운전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올 초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 건설이 빠지면서 원자력업계를 중심으로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효과를 체감할 수 없다는 불만이 나왔다. 여기에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원전 수출마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강경성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이 산업부 2차관으로 임명된 뒤 내년에 예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착수 시점까지 올해로 앞당겨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했지만 장관 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작성도 신규 원전 추진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실무그룹에 참여할 전문가를 섭외하는 데 난항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빚어진 여당과의 갈등도 장관 교체 원인으로 꼽힌다. 이 장관은 한국전력 적자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주장했지만 물가 불안을 우려한 여당과 기획재정부는 반대했다. 이 과정에서 한전 사장까지 교체되는 등 내홍을 겪었다. 여당은 한전이 내놓은 자구안에 대해서도 주무 부처인 산업부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수출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한 점도 이 장관의 입지를 좁혔다. 월간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10개월째 감소했다. 이달에도 20일까지 수출이 17% 줄며 감소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수출 위기 극복을 위해 수출 유망품목 30개를 선정해 집중 지원하고, 업종별 산업전략 원탁회의와 범부처 수출상황 점검회의를 잇달아 열고 대책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 내에서는 현 정권의 무리한 에너지 정책 추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실무자들이 징계를 받고 옷을 벗거나 현재 감사를 받는 만큼 원전 추진 또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최근 에너지 정책을 담당했던 핵심 인력들이 잇달아 대기업으로 옮기는 사례도 있다.
특히 산업정책 경력이 전혀 없는 방 실장을 산업부 장관으로 내정한 것을 두고 엇박자 인사라는 평가까지 뒤따른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산업정책은 변수가 많은 부분인데 예산 전문가가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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